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5일 사순 제1주간 (토) 복음 묵상 (마태 5,43-48) (이근상 신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5,43-44)
사랑의 결과를 가늠하는 이는 할 수 없는 사랑이다. 원수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사랑을 받고 있는 줄도, 애쓴 노력도, 그 무엇도 가슴에 담지 못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는 이는 사랑하는 행위와도 싸워야 하지만, 예측가능한 미래와도 싸워야 한다. 사랑의 열매가 누군가의 회개와 화해, 그 가시적 성과라면 원수를 사랑하는 이는 실패할 위험이 높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늪에 빠지는 것. 힘을 빼도, 수영을 배워도 살아나올 수 없다.
그러니 예수의 사랑은 무엇인가. 그는 사랑의 성공을 말하는 이가 아니라 사랑의 실패를 말하는 이일까. 아마도... 그럴지도. 만일 그 자신이 그리 사랑한 자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십자가라는 이상한 길에서 사랑을 쏟아부은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이가 아니라면 이 초대는 사기이거나 허풍.
오직 그리 해 본이가 하는 초대이니 우린 마음을 기울여 본다. 그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외길이라고 하니 가늠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리 몸을 던지는 것이다.
사랑은 턱을 약간 올리며 이게 이런 저런 결과를 내겠지하며 돈을 내 놓는 투자자의 심정이 아니다. 사랑은 이미 망해버린 사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 사람들이 말리지만, 낯선 문을 여는 행위. 오직 그 문에 들어간 자만이 알 수 있는 사태에 희망을 두는 믿음. 기쁨이란 세계를 옮겨온 자만이 누리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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