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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38-40 자신들의 명예 때문에 숨어서 예수를 따르던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의 죽음이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깨닫고 빌라도의 시체를 달라 하여 왕에 걸맞는 향료를 드리며 예수님의 장례식이 왕의 장례식으로 성대하게 치뤘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것이 예언의 성취이고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나온 것은 예수님이 분명히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의 죽음이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 드러난 이후에 두 명의 숨은 제자들에 의해 예수님의 장례식이 왕의 장례식으로 성대하게 치뤄지는 장면이다.
38절은 “이 일 후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요한복음에서 새로운 내용들을 소개하는 경우에 쓰는 구절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증언과 연결하면서 동시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등장을 알린다.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 빌라도에게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요한은 또 요셉이 예수의 비밀 제자라고 소개한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 이미 제자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유대사람들이 무서워서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사람이란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다. 요셉도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부자였다. 최고로 존경을 받던 유대교 지도자 중 한사람이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까 염려하여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겼던 것이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예수를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예수께서 잡혀 처형되시자 모두 다 숨은 상황이다. 그동안 예수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까지 않겠다던 제자들이 다 숨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현장에서 칼을 휘둘렀었고 대제사장의 안마당까지 숨어 들었던 용감한 베드로도 숨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청한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당시 로마제국 통치자들은 처형된 시체를 가까운 친척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체는 넘겨주지 않았다. 이들은 로마제국에게 반역을 일으킨 반란군의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체는 그대로 달아놓고 까마귀와 독수리 밥이 되게 했었다. 썩어 냄새가 나는데다가 새들이 뜯어 먹어 정말 흉한 꼴이 되게 두었다. 그것은 그 사람과 유대민족에게 큰 수치가 되었던 것이다. 이 경우 로마제국 통치자들은 시체를 넘겨주지 않았었다.
이처럼 당연히 거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31절에서 유대교 지도자들도 유월절 전에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을 했다. 저들은 큰 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예루살렘 성문 근처에 시체가 매달려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치워달라고 한 것이다. 시체들로 인해서 명절에 예배하러 온 많은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단순히 부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시체를 치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만약 요셉이 단순히 유대교 지도자들의 뜻에 따라 시체를 치우기 위해 달라 했다면 그 시체는 예루살렘 성 밖의 처형된 자들의 무덤에 묻었을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는 처형된 시체들을 위힌 무덤이 성 밖에 있었다고 했다(Josephus, Ant., v.44). 율법에 따라 처형된 시체들을 위해 산헤드린 공회에서 따로 마련한 무덤이 있었던 것이다. 돌에 맞아 죽은 자들과 불태워진 자들의 묘지가 있었다. 또 목이 잘려 죽은 자와 교수형을 당한 자들의 묘지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로마제국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체들은 로마제국 통치자들이 내어 주지도 않았고 또 내어 준다고 해도 가족들 조차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로마제국 통치자들은 본보기로 전시하려 했기 때문에 내어주지 않았다. 또 가족들은 가족 묘지에는 조상들이 함께 묻혀 있기 때문에 그곳에 장사를 지내면 가족 모두가 자손 대대로 다 오염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체를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요셉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상하게도 순순히 주었다. 이는 요셉의 요청이 발라도의 뜻과도 맞았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로마제국의 반역자가 아니며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세번이나 밝혔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빌라도의 아킬레스 건을 잡고 정치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에 타협한 것 뿐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세가지 언어로 기록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치명타를 먹였었다. 그런데도 빌라도는 아직도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자 빌라도는 허락한 것이다. 만약 요셉이 산헤드린 공회가 정한 죄인들의 무덤에 묻는다고 했더라면 선뜻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빌라도는 이미 유대교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시체를 치우기 위한 일을 명령했었다. 만약 빌라도가 그러한 요청에 예수의 시체를 내준다면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한 죽을 죄인이라고 한 말에 동의하는 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도는 요셉의 계획을 물었을 것이다. 이에 요셉은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빌라도에게 말을 했을 것이다. 빌라도는 그 말을 듣고는 온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우고는 그렇게 하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한방 더 먹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허락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빌라도가 이미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다시 한번 발로 걷어 찬 셈이다.
만약 유대교 지도자들의 고소대로 예수가 진짜로 로마 황제에게 반역한 유대인의 왕이라면 빌라도는 절대로 그렇게 시체를 내어줄 수 없다. 만약 예수가 진짜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자라면 유대인의 요청에 따라 다리를 꺾어 내 주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예수의 시체를 그냥 십자가에 두어서 까마귀와 독수리의 밥이 되게 했어야 했다. 로마제국에 대해 도전한 사람들은 절대로 시체를 내주지 않고 까마귀 밥이 되게 하는 것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도가 요셉의 요청에 승인한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한방을 더 먹이려는 것이다.
이제 39절에는 또 다른 숨은 제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나온다. 39절은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이는 75 lbs 조금 안되는 양으로 앞에서 마리아가 드렸던 향유의 백배 정도가 되는 양이다. 이러한 향유의 양이 왕의 장례식에 맞는 것이고 마리아가 드렸던 300 데나리온의 100배인 30000 데나리온이 될 것이다. 같은 향료는 아니지만 엄청난 가격이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향료는 오늘날 미국의 Home Depot에서 파는 거름흙처럼 담는다면 40 lbs 짜리 두 자루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값이 비싼 것이었기에 삽으로 퍼서 팔던 것이 아니었다. 작은 그릇에 조금씩 담아 팔던 아주 비싼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양의 향료를 두 사람이 자루에 가득 담아 운반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놀라운 그림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운반했을 것이다. 죽은 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드리던 것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행진했을 것이다.
요셉푸스의 기록을 보면 대헤롯의 장례식 때 500명의 하인들이 향료를 들고 가서 드렸다고 한다(Josephus, Ant. Xvii. 199). 만약 이러한 향료를 한 근씩 팔았다고 해도 최소한 니고데모의 하인 백 명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왕의 장례식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향료를 무덤에 넣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값비싼 향료를 이렇게 엄청난 양을 들고 가는 모습은 정말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의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유월절이었기에 예루살렘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나라에서 몰려든 유대인들로 가득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구경꾼들은 모두 누구의 장례식이냐고 물었을 때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장례식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구경꾼들은 정말 놀랐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체는 장사를 지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구경꾼들은 이미 세나라의 말로 쓰여진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 라는 명패를 모두 읽었기에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는 ‘예수는 진짜 유대인의 왕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향료를 누가 낸 것이냐 또 물었을 때 사람들은 니고데모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존경받던 공회원이고 엄청난 부자였던 니고데모라고 하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예수는 진짜 유대인의 왕이로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니고데모는 큰 부자였고 최고로 존경을 받던 유대교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값비싼 향료 100근을 드림을 통해 예수가 유대인의 왕임을 당시 전세계에서 몰려온 모든 유대인들에게 선포한 셈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 앞에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는 것을 완전히 드러낸 셈이다.
이렇게 요셉과 니고데모를 소개한 뒤 40절에서는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뜻이 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 연합작전으로 요셉은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 한 것이고 니고데모는 왕의 장례식을 위한 향료를 준비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고 했다.
유대인의 장례 풍속은 이집트 사람들과는 달랐다. 이집트 사람들은 내장을 꺼내 따로 담고 그 속을 향료로 채운 뒤 미이라를 만들어 오랫동안 썩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유대 사람들은 시신을 썩지 않게 하려고 향료를 넣은 것이 아니다. 유대사람들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바위 동굴이나 인공으로 바위를 뚫어 만든 굴에 넣어 두고 돌로 문을 막아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문객들이 방문할 때 악취가 나게 된다. 그래서 악취 대신 향이 퍼지도록 향을 넣었던 것이다. 이는 죽은 사람을 최대한 공경하려는 배려였다.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은 1년이 지나 다 썩으면 뼈만 추려 가족 무덤의 벽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삼베로 감았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장례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의 삼베는 대마로 짠 거친 섬유이지만 본문의 삼베라는 말은 아마로 곱게 짠 Linen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미이라를 쌀 때도 썼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부자들의 부를 과시하던 값비싼 천이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빛과 정결함의 상징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적으로 아무런 흠이 없는 의인이라는 상징이었다. 따라서 유대인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는 것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며 또한 율법으로는 의인에 대한 예우로 장례를 지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말 궁금해진다. 예수님 살아계실 때는 자신들이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겼던 사람들이 요셉과 니고데모이다. 그런데 예수가 죽은 뒤에 갑자기 자신들이 제자라는 것을 이렇게 모든 유대인들에게 드러내는 것일까? 그것도 가장 큰 명절에 지중해 연안 각처에서 모여든 모든 유대인들에게 이처럼 널리 알리는 것일까?
그 단서는 38절의 “그 뒤에” 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에서는 정말 중요한 이 말을 지워버렸다. 원어에서 그 뒤에 라는 말은 원어에서 “이러한 일들 후에” 라는 뜻이다. 지난 주 말씀에서 나온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된 뒤에 라는 뜻이다. 예언들이 성취된 뒤에 요셉과 니고데모는 함께 예수의 장례식을 왕의 장례식이요 의인의 장례식으로 치르기로 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비밀리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배우던 제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또한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들이었다. 특별히 당시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은 대부분 율법에 정통한 학자들이었기에 요셉과 니고데모도 구약성경에도 아주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들이 알고 있던 구약과 맞추어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의 재판과 처형 과정을 다 지켜 보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퍼즐을 맞추고 나니 몇조각이 비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고 그 몇조각이 채워졌던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구약성경이 성취된 것을 다 지켜 보고는 ‘아!’ 하고 머리를 탁 치며 깨달았을 것이다. 예수는 진정으로 구약에 예언된 유대인들의 왕이요 메시야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가 살아 있을 때에도 숨었던 저들이 아무런 보상도 해줄 수 없는 스승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걸고 이런 일을 꾸밀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이들이 한 일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고 흠이 없는 의인이라는 장엄한 선포이다. 그것도 많은 당시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든 명절에 선포하여 최고의 광고 효과를 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