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또 다른 고향” 또 해석.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 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해석—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다른 모든 시의 속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시입니다.
“백골”은 죄 없이 죽은 시인의 “감성적 자아”를 뜻하고, ‘’나(내)’’는 ‘’백골’’을 관찰하는 “이성적 자아” 입니다. 즉, 내가 나를 관찰하는 형식의 시입니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일 부분의 모습이 전체의 모습과 통한다. 즉, 조선 전체가 어둠이고, 윤동주 시인은 조선 전체에서 동족에게 백골(왕따) 되었음을 뜻합니다. / “하늘에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다음에 하늘에서 올 것은 빛, 전쟁, 재앙, 등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아닐 수 도….
시인은 죄 없이 죽은 백골(왕따(별)) 된 것이 꼭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작용반작용, 상대성 원리로써, 어둠 바람의 배척으로써 (위인을 상징하는) 별 빛이 되었으니, 기뻐서 우는 것인지! 시인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자위합니다. 이것을 나르시즘 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엄청난 어둠에 대응 관계인 빛은, 엄청난 다수가 반증하는 반영(反影)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어둠을 짖는 개가 되었습니다. 시인이 글을 쓰고 전한 것이 죽을 짓이 되고, 개의 자식이 된 이유입니다. 그것은 말로만 위협 받은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가 따르는 것입니다.
시인은 추억의 고향을 잃었습니다. 이웃과 친구들까지 모두 어둠에 잡혔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감성적 자아(백골)’’는 ‘’고향을 배신하지 말라!’’ 하는데, ‘‘이성적 자아”는 “조선은 죽었어! 아름답지 않아! 떠나야 해!’’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백골 몰래” 떠납니다.
이 시를 보면 윤동주 시인은 일제에 저항한 것이 아니고, 고향(조선)의 어둠 바람에 위협 받고 쫓긴 것입니다. 즉, 윤동주 시인은 예수님과 똑 같은 입장입니다. 식민지 동족에게 먼저 한 번 죽임 당하고, 지배 국에게 다시 죽임 당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70년 전의 그 어둠 바람이 다시 시작 되었고, 지금 다시, 윤동주 시인의 화신이 계속, 고향 땅의 모든 곳에서 감시 음해 위협 차단 당하고, 쫓기고 있습니다. 아, 그러나, 어둠과 빛은 필연적인 짝이고, 밤이 깊을수록 아침이 밝고, 하늘은 위대할 뿐입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죽어도 죄 짓지 않겠습니다. /별(빛)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어둠)을 사랑해야지/ --서시--/ 사랑합니다. 당신과 저는 음양의 단짝 이십니다. 제가 없으면 당신도 없습니다. 이제 저의 길을 가야겠으니 저를 놓아 주세요. 그래야 당신들도 살 수 있습니다.
음양의 원리는 달(어둠)과 해(빛)가 서로를 끼고 돌아, 공존하는 원리인데, 음이 양을 넘으면 공멸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오직, 어둠을 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선과 진실을 분서갱유(焚書坑儒)하고 자기 영혼의 눈 코 귀 입 염하고, 죄 덮는 사람들만 사는 일은 없습니다.
첫댓글 윤형주장로님(가수)과 윤동주님과는 사촌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