[정은귀의 시선] 서서 잠들어도
입력 2025-11-30 23:54
수정 2025-12-01 00:13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비켜 가지 않고 반드시 오는 계절
앞에서 나무는 꽃눈을 준비해 두고
선 채 잠들어 있다. 내 안에 숨겨 둔
꽃눈은 무엇일까.”
차려입고 벗어던지는
그 모든 복잡하고 세세한
일들이 이제 끝났다!
일렁이는 달이
긴 가지들 사이로
부드럽게 움직인다.
슬기로운 나무들은
늘 그렇듯 꽃눈을 준비해
반드시 오는 겨울에 대비하고
추위 속에 선 채 잠들어 있다.
- WC윌리엄스, ‘겨울나무들’
“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 나무야 나무야 다리 아프지 /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우연히 라디오에서 어린 날 동요를 듣는다. 서서 자는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계절이다. 아이는 천진한 눈으로 서서 자는 나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하지만 아이야, 누워서 자는 나무는 죽은 나무란다. 나무는 서서 자야 한단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한동안 노랑 빨강 주홍, 다채롭게 물든 나무들로 눈이 호사를 누렸는데 계절은 어김없다. 그 풍성한 아름다움 다 내려놓고 나무들은 이제 벌거벗고 서 있다. 공부방 창밖으로 노란 잎들이 햇살 속에 보석처럼 빛나던 은행나무도 차가운 비 내리면서 잎들을 다 잃었다. 전사처럼 숙연하다. 계절은 말한다. 한 걸음 또 내디뎌야 해.
겨울나무를 보며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를 다시 읽는다. 간결한 시어를 가지고 일상에서 경험하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정갈한 지혜로 선보이는 시인. 시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질문할 때 나는 자주 그의 시로 되돌아온다. 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비추는 맑은 거울인데, 그 거울이 특별한 것은 거울을 만드는 시인의 시선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시의 시작, “차려입고 벗어던지는” 일들은 나무에 이파리가 돋아나고 연한 연두가 초록이 돼 무성해지고 다시 울긋불긋 물들었다 시들어 떨어지는 전 과정을 뜻한다. 그게 다 끝났다 한다. 봄, 여름, 가을 지나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네 계절을 지나는 일들을 시인은 단 세 줄로 날렵하게 처리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파리가 떨어지고 가지가 드러나는 과정을 ‘leaves falling, branches becoming bare’라고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attiring and disattiring’이라며 옷을 입고 벗는 과정으로 의인화했다는 점이다. 친구나 가족처럼 나무를 익숙하게 끌어당기는 동시에 언어적으로는 낯설게 만드는 선택이다. 잎이 피고 지는 과정을 새롭게 세밀하게 생각하게 하는, 시인의 시적 비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attire’는 격식을 갖춘 복장을 뜻하니, 생각해 보라. 제대로 의복을 갖춰 입고 벗는 일이 얼마나 성가시고 복잡한지. 제사 지낼 때 한복 두루마기를 꼭 갖추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대로 입는 성장(盛裝)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무에 이처럼 격조를 부여하는 시인의 시선이란!
나무는 이제 메마른 가지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긴 가지들 사이 달이 보인다. 시인은 이를 ‘liquid moon’이라고 했다. 액체와 달을 결합시키는 날렵한 시선을 우리말로 옮기느라 한참 고심했다. 여러 단어를 생각하다 ‘일렁이는 달’로 했는데, 나는 이 선택이 마음에 든다. 달은 고형이 아니라 우리 눈에 일렁이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다가오는 겨울이 혹독한 계절임을 잘 안다. 춥고 쓰라린 바람이 불 것이다. 계절의 힘겨움은 피할 수 없다. 비켜 가지 않고 반드시 오는 계절 앞에서 나무는 꽃눈을 준비해 두고 선 채 잠들어 있다. 시인의 시선이 포착하는 나무의 슬기로움은 두 가지다. 꽃눈을 몰래 준비해 두는 것. 그리고 서서 자는 것. 나무가 꽃눈을 벌써 준비해 뒀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야무지게 준비하고 보초를 서듯 서서 잠든 나무들.
시를 읽으면 추워지는 계절 앞에서 우리 마음에도 중심이 선다. 단단해진다. 내 안에 숨겨 둔 꽃눈은 무엇일까, 어떤 자세로 이 겨울을 견뎌야 할까. 나무의 슬기로움을 배워 내 안의 꽃눈을 잘 피워 내야지, 꽃과 잎과 함께한 기쁜 시간이 있었으니 서서 자도 괜찮다고, 겸손하게 자세를 갖춘다. 그걸로 됐다. 예정된 계절, 추위 속에서, 슬기로움을 저 나무에게서 배운다.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opinion/jek_eyes/2025/12/01/202512010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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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강소천 작사/김공선 작곡
<가사>
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다리 아프지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강소천 홈
http://www.kangsochun.com/kor/board/board_view.php?code=board01&idx=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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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이원수(시) 선생님은 1911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하여 1981년에 사망.
우리가 즐겨 부르는 동요 '고향의 봄'을 비롯하여 평생 동안 수백 편의 동요, 동시, 동화를 쓰셨습니다.
정세문 곡
<1957년 ‧ 방학공부>
추운 겨울, 눈 쌓인 응달에 홀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노래한 이 작품은 1957년 이원수 선생이 ≪방학공부≫에 발표한 이후 KBS의 요청으로 당시 동요 작곡가이며 음악교육자로 활동했던 정세문(1923~1999)이 곡을 붙여 지금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정세문은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어린이행진곡>, <은구슬>, <무궁화> 등 200편이 넘는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로 서울교육청 음악장학사를 거쳐 문교부 음악 담당 편수국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74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7년 KBS동요대상, 1989년 대한민국동요대상, 1992년 반달동요대상을 받기도 했다. 성남시는 그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낸 작곡가 정세문을 추모하기 위해 <겨울나무> 노래비를 지난 2000년 분당 중앙공원 야외음악당 잔디광장에 건립하기도 했다.
얼마 전 이원수문학관에 <겨울나무> 시화가 새롭게 걸렸다. 이원수 선생이 글을 쓰고, 그림은 월천 진강백 선생이 그림을 그린 작품인데, 올해 6월 향파 이주홍 선생의 부인이신 박무연 여사가 이원수문학관에 기증하신 것이다.
이원수 선생이 글을 쓰고, 진강백 선생이 그림을 그린 <겨울나무> 시화가 어떻게 이주홍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는지 그 내력이 궁금하여 이주홍 선생의 부인이신 박무연 여사께 여쭈어보았다. 향파 이주홍 선생은 1947년 서울에서 부산 동래로 오셔 온천동에서 사셨는데, 1층은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고, 2층을 서재로 썼다고 한다. ‘소악서루’, 웃음이 넘치는 큰 산에서 글을 쓰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서재이다. 선생은 방학이면 해인사에 들어가셔서 집필하시고, 평소에는 ‘소악서루’에서 글과 서예 등 작품활동을 하셨다. 소악서루는 많은 문인이 부산이나 경남을 오면 꼭 다녀가던 곳으로, 이원수 선생도 그중 한 분이셨다. 두 분은 문학정신이 비슷했던 동지였고, 당대 우리나라 어린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가장 절친했던 사이로 알려져 있다.
시화가 만들어진 그 날은 이원수 선생이 하루 전에 이주홍 선생댁을 방문하였고 다음 날 월천 진강백 선생이 합류하면서 담소와 여흥을 즐기던 중 이원수 선생이 종이에 <겨울나무>와 <고향의 봄>을 비롯해 석 점을 작성하였다. 이에 진강백 선생이 거기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 작품들을 사모님께서 소중히 받아뒀다가 표구를 하였다고 한다. 그중 한 점을 이원수문학관에 기증하신 것이고 나머지 작품은 사모님과 아드님이 각 한 점씩 나눠 소장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향파 이주홍 선생은 늘 종이를 준비해 두셨다가 술을 드시거나 기분이 좋을 때 붓을 잡으셨는데, 그날은 이원수 선생이 글을 쓰고 월천이 그림이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주홍 선생은 문인뿐만 아니라 화가들과의 교류도 왕성하던 터라 자연스레 월천 선생과도 잦은 교류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월천 진강백(月川 陳剛栢, 1938~2007)은 다수의 국전 입선과 개인전과 해외 교류전을 개최한 한국 화가로 사보 표지 작업뿐만 아니라『신기한 요술 붓』, 『토종 엄마와 아이의 영어 콧대 세우기』 등 동화책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 천성산 통도사의 말사인 성전암에서 작품활동을 하며(2000년~2005년) 대웅전 벽면에 그려진 심우도를 비롯해 도깨비 벽화와 호랑이벽화 불화 민화 등 많은 그림을 남겼다.
이원수문학관에 걸려있는 이원수 선생의 글과 진강백 화가의 <겨울나무> 시화는 두 분의 귀중한 유품으로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이렇듯 마음과 뜻이 맞았던 예술가들의 소중한 자료는 당시 활약상과 교류를 확인하게 계기가 된다. 이원수 선생의 유족들조차도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이원수 선생의 <겨울나무> 시화는, 선생이 살아계실 때 남긴 발자취로 선친을 대하듯 반가울 것이라 여겨진다.
<겨울나무>는 1957년에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불리고 있으니 반세기 이상 국민동요가 되었다. <겨울나무>는 시련의 시간 속에 꿈을 버리지 않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눈 쌓인 응달에서도 세상 얘기를 바람께 들으며, 새봄의 희망으로 휘파람을 불고 서 계신 이원수 선생의 시정신이 느껴진다. <겨울나무>는 겨울 들판에 외로이 서 있어도 슬퍼하지 않고 참고 견디고 준비하면서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생명력으로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다.
출처: http://www.munhakwan.com/file_view.html?uid=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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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문학관
http://www.leewonsu.co.k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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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opinion/jek_eyes/2025/12/01/202512010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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