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생신 때나 어버이날에 편지를 드렸다.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멋쩍어 하기 힘든 말을 편지에 썼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편지를 받고 싶었나 보다. 가끔 엄마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하면 늘 "나는 못 배워서, 글 짓는 건 못한다" 라고 말하셨다.
엄마는 초등학교만 다니셨다. 옛날에는 다들 가난하게 살았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줄 알었다.
서울에서 자취하여 학교 다니던 어느날, 엄마가 전화하셨다. 무언가 대단하지만 부끄럽고 중요한 고백을 하는 사람처럼 머뭇거리셨다. "화신아, 할 말이 있다 ."로또라도 당첨됐나? 뭔데 그라노? 말해 봐라." 엄마는 소녀처럼 조용히 웃으며 말하였다. "엄마 … 중학교 다닐라고, 친구가 그러는데 못 배운 사람들 가르쳐 주는 학교가 있단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나조차도 당황스럽게 갑자기 터진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거라는 한마디가 가슴 뭉쿨한 충격을 주었다. 그 말은 곧,가난과 속 썩이는 오만가지 일에 찌들어 살던 엄마가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나겠다는 선언 같았다. 나는 목을 가다듬은 뒤 반색하여 엄마의 결정을 응원했다.
그렇게 엄마는 여중생이 되었다. 내가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교과서와 영어 공책을 보여 주셨다. 영어 공책에는 'study(공부).excuse me (실례합니다.)'같은 영어 단어와 문장이 꿈틀꿈틀 적혔다. 엄마는 설레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읽으셨다나는 궁금해서 여쭈었다. "잘 읽네, 근데 이렇게 자주 쓰이는 단어를 이제사 알았으면 텔레비전 볼 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겠네 ?" "아이구야, 많았지. 강호동이 '서프라이즈' 했는데 그게 '놀라다' 라는 뜻이라며? 알아들으니까 어쩌나 반갑든지. 순간 몰려드는 측은한 마음에 또 한 번 눈물을 참아야 했다.
서울로 올라온 나에게 엄마가 전화하셨다. 학교에서 컴퓨터수업 시간에 메일 쓰는 법을 배웠는데 잘 모르겠다며 도와 달라고 하셨다. 우선 아이디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엄마와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여 ,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희망' 이라는 단어와 집 전화번호 뒷자리를 따서 'hope 5977' 이라는 아이디를 만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메일 개통을 축하한다는 말과 내 사진을 담아 첫 메일을 보냈다.
하루가 지나 엄마에게서 답장이 왔다. 메일에 이렇게 적으셨다. "우리 딸, 예쁘네, 특별한 사람되어라. 사랑한다." 처음 받는 엄마의 편지였다. 나는 오타가 섞인 문장을 눈물 흘리며 읽고 또 읽었다. 그 한 줄은 어떤 위대한 문학 작품보다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편지를 받었다." 꿈에도 상상 못한 메일로 말이다. 엄마의 편지는 '편지 보관함 에'고이 저장되었다.
____손화신 님 / 경기도 화성시 ____
(강헌 선집 9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