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높은 성(城)과 깊은 계곡 속으로
왜 인간은 높은 성을 쌓고 자연은 깊은 계곡을 만들었을까. 인간이 역사적으로 거대하고 높은 성을 쌓은 이유는 생존과 권력 그리고 중심지 역할 관리라는 기능성 목적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 이유는 시야 확보와 전술적 우위,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한 방어와 생존의 문제이다. 둘째는 권력과 위엄의 과시를 통한 지배력 강화와 심리적 압박의 정치적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전쟁 등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지대 제공과 장기전에 대비할 수 있는 요새 역할의 기능적 이유라 할 수 있다.
높은 성곽을 볼 때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들이 생각난다. 동방으로 가는 도중 시날 평지에서 거주하며, 그들은 인간의 이름을 높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려 했다. 이를 알아챈 창조주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간을 지면에 흩어지게 했다. 그때야 성읍과 탑 건설하기를 그쳤다는 기록이 성서에 나온다.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바벨탑이나 후세의 성곽 건축 목적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인간의 욕망이란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날 탐방은 에도시대부터 현존했던 난공불락의 성, 마쓰야마성(松山城) 오르기로 시작했다. 에히메현(愛媛縣) 마쓰야먀시(松山市) 해발 132m 높이 가쓰야마(勝山) 정상에 세워진 성이다. 관광객들은 성 부근까지 로프웨이나 리프트를 타고 오른다. 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등산로를 통해 오를 수 있다. 이제까지 본 나고야성이나 오사카성과는 높이와 규모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천수각에서 한눈에 펼쳐지는 마쓰야마 평야와 세토(瀨戶) 내해(內海)의 절경과 에도시대부터 남아 있는 역사적 건축물과 성안의 중요 문화재 21점은 충분한 볼거리이다. 이들은 천수, 망루, 성문,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수각(天守閣)은 일본 전통 성곽의 중심 누각으로 성의 상징이자 군사 지휘소(指揮所) 및 다이묘의 권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다이묘가 실제로 일상 업무를 보거나 거주했던 곳은천수각이 아니라 인근에 지어진 ‘혼마루고덴’(本丸御殿)이라는 저택이었다. 이곳의 천수각은 1854년에 재건축된, 에도시대 마지막 완전한 건축물로 천수의 혼마루(本丸)를 포함한 해발은 161m로 가장 높은 성곽이다. 봄이면 성 아래 펼쳐진 ‘시로야마(城山)공원’이 벚꽃 명소가 된다.
이음새도 없는 듯 단단하게 쌓은 성 석벽을 자세히 보면 석공 그룹의 작업 흔적인 ‘각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처럼 거대한 토목공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民草)의 희생이 따랐을까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실제로 동원된 정확한 인원수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당대의 역사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1600년 영주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가 착공하여 여러 번주(藩主)를 거쳐 35년 만인 1634년 무렵 완공되었으므로,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마루(本丸)를 오르기까지 경사가 급한 계단을 몇 번이나 거쳐야 하니 적군의 접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혼마루에 전시된 영주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의 일대기와 성곽 건축 및 구조 역사를 비롯하여, 시대별 성의 변천서와 수난사와 상세한 지도는 치열한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당시 사용했던 일본도(日本刀)와 갑옷과 투구를 체험할 수 있게 한 것 흥미로웠다.
이번 기회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쓰야마 번 영주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당시의 평면을 그대로 물과 잔디, 감귤류 등으로 재현한 곳이 있다. ‘마쓰야마성 니노마루(二之丸) 사적(史跡) 정원’이 바로 아름다운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일본식 정원이다.
마쓰야마 성곽을 뒤로 하고, 하타다 과자점(畑田本舗)으로 향했다. 이곳은 에히메현을 대표하는 오랜 전통의 화과자 전문점으로 유자 향 앙금과 밤이 들어간 명물 ‘하타타 쿠리 타르트(栗タルト)와 소금 버터 도라야키 ’도라이치‘(どら一)가 유명하다. 가게 안 창문을 통해 작업장에서 열심히 과자를 구워내는 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 가게마다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과자를 진열해 놓는지 보기에도 정신이 어리둥절하다. 가히 과자의 천국이다.
다음 행선지(行先地)는 도쿠시마현(德島縣) 미요시시(三好市)에 자리한 1~2억 년 생성역사를 지닌 V자형 대협곡인 오보케(大步危) 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험한 산속으로 꼬불꼬불 달려, 마치 일본 알프스인 다테야마(立山)로 횡단하는 느낌이었다. 아직 산속의 숲은 단풍으로 물들기에는 이른 듯 푸른 녹음이 가득하다.
이 협곡은 해저에서 만들어진 지층이 시코쿠산지를 횡으로 가르는 요시노강(吉野川)의 침식작용으로 솟아오른 지형이며, 일본의 천연기념물 및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다. 약 8Km에 이르는 계곡으로 대리석 조각상이 솟아 있는 듯한 아름다운 경관을 산출하는 지역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암석이나 V자형 계곡의 모양으로부터 일본 열도가 생성된 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장소이다.
봄이면 아름다운 벚꽃길과 바위 표면에 진달래가 피어나고, 여름엔 신록, 가을엔 단풍, 겨울엔 설경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 협곡의 이름인 오보케(大步危)는 ’큰 걸음으로 걸으면 위험하다‘라는 뜻과 ’작은 걸음으로 걸어도 위험하다(小步危)‘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한다. 상류에 자리한 오보케는 물살이 비교적 잔잔해 관광 유람선이 다니기에 적합하며, 하류에 있는 오보케는 거센 급류가 이어져 래프팅과 카약의 명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30분간 상류 지역으로 한바퀴 물살을 헤치며 돌았다. 청명한 가을날 수려한 산줄기와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유람하는 신선들이 되었다. 하선 후 16명이나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계곡 언덕길을 배경으로 줄지어 선 채로 한 컷을 남겼다.
저녁은 명치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이며, 옛 도사국(土佐國)인 고치현(高知縣)으로 이동하여 그곳 향토 음식으로 즐겼다. 하루 중 세 곳의 현(縣)을 옮겨가며 눈과 입을 호강시킨 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