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먼 옛날부터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러져 왔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고려 성종10년(981년)부터 백두산으로 불려져 왔다
백두산의 서쪽과 북쪽은 중국의 길림성에 속하고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속한다
옛부터 조선의 영산.만주족의 발상지로 인정 되었고 많은 전설등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자리잡은 휴화산으로 산전체의 총 면적이 8.000 평방km 이며 남북한을 통 털어 가장 높은산으로 16개의 큰봉우리와 최 정상은 남한에서는 2744m 북한 에서는2749.2m
표기를 하여 약 5m 차이가 난다
백두라는 이름은 산의 정상부근이 1년중 8개월 이상이 눈으로 덮여 있는 데다가 화산 폭발로 생긴 회백색 부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4개월 내내 희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장백산(창바이산)이라 한다
백두산 연평균 기온은 -8도로 눈.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 달한다 항상 구름으로 덮혀 있고 잠깐씩 얼굴을 내 비치는 푸르른 천지의 모습은 신비롭기가 그지없다 한다
6월말 까지 눈이 덮혀있는 백두산은 6월 하순부터 9월초순까지가 산행하기가 가장 적당한 시기로 보여진다
한 민족의 발상지로 민족의 성산으로 숭배되는 우리나라 최고봉인 백두산을 먼 타국땅 중국으로 돌아가서
보아야 하는 서글품은 분단된 민족만이 느껴야 하는 비애이며 옛 조싱들의 간도땅 역사학적 으로나 우리민족의 이동경로 등을 볼때 우리땅의 일부분 이었슴은 우리가 발 딪는 곳곳에 혼이 서려있슴을 느낄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이 서려있는 곳에 멀고도 험하게 백두산의 최 전진 도시 이도백화 라는 곳에 도착을 하여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백두산을 향하여 출발 하엿다 아직까지는 날씨도 화창하고 바람도 없어 천지에서 정상에서 온민족을 바라 볼수있게 해 달라는 염원을 않고 아직도 약 45km의 거리를 더 달려야 한다
지금까지 옛 우리땅을 밟으면서 통관 절차를 밟아야 했고 자치시를 통과할때 마다 통행세를 내야 했다(우리로 이야기를 하면 수원에서 국도로 서울에 갈 경우 의왕시에 내고 군포시에 내고 안양시에 내고 서울시에 내고 한다 그러나 자동차 소유시 거주지에는 내지 않음)
우리가 옛 우리땅을 지날때 마다 도로에 쏟아낸 돈을 그돈을 북쪽에 뿌렷으면 아깝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쫀쫀하게 해보며 오로지 천지를 볼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르고 또오른다
이곳 시골의 풍경은 하나같이 가옥(집)은 똑같은 일자형에 빨간색 지붕이다
새로운 설계도 필요없고 가장싶게 지을수 있는 방법 이라서 그랬다나 어쨋다나
거리 곳곳의 현수막엔 인인유매(人人有賣) 아직도 성행 하고 있는듯 하다
차창밖을 바라보며 압록강변에서 쓰라린 마음 울분이 토해서 압록강변의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한쪽은 천지가 개벽이 되듯 빌딩이 올라가고 가무를 즐기고 약간 여유로움이 있지만 강 건너에서는 폐 어선과 연료가 없어서 배가 멈쳐져 있는 현장 가난에 찌든 그들의 모습 과 어두운 표정들 소화가 않될 정도로 가슴이 아퍼서 혼났다 우리민족은 정에 약하고 감성에 약하여 우리 일행중에 눈물을 뚝뚝뚝 흘리는 이도 있었지 참을 안타까웠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직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옛 우리의 땅엔 외국상표를 단 자동차가 무질서하게 시꺼먼 매연을 품어내며 질주를 하고 서너마리가 함께 말이 끄는 달구지가 같이 달리고 뚜껑과 문이 없는 화장실에서는 나오려다 다시 들어가서 뒷 구멍을 틀어막고 종종 걸음을 치며 얼굴을 붉혀야 햇다
이러한 민족들이 어떻게 올림픽을 치러낼지 의문을 갖기도 하고 백두산 입구에 도착을 했다
아 백두산이여 !!
이곳은 아래와는 달리 눈이 내리고 바람도 불고 도져히 갈수 없다고 판단한 가이드는 설장차를 이용하여 일단 천문봉에 잇는 천지쪽을 가기로 했다 입구에서 천지까지 올라가는 내내 눈이 내리고 바람도 불어대어 순간순간 맞보기로 산자락들을 볼수 있었지만 그들의 자태는 끝내 비밀을 다 들어 내지를 않는다
일단 40여분 만에 중국측 기상대앞 천지에 도착을 하여 나쁜 날씨로 인하여 정기도 받을 틈도 없고 조망도 할수 없고 감동도 느낄수 없고 주변여건을 인하여 서로 사진만 찍고 서둘러 하산을 한다음 다시 장백폭포쪽 천지를 향하여 오르기로 했다 눈쌓인 통로길을 사이로 오르기 시작하자 마자 온천수를 이용하여 삶은 계란을 팔고 있어 그동안 사진과 말로만 보아왔던 풍경들이 눈에 잡힌다 그곳 관리소의 온도계의 눈금은 영하 16도 였고 질풍같은 바람은 좀 처럼 잠 잘줄을 모른다
장백폭포는 꽁꽁 얼어부터 산능선 인지 얼음 덩어리인지 구분이 않되고 다리를 건너며 장백폭포를 윈쪽에 두고 터널식을 만든 통로길의 999개의 계단 오르기 시작하며 오르자 중간중간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선 바람과 눈으로 눈을 뜰수가 없고 눈섭이 얼어서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가다가 서다 뒤돌아서 기다리다 바람이 조금씩 휴식을 취할때 그 찬스를 이용하여 올라가고 눈섭의 서리발로 앞을 가로 막기도 하고 중간쯤 올랐을 지점부터 그들이 만든 우리로 생각 한다면 70년대식 중국인의 건강을 책임 진다며 선전 해대는 봉지 우유(탈지 분유맛을 내며 봉지 또한 조잡함)를 먹은 것 좋치를 않아 배가 아프기 시작 하여 배의 까스만 배출 한채 아랫배를 움켜 쥐고 걱정 스럽게 간다
민족의 영산에 나의 배설물을 배출 할수도 없고 무었 보다도 엄청난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며 맨 살덩이를 노출시킬 자신이 없어 참고 또 참지만 꾸르륵 해대는 아랫배의 요동은 멈출줄을 모른다 옆으로 구르면 끝장으로 생각되는 직벽과 구름같은 눈위를 밟으며 또다시 천지위에 섯건만 천지는 꽁꽁 얼어붙고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세찬 눈과 바람은 얼굴을 들수 없도록 때린다
손도 꽁꽁 발도 꽁꽁꽁
너무나 추워 디지탈카메라나 일방카메라 작동을 하지 않는다 겨울철엔 장백폭포 위쪽이 얼어서 이동 하기가 참으로 좋지만 추워서 모든것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더 진행하여 서파로 종주를 하고 싶지만 불순한 일기로 아쉬움을 뒤로한채 하산을 하여야 하는 아품을 겪었다
6월달 이었다면 용문봉-녹명봉-백운봉-청석봉-5호 경계비로 10시간 종주를 하여 백두산의 변화 무쌍한 요모조모를 감상할수 있었으련만 안타까움을 뒤로 한채 사진 한장 몾찍고 하산을 하여야 햇다
내려오며 장백폭포의 모습을 보려 했지만 그역시 자태를 보여 주지 못한채 눈속에 폭 파뭍혀서 수줍어 하니 어찌 할거나 나는 빨리 달린다 세수탕을 향하여 돌진하듯 한쪽 손으로 뒷구멍을 틀어 막은채 달린다
고로 난 눈이 거의 뒤집히는 순간 까지 도달했고 드디어 그곳 지명 협곡까지 아무일이 없는듯 내려간다
순간 멈추ㅕ야 할지 망설 이다가 앞뒤 볼것 없이 쏜살같이 지나서 그곳에 도착하니 눈에 짓눌린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보고 미쳤댄다 이런 날씨에 백두산에 올라갔다 왓다구 참을 한심하다고 쏼라 거려 무안하게 만든다
법형이가(현지 가이드) 그냥 아무곳 에서나 배설 하란다
마지막 절규하듯 법형아 화장지~이
이것으로 나의 긴장은 해소 됐구 백두산에서 노상 방뇨를 시작 한것이다 에구 추ㅕ
그곳에서 기념품을 팔고 잇엇다
거의 한국인 만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상점으로 자꾸 천원 이천원 하며 사랜다
중국에서 우리돈의 가치 엄청나다 대한민국 만세다 우리돈이 최고다
달러 엔회 위안화 다필요 없이 한국된 이면 어디서나 쉐쉐다
중국 여행시에는 품팔며 돈 써가며 환전을 할 필요가 없는듯 하다
더군다나 시퍼런 한국돈 이면 그 아해들은 눈이 홱 뒤집힐 정도로 선호한다
만원짜리 한장을 바꾸기 위해 그아해들은 목숨을 걸듯하는 한국돈의 위력을 느낄수가 잇었고 곳 곳 도시나 웬만한 곳의 상점 에서도 한국돈 이면 모두가 쉐쉐쉐
온천수에 익힌 계란을 먹으며 기다리자 하나 둘씩 내려와서 차에 오르데도 눈은 계속 내린다
그렇게 쏟아내는 눈보라 속에도 중국인 기사들은 태평하게 체인도 없이 잘도 달린다
또 하나의 프로 프로 의식를 보고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다시 연길시와 이도백화의 갈림길을 거쳐 식사를 한 다음 통화행 야간 침대열차를 탈때까지 시간이 있어 별이 네개의 호텔 사우나에 들어갔다
완전 상류층을 위한 한국식 사우나 겉은 그럴듯 하지만 아주 세세 한것의 질은 아직 멀엇다 바닦이 미끌러워 찰고무 바닦의 샌달을 신어야 하구 땀 빼는곳의 성능 또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 아니올 시다이다
한국식 때밀이 우리돈으로 1.300원 이다 2.000 원을 주고 뒤 돌아서니 고개가 구십도 이다
어깨에 힘 팍 주고 나왔다
이도백하역
여직원이 있엇고 그들도 컴퓨러로 업무를 처리하고 잇어 놀랬다
중국땅 최고 잘된분야 이동통신 인듯하다 그넓은 땅에 이동 통신기지국이 없는곳이 없다
한국산 **콜을 가져보는것이 평생 소원 이라고 이야기하는 아해들 많다고들 한다
좀 썰렁한 대합실 하루에 여객열차 4왕복만 있는 역 인데도 매점은 두개 씩이나 있다
과일맛 좀처럼 먹을수가 없다 사과맛 퍽퍽. 귤맛 싱거움. 다른것두 역시나 먹지 않는것이 좋을듯 하다
개찰을 마치고 고롱고롱 하는 디젤기관차를 보고 객차에 올랏다
3층으로된 침대칸
처음엔 몰랐지만 발전차나 난방차가 없고 객차 하나하나에 자체 석탄보일러가 탁탁 소리를 내며 난방을 공급하고 있엇다 하여튼 잠들기 위해 알콜로딩을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갓다
덜얼컹 소리에 눈을 뜨니 우리시간으로 6시다.
9시에 도착한다니 이젠 죽엇구나 하는생각이 든다
선로 노반이 약해 최고속도가 60k/m도 않되는듯 하고 한번 정차를 하면 3~4분 우물쭈물 아휴 짜증나
약270km를 9시간에 운행을 한다
고구려는 졸본(卒本) 지방에서 BC 37년 개국하여 AD 668년까지 28명의 황제, 70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전역을 근거지로 하여 연해주(沿海州) 지역, 중국 하북성(河北省)과 산동성(山東省), 북경 인근까지 넓은 영역을 차지했던 고대 제국(帝國)이다.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鄒牟, 朱蒙)는 BC 58년 북부여의 시조로 전해지는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인 유화(柳花)부인 사이에서 동부여(東扶餘)에서 태생하여 동부여의 왕궁에서 자랐다. 주몽이란 이름은 부여어(扶餘語)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뜻한다"고 전해진다. 동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의 일곱 왕자와 신하들의 위협을 눈치챈 어머니 유화부인은 주몽에게 멀리 떠나 큰 일을 도모하라고 당부한다. 주몽은 몇몇 측근들과 함께 동부여를 떠나 졸본부여(卒本夫餘)로 망명하였다. 그는 비류수(沸流水)가 흐르는 졸본(卒本)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騎馬民族)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주변 비류국(沸流國)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고 해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는 등 여러 부족국가를 정벌하여 영토를 넓혀 나갔다. 서기 3년(유리명왕/瑠璃明王 22년)에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遷都)하였으며 이후 선비(鮮卑), 양맥(梁貊), 황룡국(黃龍國) 등을 정벌하는 등 주변국과의 전쟁을 통해 더욱 강대해졌으며, 강한 리더쉽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팽창정책을 펼쳐갔다.
태조왕(太祖王:재위 53∼146) 때 부터 고조선의 고토수복(故土收復)의 기치를 내걸고 현도군을 쳐서 변방으로 축출하였고, 옥저(沃沮)와 동예(東濊)를 복속시켜 동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는 왕위의 형제상속제를 확립하였으며 종래의 부족국가적 형태에서 중앙집권적 형태로 정비하여 고대국가체제를 갖춤으로써 고구려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이 왜곡되고 배척 당하는곳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현재의 집안)에 도착했다 우리역사의 자존심 광개토왕비와 릉을 바라보는 심정 도굴되어 텅텅 비었고 자꾸만 회손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모당 의원께서 방문 한다는 것을 알고 군견을 매어 접근조차 못하게 햇던 곳이 목격 되어 억장이 무너지는듯 햇다 그 현장은 아주 부실한
시골 과수원 이엇다 우리의 위대한 왕의묘가 중국의 개인 소유의 부실한 과수원속에서 통곡을 하고 있는것이다 대영박물관 미이라가 있는데 그 미이라를 도굴하고 옮긴 사람들이 3년내 모두 횡사를 하였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동방의 금자탑 장수왕릉이(장군총) 멀리보여 다시 그곳으로 갔으나 역시 도굴을 해 내부는 텅 비어 있고 사진도 못 찍게 한다 우리땅 역사의 현장에서 고개숙여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수가 없다
장수왕 바로 옆에 고인돌로 된무덤이 있는데 그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모르는 우리의 역사의 현장 추측건대 첩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관리인의 말 우리나라 사학의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않되나하는 생각이 든다 장수왕릉에서 바라보면 고구려시대의 릉이 수십개가 있는데 묘 주인도 모른채 점점 홰손되어가고 잇다
첫댓글 덕분에 백두산 구경한번 잘하고 갑니다 내일 또 올께요
우~~후~~우~~~부럽씁니다. 백두산에 언제 가보나? 산행잘 하시고,건강하게 다녀 오십시요.
흑백영화에서 나오는 침대열차 타고싶네요...좋은추억 듬뿍 담아오세요~~~
검프님덕에 사하라,백두산 구경 모두 공짜로 다 하네 ! 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