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거 대성황인데요."
여자 광대는 서커스에 입장한 사람들을 보고는 이야기했다. 평소에는 절반 정도 밖에 차지 않았던 객석이 오늘은 자리가 없어서, 서서 구경을 할 정도였다.
"역시, 광고 모델이 좋으니까 이렇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장님."
여자 광대가 단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쳇, 모델이 좋은 게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이 예술(서커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단장은 여자 광대의 말을 되받았다.
"역시, 단장님이 하던 호객 행위랑은 뭔가 다른데요."
그러나 여자 광대의 비아냥은 계속되었다.
"쳇, 어째서 내가 하면 호객 행위고, 저 녀석이 하면 광고야?"
단장은 투덜거리며 자리를 피하듯이 일어서고는 여자 광대의 말을 되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세일론에게 돈을 두둑히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서커스단이 온 마을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세일론은 천막의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몸을 기대어 사과를 먹고 있었다. 그가 이 곳에 이렇게 있는 이유는 리나가 이곳에 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리나는 집에서 아버지에게 돈을 받지 못하여, 입장을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서 쓸쓸히 사과나 먹고 있는 것이다.
"이봐! 정말 들어와서 구경하지 않을래?"
어느새 그를 찾아온 단장은 그에게 들어올 것을 권했다.
"괜찮아요. 별로 심심하지도 않고...."
세일론이 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정말 심심한 그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 북적대는 것을 더 싫어한 그는 이 것을 거절했다.
"그래? 할 수 없지."
그리고는 단장은 세일론에게 금화 한줌을 쥐어 주었다. 약 20골드정도 되는 양이었는데, 겨우 몇 시간 해 주는 걸로는 엄청난 수익이었다.
"우와! 단장님. 고맙습니다."
세일론은 그 돈을 받고는 표정이 확 풀려서 고개를 90°로 숙여 인사했다.
"하하, 인사까지 받을 정도로 늙지 않았는데(단장은 한 17살 정도로 보였다.), 어쨌든 대신 내일도 해 줘야겠는데, 괜찮겠어?"
"당연하죠. 얼마든지 해 드릴께요."
세일론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아, 갑작스럽긴 하지만 자넨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가?"
단장의 갑작스런 대답에 세일론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음, 될 수만 있다면 황금기사단이 되고 싶어. 그게 될 수 없다면 모험가나 될까?"
황금기사단은 아리아드 연맹의 최정예 마법기사단이다. 이 곳은 왕궁의 근위대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 뽑히기 위해서는 지룡과의 1:1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음, 그게 될려면 최소 16세가 되어야만 할텐데....지금 나이가 몇입니까?"
단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에 말한 것 같았다. 세일론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15살 이예요. 그래서 내년이 되면, 수도로 시험을 치러 갈꺼예요."
그 말을 들은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렇게 말한 뒤, 단장은 서커스 쪽으로 사라졌다. 그는 서커스 쪽으로 가면서 미소를 지은 채,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과연, 내일도 일을 할 수 있을까?"
천막 안에서는 서커스가 한창이었다. 곡예사들의 곡예는 환상적이어서, 많은 이 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조련사들과 동물들 역시 어린이들에게 큰사랑을 받았다. 공연은 점점 무르익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마을의 입구에서는 병사 두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 곳 글루덴 마을은 챠인 성의 자치구에 속해 있는 2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챠인 성과는 걸어서 사흘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펠 왕국과 상당히 가깝긴 하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운 마을이다. 특히 마을이라서 성벽은 존재하지 않았고, 마을은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이다. 이 곳은 병사들이 주둔해 있진 않지만, 마을 자율 방위대는 존재하기 때문에, 마을의 입구에선 두 사람의 병사가 가벼운 신분 검사를 하고 있다. 병사 중 하나는 고참인지 담배를 입에 문 채, 다리를 책상에 꼬아 얹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창을 들고, 긴장된 듯 서 있는 것을 봐서는 신참인 것 같았다.
"이봐! 무슨 이상있냐?"
고참이 담배를 비벼 끄며, 신참에게 물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신참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쳇, 너무 한가한데....어디서 몬스터나 안 나오나? 평소에는 잘만 오던 상인들도 침묵이고....마을에선 서커스 한다고 하던데....거기나 가볼까?"
그 말을 들은 신참은 고참을 바라보고 피식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비춰졌다. 지평선의 너머에서 먼지바람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오거들이나 지룡이라도 나타난거야?"
신참이 표정에 이상이 생긴 것을 느낀 고참이 창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사실 이 마을은 오거들이나 지룡의 습격을 자주 받아 왔다. 오거들은 4~5명 정도가 몰려 왔었고, 지룡은 거의가 단독으로 왔었다. 특히, 근처에는 지룡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그들 마을의 특산물인 드래곤 슬레이어와 드래곤 스케일을 만드는데, 쓰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신참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지평선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 곳에는 수백에 달하는 지룡과 와이펀, 좀비들이 마을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비상종을 울려라. 나는 마크엘님을 모시러 갈테니...."
상황의 심각함을 눈치 챈 고참은 신참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 다음 곧장 남쪽의 산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뛰기 시작한 고참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한 다음 입구 근처에 있는 비상종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비상종은 마을에 위험이 있을 때, 자율 방위대를 소집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기억하기에는 이 종이 울린 적은 천년전쟁 이후로는 단 한번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상종을 울리지 못 했다. 그가 다가가기 전에 이미 재빠른 와이펀들이 도착하여, 그를 배어버렸기 때문이다.(와이펀들의 발톱은 날카로운 반월형 검과 비슷하다.)
천막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있던 세일론은 마을 입구 쪽에서 밀려오는 이상한 폭발에 불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즉시 서커스 천막 안으로 들어가, 그의 장비를 착용하러 달려갔다.
같은 시각에 단장 역시, 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서커스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와 팔짱을 낀 채 그 것을 보고 있었다.
"벌써 시작인가? 조금만 더 놀고 싶었는데...."
천막 안으로 달려든 세일론은 자신이 갑옷을 벗어둔 분장실에 도착했다. 가뿐숨을 몰아쉰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신의 무기가 구석에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레더와 아머를 착용하고, 허리에 검을 찼다. 그 시간은 약 2~3분 정도였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 같았다. 그 사이에 큰 폭발 소리와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가 나왔을 때는 이미 몬스터들이 나타난 후였다. 서커스 천막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빠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들은 북쪽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훗, 남쪽이라고 상황이 좋진 않을텐데...."
단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남쪽에서도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다. 북쪽에서 나타난 지룡들과 와이펀, 좀비에 이어, 남쪽에서는 검은색 갑옷으로 무장한 군대들이 곳곳에서 건물을 파괴하고, 살육을 일삼았다. 단숨에 마을을 아수라장이 되었다.
"북쪽에 용마장군과 사신....남쪽은 다크 나이트들이라니....아예 마을 하나를 없애려고 작정을 했군."
단장을 이렇게 말하면서, 서커스 단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 역시, 단장과 비슷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들의 서커스 세트를 여유롭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일론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리나를 찾으러 갔다. 그녀의 집은 마을의 중심에 있어서, 피해는 적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빨리 이 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도저히 움직임이 상당히 느렸다.
"비키란 말야. 젠장! 빨리 비켜."
세일론은 마치 협박하듯 인파들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가갔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람들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제기랄! 이런...."
그 때, 어딘가에서 그들을 향해, 섬광이 날아들었다. 그 공격력은 상당하여, 사방에 있던 모든 이들이 한방에 사라져 버렸다. 세일론도 이 것에 맞아, 잠시 정신을 잃었다.
"쳇, 나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건 질색이라구!"
어딘가에서 날아온 금발에 175정도의 키를 가진 마족이 나타났다. 그의 머리는 무스를 바른 듯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키가 180을 넘어보였다.
"그나저나, 그 빨간 돌멩이는 어디에 있는거지? 제길, 빨리 찾아야 할텐데...."
그런 뒤에, 그는 마을의 중심부로 사라졌다. 그 뒤에 얼마 되지 않아, 세일론은 깨어났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다크 나이트라고 불리는 검은 갑옷을 입은 군인 하나뿐 이였다. 주위에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주위에 생명의 반응을 느낀 것인지, 다크 나이트가 세일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검을 뽑았다.
"후, 좋아. 하나정도는 처리를 해야겠지."
세일론 역시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았다. 상대방의 검은 롱 소드 계열의 검이었는데, 검마저도 검은색을 띄였다. 다크 나이트가 먼저 세일론에게 달려나갔다. 다크 나이트가 그를 향해오는 스피드는 상당히 빨랐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갑옷은 무게가 상당할 것 같은데, 그 것을 착용한 채로 그 정도의 스피드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리고는 세일론에게 검을 휘둘렀다.
'좋아. 한번 막아 보자.'
그렇게 마음먹은 세일론은 쇼트 소드를 그에 맞게 휘둘렀다.
부-웅....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두 검은 충돌했다. 다크 나이트는 상상이상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것을 정면에서 막은 세일론은 팔이 마비되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제길!"
세일론은 곧바로 뛰어서 그 자리를 피했다. 솔직히 세일론은 다크 나이트에게 파워에서는 상당히 밀렸다. 또한 검을 휘두를 때의 스피드도 세일론보다 위였다. 지금 세일론이 다크 나이트에게 앞서는 것은 움직일 때의 스피드와 마법, 그리고 반응속도였다.
"좋아. 천천히 움직이면서, 기회를 봐서 역습을 날리는 수밖에...."
그는 대체로 발을 사용한 풋워크를 통해 천천히 도망가면서 공격을 했다. 그러자 다크 나이트는 갑옷의 무게 때문에, 따라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좋았어."
그는 도망가던 발을 멈추고는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세일론의 갑작스런 공격 형태의 변화에 당황한 다크 나이트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세일론은 다크 나이트의 검의 사정거리 바로 앞에서, 멈췄다. 결국 다크 나이트는 헛 스윙을 한 타자같은 자세를 취한채, 멈춰있었다. 아까의 동작이 워낙 컸기 때문에, 빈틈이 상당했다. 세일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미리 모아둔 마력을 분출했다.
"라이트 닝!!"
그의 손에서 강력한 벼락 한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라이트 닝의 직격에 맞은 다크 나이트는 힘없이 쓰러졌다.
"쿠-웅"
세일론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다크 나이트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V자를 지은 다음, 리나의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쿠아-앙
지룡의 브레스에 의해 엄청난 소음과 함께 집이 무너져 갔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 쓰러지는 것을 구경조차 하지 못 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들에게는 짐을 쌀 여력조차 없어서, 대부분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목슴만을 부지하기 위해, 뛰고 있었다.
쿠아-앙
다시 한번 폭발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리나는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부모는 외출을 한 뒤에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피난을 가지 않은 채, 집구석에서 혹시라도 돌아올지 모르는 그녀의 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려웠다. 이미 많은 마을사람들이 죽거나, 마을을 빠져나가서 그런지 마을은 조용했다. 아니, 빠져나간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콰아-앙
이번의 폭발은 그녀의 바로 옆집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귀를 틀어막고, 고개만 숙였다.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고여 있었다.
똑 똑 똑
분명히 노크 소리였다. 그녀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문을 뛰어나갔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무서워 죽는 줄 알았...."
그러나 문밖에서 그녀를 기다린 것은 부모가 아닌 검은 색의 갑옷을 입은 다크 나이트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금발에 무스를 발라 머리를 세운 듯한 마족이 서 있었다.
"드디어 찾았군. 붉은색...."
그것을 본 리나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가....가까이 오지 말아요."
그런다고 가까이 오지 않을 다크 나이트들이 아니었다.
리나는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벽에 닿아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그녀를 향해 오는 다크 나이트들과의 거리는 계속 좁혀지기 시작했다.
"아....아!"
이제 그녀와 다크 나이트와의 거리차는 없었다. 다크 나이트는 그녀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하늘로 치솟은 날카로운 검 광이 빛났다.
"꺄-아악!"
그 순간 리나에게서 정확하게는 그녀의 목걸이에서 엄청난 붉은색의 섬광이 집 전체를 휘감았다. 집 밖에서도 그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빛은 약 5초 정도 계속되었다.
"이게 뭐지?"
리나는 자신의 목걸이에서 나는 붉은색의 섬광이 상당히 신기했다. 섬광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다가왔던 다크 나이트들은 가루가 난 듯, 사라져있었다.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웃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표정도 얼마가지 않았다. 금발의 마족이 은색의 바리어에 둘러싸여서 강력한 스파크를 내고있었기 때문이다.
"쳇, 그렇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더니...."
그 말에 리나는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저 돌멩이는 착용자부터 원거리에서 죽여야한다고 그렇게 말했더니...."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금발의 마족은 리나를 향해 손가락을 퉁겼다.
"꺄-아악!"
그러자 리나가 있던 곳에서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집 한쪽이 무너져 나갈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폭발에 의하여 리나는 집밖으로 튕겨 나가 버렸다. 금발의 마족은 공중에 약간 떠서 리나를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훗, 이 정도면 죽진 않았겠군."
그는 리나의 앞에 도착했다. 리나는 배 쪽에 구멍이 뚫린 듯, 다량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하아....하아...."
리나에게서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서는 이제 움직일 힘조차 있지 않았다.
금발의 마족은 리나에게서 목걸이를 빼기 위해 천천히 허리를 숚였다. 그러나 그 행동은 뒤에서 들려온 갑작스러운 소리에 의해 저지되었다.
"리나!"
세일론이 그 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리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현재 리나는 다량의 피를 흘려서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세....세일....론?"
리나는 세일론이 온 것을 확인 한 것 같았다.
"리나 괜찮아?"
세일론은 질문은 괜찮다는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도....도망쳐...."
리나는 자신이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그러나 세일론은 여기에 신경 쓰지 않고, 금발의 마족을 바라보며, 소리질렀다.
"이 녀석! 죽여버리겠어."
그렇게 말한 세일론은 검을 빼들고는 금발의 마족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쳇, 귀찮은 녀석."
금발의 마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일론은 이 말에 개의치 않고, 계속 전진했다.
"하-앗!"
크게 기합을 지른 세일론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금발의 마족의 몸 근처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 세일론의 검을 멈추게 하였다. 그 스파크에 닿은 세일론의 검은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니? 이럴수가?"
그 때 금발의 마족의 손이 세일론의 얼굴을 잡았다. 엄청난 힘이었다. 세일론은 금발의 마족의 한 손에 들어올려졌다.
"죽어!"
콰-앙
금발의 마족이 나직히 중얼거린 말과 함께 그가 감싸고 있던 세일론의 머리에서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세일론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흥.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녀석이 까불기는...."
그렇게 말한 금발의 마족은 다시 리나에게 다가갔다. 리나는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숨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서서히 시야가 흐려졌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암흑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재미없군.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괜히 선봉을 맡았군."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리나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때어냈다. 목걸이는 주인과 상태가 비슷한지 아까와는 달리 아무런 빛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쓰러져 있던 세일론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어보았다. 온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얼굴 쪽은 특히 아파왔다. 그는 시야가 돌아오자 주위를 살펴봤다. 주위엔 여전히 금발의 마족이 서 있었다. 그는 놀라운 얼굴로 그를 쳐다 보았다.
"오~ 굉장한 걸. 그걸 맞고도 살아있다니, 굉장한 맺집인데?"
세일론은 지금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검을 세웠다.
"훗, 멋진 자세다. 죽을 것 같으면서도 검을 세우다니....내가 오늘은 특별히 살려주지."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말투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등을 돌려 천천히 움직였다. 세일론은 검을 집어넣고 리나에게 달려갔다. 이미 리나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저 고개를 돌려 세일론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리나, 일어나 봐. 리나!"
세일론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리나는 그저 고개를 들어 빙긋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나....아직 너랑 키스도 못 해 봤는데...."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마치 그 말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있었던 것 같이....
"리나....리나! 리나, 정신차려. 리나!"
세일론은 리나의 팔을 흔들며, 계속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그의 부름에 대답할 수 없었다.
"리나....흑....흑...."
세일론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아이였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백에 리나가 자기도 좋아한다는 말을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쳇, 이래서 나는 멜로 드라마는 싫다니까...."
뒤에서 들려오던 흐느낌에 금발의 마족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흑흑....흐흑....흐....크....크큭...."
언제부터인가 세일론의 울음소리가 웃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금발의 마족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야? 너무 충격 받아서 미치기라도 했....?"
그 순간 그를 향해 무엇인가 길쭉한 것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붙어있던 리나의 팔이었다.
"으앗! 이게 뭐야?"
금발의 마족은 그것을 순간적으로 피한 뒤, 그 것이 날아온 장소를 보았다. 그 곳에서 세일론은 금발의 마족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의 눈가엔 여전히 눈물의 자국이 있었지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녀석 뭐가 어떻게 된거야? 죽은 자기 애인의 팔을 떼어내다니....그리고 이 측정하기조차 힘든 마기는 대체....?'
금발의 마족은 세일론을 바라보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그의 몸은 묘한 공포에 의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때 세일론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세일론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야? 무슨 짓을 할 생각이지?'
그 순간 엄청난 뇌전의 마력이 세일론의 손에서 뿝어져 나왔다. 금발의 마족은 거의 본능적으로 바리어의 방어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그 파워는 굉장했다. 금발의 마족 뒤에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바리어로 그 것을 막은 금발의 마족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바리어 속에서도 그의 몸에 스파크가 일어날 정도였다.
'크윽, 이럴수가!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이야. 그 것도 보통의 인간이 그냥 단순한 마력의 방출임에도 불구하고, 뇌전 속성을 지니고 있다니....굉장한 걸.'
금발의 마족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세일론의 등에서 4장의 검은색 날개가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약 2m에 육박할 정도였다.
"큭큭...."
세일론은 여전히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용어 해설
오거 : 키가 3~4m가 넘는 인간형의 몬스터로 식육을 자주 즐긴다. 힘이 굉장히 세다. 지능은 오크들의 절반정도다. 언어는 당연히 사용할 수 없으며, 집단으로 서식하지 않고, 혼자서 산다. 무기는 대체로 도끼와 같이 힘을 위주로 쓰는 무기를 사용한다.
드래곤 슬레이어 : 대체로 지룡의 이빨이나 발톱으로 만든다. 용의 가죽은 단단하여, 웬만한 금속으로 뚫을 수가 없는데, 그 이빨과 발톱을 잘 가공하면 뚫을 수가 있다. 그 가공한 것이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이다. 드래곤의 가죽을 뚫을 수 있는 만큼, 강한 공격력도 가지고 있다. 상당히 비싸다. 지룡의 아닌 실제의 드래곤을 가지고 만든다면, 그 가격은 거의 천문학적으로 뛰어 오른다. 물론 그만큼 성능도 탁월하다.
드래곤 스케일 : 드래곤 슬레이어와 같이 대체로 지룡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으로 상당히 단단하다. 웬만한 화살은 그냥 튕겨내 버리고, 보통의 무기조차 뚫지 못한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역시, 실제 드래곤으로 만든다면, 그 가격은 천문학적이고, 성능도 탁월하다.
좀비 : 죽은 시체를 조종하여,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한 몬스터이다. 이들은 감정이 없고 명령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또한 재생능력은 없지만, 팔·다리를 배거나 목을 배더라도 게속 움직이기 때문에, 상당히 귀찮다. 턴 언 데드와 같은 마법으로 한번에 없앨 수도 있다.
라이트 닝 : 손에서 뇌전의 한 줄기가 나오는 마법이다. 뇌전 마법 계열 중에서는 초급이지만, 공격력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