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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아시아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시인
따이공(代工/带工)이란?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보따리상인, 소무역상인, 또는 현대판 보부상 등으로 불려진다. 일반인들이 알기로는 한국과 중국을 배를 타고 오가면서 상품을 나르거나 가져다 판다고 알려져 있다.
나도 중국에서 한국 상품을 주문하고 중국으로 가지고 올 때 물류 회사에 운송을 부탁 하면 대부분의 경우 따이공을 통해서 가지고 온다고 했다. 내가 주문을 했던 상품은 화장품인데, 화장품은 판매 하려고 하는 나라의 위생허가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수입검사와 비싼 세금에 그 절차가 많이 복잡하고 기간이 길어서 작은 상인 들에게는 당연하거니와 큰 회사들에게도 그 비용과 시간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큰 회사에서도 일부분만 위생허가를 받아서 정식 수입절차를 받고 나머지는 따이공을 통한 비교적 간소한 절차에 의한 한국의 상품을 중국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밖에 상품거래을 트기 위한 견본품 거래와 한 콘테이너에 채울 수 없는 비교적 작은 량의 소무역 거래에서 이들 따이공 들을 통한 상품의 운송이 이루어 지고 있다.
따이공이라는 직업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가?
멀리 본다면 아주 더 오래 되었겠지만 우리가 잘아는 기록에는 장보고의 상단이 있었다. 현대에 우리가 부르는 따이공은 중국이 개방이 되고 1990년대 초부터 시작 되었다.
내가 1990년대 중반에 중국을 배로 갈 때 이미 따이공의 상단을 볼 수 있었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이 중국세관을 통과 할 때 따이공 아주머니를 도와주었던 기억도 있으니 현재의 따이공의 역사는 20년은 되겠다.
금융위기가 와서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받을 적에도 따이공이라는 직업이 힘은 들어도 상당한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도 기록물(다큐멘터리)로 다뤄지며 수출의 역군으로 묘사 되기도 했다.
따이공은 어떤 사람이 하는가?
전에는 비교적 젊은이들로서, 장사에 눈이 트이거나, 물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배 위에서 생활을 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 거래를 하였다. 그런데 현재는 여러 가지 여건이 따이공들에게 직업인으로써 충분한 수입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에 주로 정년 퇴직을 한 60대와 70대 할아버지들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비교적으로 중국에서도 저 소득층에 속하는 중국인들이 따이공에 합류하고 있다.
따이공이 뿔났다! 왜?
지난 10월 말과 11월 초에 mbc 뉴스에서 중국을 오가는 따이공이 해운회사와 세관등과 밀착하여 중국상품을 불법적으로 들여오는 아주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밀수조직이라며 편파적인 보도를 하였다.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3일을 기획적으로 집중해서 보도를 했는데, 상단의 대표상인(상단을 이끄는 사장)들은 따이공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세관공무원들에게 술대접과 성 상남까지 한다고 보도를 하였다.
이에 따이공들이 mbc는 언론의 권력을 이용한 편파보도라며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본사 앞에서 3일간 편파보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였고, 이어 대전의 관세청에서는 소무역 상인도 정식 상인으로 인정하고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요구를 하며 몇 일간 더 시위를 하였다.
Mbc가 편파적 보도를 한 이유는?
한국의 평택시과 중국 산동성 일조시(日照市)를 오가는 따이공 상단중 대표상인한 사람이 다른 상단과 일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다 고객들을 모두 잃게 되자 앙심을 품고 친척인 mbc기자에게 말하여 철저한 법의 기준으로 따이공 상단들의 좋지 않게 볼 수 있는 면을 부각 시켜서 보도를 하게 했다고 한다. 선박회사와 세관, 상단이 함께 짜고 하는 전문 밀수 조직이라고 강도 있게 보도를 하였다.
따이공의 하는 일과 현실
따이공
현재 한국의 인천항, 속초항, 평택항과 군산항에서 중국의 요녕성의 단동, 대련, 영구, 하북성의 천황도, 북경 근처의 천진, 산동성의 연태, 위해, 청도, 석도, 영성, 일조, 강소성의 연운강등을 오가는 노선이 20여개 정도 된다.
여기에 거의 매일 배에서 생활 하면서 양쪽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는 따이공은 5,000명 정도 된다. 앞에 말했듯이 앞에 돈벌이가 잘 되던 때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사람 숫자도 더 많았는데, 이제는 사정(단속과 규제)이 변하여 60대와 70대의 나이든 분들이 대부분이며 비교적 젊은 중국인들과 소수의 한국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이공의 주류를 이루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은 사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눈치를 보면서 생활을 해야 하는 분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디 취직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집안 사정이 넉넉하여 노년의 삶을 마음 편히 즐길 수도 없는 분들이다. 자식들에게 눈치 보면서 용돈을 얻어 써야 하는 사람들이거나 그 용돈도 얻어 쓸 수가 없는 처지의 노인들이다.
그런데 배를 타면서 따이공 생활을 하면 비록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적지만 스스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도 줄 수가 있기 때문에 따이공 생활을 한다. 따이공들 중에는 노숙자 출신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기 보다는 어느 쪽으로 보나 당연히 낫다. 따이공들 사이에서는 노숙자가 아닌 배숙자라고 스스로를 부르기도 한다.
생활
한국에서 중국사이의 뱃길은 가까운 거리인 산동성은 17시간에서 먼 거리인 천황도, 영구, 천진, 영운항 등은 24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는 하룻밤을 배에서 자야 다음날 목적지에 도착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4일은 배에서 자야하고 3일은 육지에 내려서 자는데, 대부분 중국 쪽에서 두 밤 한국 쪽에서 한밤을 보내게 된다. 중국 쪽에서 잘 때에는 상단에서 준비한 숙소에서 자거나 조선족 동포들이 하는 민박집, 또는 한국식 찜질방에서 자고, 한국 쪽에서는 집이 멀지 않은 사람들은 집에 가서 자고 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가까운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항구로 모인다.
한국 쪽에서는 배가 떠나기 세시간에서 다섯시간 전에 여객터미널에 나와 배표를 받고 배에 올라가 정해진 방으로 가서 배가 떠나기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동료들과 잡담을 한다. 배를 탈 때 들고 가는 짐은 본인의 소지품 밖에는 거의 없다. 이때 밖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젊은 따이공들이 중국으로 판매되는 상품들을 선사에서 정해준 무게와 크기에 맞게 다시 포장을 하여 선박회사가 제공하는 수출용 콘테이너에 실은 다음 배에 올라가는데, 젊은이들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는다.
선박회사에서는 전체 상단에 따이공 숫자에 비례하여, 무게로 계산하여, 배에 실을 수 있는 수출용 콘테이너의 숫자와 배의 내부의 일부 공간, 그리고 갑판에 상품을 올려서 쌓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부두 밖에서 일정한 무게에 의한 규격에 따라 포장된 상품들은 우선 콘테이너에 실려 일부는 배 아래층의 콘테이너와 함께 실리고, 일부는 젊은 따이공들에 의해 등짐으로 배 안의 창고로 올려지고, 또 일부는 기준기를 이용하여 배 위 층의 갑판으로 올려져 쌓이게 된다.
각종 상품을 포장하고 싣고, 내리고 다시 배에 올려 다시 쌓고 하는 일은 젋은이들이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조금 더 받는다. 이 일은 상품이 세관을 통과하기 전에 몇 시간이 필요하고 세관을 통과한 후에 배에 모두 실리는데 또한 몇 시간이 필요하다. 배는 여객들이 모두 배에 타도 짐을 올려 정리가 되지 않으면 배는 출발을 하지 못한다.
짐을 모두 싣고 배가 떠나면 밥을 먹고 몸을 씻고 각자의 방에서 동료들과 텔레비전을 보거나, 대청(lobby)에 나와 쉬면서 대형 텔레비전을 보거나, 식당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다가 잠에 든다.
다음날 예정시간 비슷하게 중국에 도착 하면 일반여행객들이 먼저 내리고, 이어서 따이공들이 내린다. 물론 젊은 따이공들은 전날 실은 상품들을 배에서 내리는 일을 한다. 내려서 다시 중국세관의 화물차에 싣고 세관의 일정한 곳에서 통관 절차를 밟는다. 중국세관원들은 화물차에서 내리는 상품들을 하나하나 지켜 보다가 의심이 되는 포장은 뜯게하여 검사 한다. 이는 수입이 금지된 품목을 찾기 위함이다. 거의 모두가 한국의 공산품인 이 상품들은 대부분은 세금 없이 그냥 통과 된다.
중국쪽에서 돌아올 때에는 한국에서 보다는 조금 늦게 와도 된다. 별도로 상품을 포장하고 싣고 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배를 타고 하룻밤을 지나서 이튿날 한국의 항구에 도착하면 따이공들을 중국에서 가지고 온 농산물을 들고 배에서 내려 세관에서 검역을 받고 확인서를 받아 다시 검색대에서 짐을 샅샅이 검사를 받는다. 일반여행객들은 비교적 쉽게 이 검색대를 통과하지만, 따이공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세관직원들은 느낌으로 따이공임을 아는 듯 하다. 그래서 소지품까지 자세히 검사를 하고 통과 시키고 있다.
따이공 조직
한 두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수 백 명이 함께 하는 일에는 당연히 체계와 조직을 필요로 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한국 상품이 필요한 사람이나 무역회사(한국의 수출업자 중국의 수입업자)가 상품의 운송이 결정이 되면 한국의 물류회사에 운송을 부탁을 한다. 물류회사들은 따이공 상단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운송을 다시 부탁한다. 일종의 하청이다. 한 상단의 따이공은 적게는 몇 명에서 몇 십 명 까지 되는데, 상단을 이끄는 사람들을 사장이라 부른다. 이 사장들이 상품운송을 위탁받아 자신의 상단의 따이공들과 함께 배를 타며 상품을 운송하여 중국쪽의 물류회사에 넘겨주면 따이공 상단의 임무는 끝나게 되고, 중국쪽 물류회사는 자신들의 화물차나 택배회사를 통하여 수입업자에게 전달 된다.
수출업자(상품공급자)-한국물류회사-따이공상단-따이공-중국물류회사-운수회사/택배-수입업자(상품수요자)
상단은 대부분 한국인 사장들이 이끌고 있지만 소수의 조선족 동포와 중국 한족도 있다.
따이공 상단은 무역거래의 과정 중에 국경을 넘어 수출과 수입통관을 해야 하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을 담당 한다.
따이공들의 수입원, 비용과 수입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내가 중국에서 화장품 운송을 의뢰하면 Kg당 2500원에서 2800원 사이의 운송비를 냈다. 화장품은 특별한 품목이라 좀 비싸고 다른 상품들은 1800원에서 2000원 정도 된다. 이는 인천에 있는 물류회사에서 의뢰 받아 따이공 상단에 위탁이 되는데, 이때 물류회사는 상단이 있는 항구의 여객터미널까지 상품을 운반해 주어야 한다. 이때 따이공 상단에 지급되는 위탁 운송비는 1100원 또는 1200원 정도라 하는데, 내가 관련된 화장품은 별도로 취급되고 아무나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 정부에서 받은 위생허가와 수입면장이 없으면 수입금지 품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1200백원의 위탁 운송비에서 상단 사장과 따이공의 수입이 발생 해야 한다. 선박회사에서 따이공 한 사람당 110kg의 상품을 싣게 해 준다. 다시 말하면 따이공 한 사람당 배 한번 탈 때 한국 공산품 110kg이 수출된다. 그 수출 상품의 가격은 따지지 않는다. 선박회사는 배의 운영비에 영향을 주는 무게에 관심을 갖을 뿐이다. 상품의 종류와 가격은 원칙적으로 세관의 관심 사항일 것이다.
따이공들은 선박회사의 여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따이공에게는 여비의 반을 깎아 준다. 함께 살아 가기 위한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일반실 뱃삯이 대부분 왕복 25만원 정도인데 반을 깎아주니 12만원 정도 된다. 이때 받게 되는 110kg의 상품 운송 할 수 있는 딱지를 받게 되는데 이 딱지의 가치와 할인된 뱃삯의 가치가 같게 된다. 정확하게 계산하면 뱃삯 보다는 좀더 되지만 상단의 숙소준비와 식사비등 잡비를 계산하면 상단에 남는게 없고 따라서 따이공에게 돌아갈 현실적인 수입은 없게 된다.
비용 중에 가장 큰 여비와 운임은 한국의 공산품을 수출 하면서 해결이 되고, 따이공에게 돌아갈 수입은 결국 중국에서 참기름, 콩, 녹두등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입하면서 얻는 차익이 따이공들의 수입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국의 규정상 개인일반 여행객들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중국 농산물은 품목당 5kg, 전 품목을 합하여 50kg를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50kg의 중국 농산물을 들여와 생기는 차익이 따이공의 수입에 절대적이다.
이 규정에 맞추어 중국에서 구입하는 금액는 우리돈 12만원 정도 된다. 이 것을 팔아 상단 사장과 따이공의 수입을 맞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면세점에서 술 한 병 담배 한 보루를 사서 맞춰 보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따이공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수입은 한 번 배타고 왕복 할 때 5-6만원이고, 상단 사장은 상단내의 따이공 한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은 만원 정도 된다. 따이공 한 사람이 한 달에 여덟 번 또는 아홉 번 왕복을 하면 대략 50만원 정도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이 걸로 남에게 용돈을 요구하지 않거나,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을 줄 수가 있다.
수출상품
한국에서 수출되는 상품은 거의 다 중소기업의 공산품들이다. 기계, 전자제품, 가전제품, 식품, 건축자재, 의료기기, 옷과 옷 만드는 원단등 수없이 많다.
수입상품
사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아주 간단하다. 참깨 콩 참기름 고추등의 농산물이 사실상 전부다.
따이공이 중국의 농산물을 들고 옴으로 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첫째 우리가 얼핏 떠오르는 것은 한국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여 우리 농민들이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상시에도 농산물 유통회사들은 많은 량의 농산물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한국의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거나 작황이 좋지 않으면 정부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 시킨다며 농산물유통회사를 통하여 중국에서 해당 농산물을 수입한다. 또한 한국에서 어떤 농산물이 넘쳐나거나 가격이 떨어지면 중국 농산물을 수입을 하라고 해도 가지고 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농민이 따이공이 중국 농산물을 들여온다고 해서 손해를 본다고는 할 수 없다.
국가나 사회적인 손해는 있는가?
해당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을 제외하고 다른 국민들은 모두가 해당 농산물의 소비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데 이들은 손해를 볼 일 이 없다. 상품의 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 수입유통회사
따이공들이 들여오는 농산물 때문에 손해를 보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 농산물수입유통회사들일 것이다. 그 량이나 차익에 있어서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이공의 필요성
작은 무역업체나 중소제조업체등, 소규모로 하는 중국과의 무역거래는 물론, 큰 기업들이 보내는 견본품 거래, 또는 정식 거래에 있어서도 중국의 수입규제적 규정과 절차 때문에 큰 기업체들도 따이공을 통한 대 중국 수출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이 따이공을 통한 수출이 아니고 정식 절차에 의해 중국에 수출을 한다면 많은 중소기업의 상품들은 현실적으로 그 수출의 기회가 없어 질 수도 있고, 대기업들도 수출 비용이 몇 배 늘어날 것이 분명하고, 대 중국 수출량이 바로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한국세관이나 편파적 보도를 했던 mbc기자도 이 따이공을 통한 수출상품이나 그 액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가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규정에 따라서 단속을 하고, 시청자의 눈을 끌 보도의 목적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내가 하면(수출하면) 사랑이며 낭만(좋은 일)이고, 남이 하면(수입하면) 불륜(불법 밀수)이라는 말의 의미와 통한다. 따이공들이 엄청난 물량과 액수의 우리 수출 상품들은 가지고 나가는 이른 좋은 일이라 보도 거리가 되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이 중국산 농산물을 가지고 오는 것은 밀수이고 나쁜 일이라 여겨 보도거리가 되어 그 부분만 집중 보도 하는 것이 그와 같은 맥락 아닌가?
따이공들이 들여오는 값싼 중국 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만 계산을 하고, 그들을 통하여 수출 하는 우리나라의 값비싼 공산품들이 수출되는 상품의 량과 액수를 무시한다면 이는 사물의 한 쪽만 보는 바보 같은 생각이다. 따이공들이 가지고 오는 농산물이 규정에 따라 밀수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 기업이나 사회에 훨씬 이로운 점이 많이 있다.
불법성과 합법성
정식허가를 받아 수입 하지 않고 중국 농산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개인당 자가 소비용으로 품목당 5kg, 각 품목 모두 합쳐서 50kg를 넘지 않는 한 관세청 고시상 허용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따이공 한 사람이 중국에서 농산물을 가지고 들어와 검역을 받고 세관을 통과하기 까지는 일단은 합법이 된다. 그래서 세관검색대에서는 통관이 된다. 그러나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팔면 불법이 된다. 그래서 따이공들은 세관 검색대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면 겁이 나고 긴장이 된다. 세관의 조사과 직원들이 따이공들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찾아서 곡물을 빼앗아 유치시키고 벌금을 물리기 때문이다. 따이공들은 매일 수출역군과 밀수꾼의 지위를 도깨비처럼 반복하며 살아 간다.
이러한 단속이 10년이상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가지고 올 수 있는 곡물의 량도 많고 시세 차익도 커서 수입이 좋았다. 그러나 그 량도 줄어 들었고 규제와 단속도 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이제는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젊은 이들 몇 몇 외에는 모두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이다.
관세청 고시(告示)상으로는 가지고 온 따이공 자신이 먹지 않고 남에게 팔면 불법이 된다. 그러면 이 관행이 거의 20년 정도 이어져 왔는데, 그 동안 관계당국은 왜 단속을 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었나? 내 생각으로는 따이공을 통해 수출되는 상품을 보고, 들어오는 곡물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거나 나쁘지 않다고 판단을 하여, 그냥 방관 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
해결방법
20여년 간 이어져 왔고 그 숫자도 현재 오천 명 정도 된다고 하고, 엄청난 량의 우리 공산품을 수출 하는 데 일조 하고 있으니 이미 따이공도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 메김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나 관계 당국에서는 우유부단한 태도로 방치해 수시로 언론 보도의 심심풀이 땅콩으로 두지 말고, 강력하게 단속하여 완전히 따이공이라는 직업을 없애는 방안을 선택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품들이 현실적으로 중국으로의 수출 길이 막히게 되지만, 따이공들이 없어지고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질 필요가 없고, 따이공과 관세청 직원들이 부두 밖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없앨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따이공이라는 직업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여 따이공 상단을 관리를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연구를 하여, 우리 사회에 피해가 없고, 일반 여행객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없고, 어려운 따이공들의 생존 수단도 보장해 주고, 또한 크고 작은 우리 기업체들의 대 중국 수출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을 도출하여 서로가 이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의 제도나 법규가 먼저 만들어져 국민들의 생활을 이끌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의 생활이 누적되어 관행 또는 관습이 되었을 때 국가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제도적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무조건 관세청 고시만 앞세워 단속 한다면, 중국 쪽 세관 입장에서도 한국 상품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냥 간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쪽에서는 그 곡물을 한국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안위하며 수많은 한국의 공산품을 문제 없이 받아 들인다. 어찌 하였든 그들 한국 상품들이 중국 사회에서 필요하기도 하니까, 반대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곡물들이 한국 사회에서 하니까, 만약 필요하지 않다면 따이공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중국의 농산물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번의 보도와 단속에 대한 소식을 중국 쪽에서 인지 했는지 중국에서도 한국 공산품 통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2월 1일부터는 이전처럼 그냥 통관 시키지 않겠다는 통지가 있다.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직업선택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 되어 있다.
*따이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인천과 칭따오를 왕복하는 배에서 사진 찍기가 시작 되었는데 기대 됩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반신반의,,,
그렇군요...법률과 상거래 관습, 기타등등... 복잡한 사회구조의 속살을 보는 듯합니다. 기본 입장이 불리한 영세상인들과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현실에서 불안한 노년을 보내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군요... 몰랐던 많은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기저기 난리가아니군요...ㅡㅡ;;
엠비씨가 한건했네 정부가 시켰을리 없고 정부 말을 들을리 없는 엠비씨가 한건 했어
수교후 대통령게서 노인들 용돈이라도 만들어쓰라고 허가한 정책인줄 아는데..... 매일 타는 따이공 들이 그많은 농산물 들고 와서 어떻게 혼자 다먹는단 말인가? 여행으로 한번 가신분이야 본인도 먹고 이웃간에 나누어 먹기도 하지만 계속 다닌 따이공들은 본인이 먹기 위해서 농산물 들여 오지는 않을것아님니까? 제 생각은 어떻게 하든지 노인들 소일거리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생각됨니다. 나이제한을 두면 젊은분들이 반대할가요... 그래도 젊은분들은 밖에 나가서 노동이라도 하면 따이고 수입보다 나을텐데.... 아무튼 노인들 소일거리는 어떻게든지 만들어 주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나그네 시인님 좋은정보 감사하고 잘보고 갑니다.
헉 장난아니다
먹고 살길이 없어 호구지책으로 하는데 정책적으로 관심좀 주셔야해요.
전에 중국 들어갈때 무거운 짐을 나르며 땀을 뻘뻘 흘리는 따이공들을 보며 안쓰러운 생각을 했었는데....아무튼지 좋은 제품만 들어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떻게 받아드려야할지...
삶이.......
잘 읽었습니다.. ㅠㅠ
난리도아니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