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김해김씨 삼현파(판도판서공 휘 관파) 원문보기 글쓴이: 강남
번호 |
파별명(派別名) |
파조(派 祖) |
분 파(分派) |
세거지 (世居地) |
1 |
가선(嘉善)공파 |
명남(明楠) |
서울 | |
2 |
가선(嘉善)공파 |
재혁(在赫) |
무안 | |
3 |
가선(嘉善)공파 |
진선(盡先) |
||
4 |
감무공(監務公)파 (별명;4군(四君)파) |
익경(益卿) (51세손) |
공간공파, 도총관공파, 상서공파, 생원공련파, 생원공록파 찬성공파 |
영암 |
5 |
감찰(監察)공파 |
일(鎰) |
||
6 |
감찰(監察)공파 |
희계(希繼) |
참판공파 |
布繼? |
7 |
금녕군(金寧君)파 (별명:경(京)파) |
목경(牧卿) (51세손) |
가선공파, 남강공파, 문간공파, 문절공파, 밀직공파, 밀직사공파, 병조참의공파, 봉상공파, 석성공파, 성균진사공, 안경공파, 영변공파, 제학공파, 직암공, 진국파, 참봉공, 참찬공파, 참판공파, 충정공(별명;갑봉파) 판서공파, 평장사공파, 호참공파, 횡성공파 |
경기 각도 |
8 |
계성군(鷄城君)공파 |
사(仕) |
삼척 | |
9 |
고부(古阜)공파 |
종(宗) |
해미 | |
10 |
과주(果州)공파 |
우치(宇靑山) |
서울 | |
11 |
과천(果川)공파 |
학(鶴) |
서울 | |
12 |
군사(郡事)공파 |
윤(潤) |
울산 | |
13 |
군사(郡事)공파 |
효연(孝蓮) |
고산 | |
14 |
군수(郡守)공파 |
유성(有聲) |
임피,고부 | |
15 |
군수(郡守)공파 |
필형(弼亨) |
웅천 | |
16 |
군자감정(軍資監正)공파 |
금용(錦龍) |
서울 | |
17 |
군자감정(軍資監正)공파 |
홍하(洪夏) |
양성 | |
18 |
군자감정(軍資監正)공파 |
희래(希來) |
수원 | |
19 |
금성군(金成君)파 |
도(濤) |
직장공파, 참봉공파 |
김해 |
20 |
김해군(金海君)파 |
엽(燁) |
찰방공파 |
성진 길주 |
21 |
기암(機巖)공파 |
|||
22 |
남호(南湖)공파 |
|||
23 |
담헌(澹軒)공파 |
극검(克儉) |
||
24 |
당락원정공파 |
상환(尙桓) |
||
25 |
대간(大諫)공파 |
|||
26 |
대제학(大提學)공파 |
득하(得河) |
||
27 |
대제학(大提學)공파 |
천주(天柱) (51세손) |
||
28 |
도검의(都劍議)공파 |
저(著) |
영암 | |
29 |
도사(都事)공파 |
린(隣) |
||
30 |
도사(都事)공파 |
연(璉) (55세손) |
감찰공파, 사업사정파 |
|
31 |
도사(都事)공파 |
윤(潤) |
울산 | |
32 |
도사(都事)공파 |
진(璡) |
영암 | |
33 |
도정(都正)공파 |
홍진(洪震) |
||
34 |
도총(都摠)공파 |
언국(彦國) |
좌윤공파 |
백천 |
35 |
도총관(都摠管)공파 |
경신(敬臣) |
서강파, 축은파 |
김해, 보성 |
36 |
도총관(都摠管)공파 |
성(晟) |
||
37 |
돈녕(敦寧)공파 |
영직(英直) |
||
38 |
동원(東園)공파 |
|||
39 |
동지(同知)공파 |
홍섭(洪燮) |
||
40 |
동창(東窓)공파 |
|||
41 |
매암(梅庵)공파 |
수철(守哲) |
||
42 |
文 敬 公 派 [문 경 공 파] |
琢 [탁] |
절제사공파, 참의공파, 사랑공파, 부사공파, 진사공파 |
|
43 |
목사(牧使)공파 |
치행(致行) |
울산 | |
44 |
문곡(文谷)공파 |
윤직(允直) |
정언고파, 참봉공파 |
인천 |
45 |
문정(文貞)공파 |
|||
46 |
문천(文川)공파 |
귀존(貴存) |
군자감정공파 |
밀양 |
47 |
봉상사정(奉常寺正)공파 |
한택(漢澤) |
||
48 |
부사(府使)공파 |
근(瑾) (55세손) |
군수공파, 진사공파, 팜의공파 |
영암 |
49 |
부사(府使)공파 |
영필(瑩弼) |
충문공파 |
|
50 |
부사직(副司直)공파 |
팔영(八英) |
통덕랑공파 |
|
51 |
부윤(府尹)공파 |
진하(振夏) |
||
52 |
부장(部將)공파 |
유성(有聖) |
동래 | |
53 |
부정공파(양의공파) |
평(平) (50세손) |
여수,용강 | |
54 |
부제학(副提學)공파 |
구(絿) |
해남 | |
55 |
부호군(副護軍)공파 |
거공(巨公) (56세손) |
주부공파, 현감공파 |
경주 |
56 |
부호군(副護軍)공파 |
우류(宇榴) |
||
57 |
부호군(副護軍)공파 |
천익(天翼) (56세손) |
||
58 |
사정(司正)공파 |
이형(利亨) |
창원 | |
59 |
사과(司果)공파 |
능석(能碩) |
서울 | |
60 |
사과(司果)공파 |
석진(錫鎭) |
||
61 |
사과(司果)공파 |
진선(振善) |
양주 | |
62 |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파 (별명; 삼현(三賢)파) |
관(管) (49세손) |
군수공파, 남창공파, 녹사공파, 둔암공파, 문민공파 진사공파, 진의공파, 집의공파, 치오공파, 한림공파 |
청도 |
63 |
상서공파(이부상서) |
치(峙) |
참봉공파 |
김해 |
64 |
생원공파 |
세일(世鎰) |
||
65 |
생원공파 |
시보(始寶) |
화순 | |
66 |
생원공파 |
인식(寅植) |
||
67 |
생원공파 |
인하(寅夏) |
||
68 |
생원공파 |
현중(鉉重) |
군수공파 |
|
69 |
생원공파 |
홍민(洪敏) |
||
70 |
선전(宣傳)공파 |
한필(漢必) |
부호군파 |
서울 |
71 |
수성백(隋城伯)공파 |
방(昉) |
||
72 |
숭정(崇政)공파 |
종정(宗貞) (56세손) |
||
73 |
숭록(崇綠)공파 |
현(現) (55세손) |
진주,흥덕 | |
74 |
승사랑공파 |
지서(之瑞) (50세손) |
경주 | |
75 |
승지(丞旨)공파 |
간(侃) |
함평 | |
76 |
승지(丞旨)공파 |
홍선(洪宣) |
||
77 |
시중(侍中)공파 (문경(文敬)공파) |
탁(琢) (55세손) |
부사공파, 사랑공파, 절제사공파, 참의공파(생원공파) |
나주 하동 |
78 |
영경(永慶)공파 |
|||
79 |
右 阜 公 派 [우 부 공 파] |
宗 [종] |
||
80 |
운은(雲隱)공파 |
대진(大震) (57세손) |
||
81 |
원정(元靖)공파 |
준(遵) |
판서공파 |
흥양 |
82 |
유수(留守)공파 |
득연(得淵) |
청하 | |
83 |
유수(留守)공파 |
예(藝) (51세손) |
청주 | |
84 |
율은(栗隱)공파 |
손(遜) |
예천 | |
85 |
이천(伊川)공파 |
도명(道鳴) |
양평 | |
86 |
의주원동파 |
|||
87 |
의헌(毅憲)공파 |
예직(禮直) |
||
88 |
장락원정(掌樂院正)공파 |
상환(尙桓) |
||
89 |
장사군(長沙君)파 (무장 김씨) |
선(璇) (55세손) |
만경파, 병조참의공파 참판공파 |
강화,장현 만경 |
90 |
전리(典理)공파 |
의(義) |
||
91 |
전서(典書)공파 |
손(遜) |
예천 | |
92 |
절충(折衝)공파 |
영승(永承) |
||
93 |
정랑(正郞)공파 |
각건(角鍵) |
||
94 |
정랑(正郞)공파 |
희인(希仁) |
고산 | |
95 |
정헌(正憲)공파 |
영수(永守) |
관찰사공파, 판서공파 |
해주 |
96 |
종사랑(從仕郞)공파 |
세연(世連) |
||
97 |
좌랑(佐郞)공파 |
성철(聲徹) |
||
98 |
좌랑(佐郞)공파 |
진광(震光) |
||
99 |
좌랑(佐郞)공파 |
효문(孝文) |
||
100 |
좌윤(佐尹)공파 |
국담(國潭) |
김해 나주 | |
101 |
좌윤(佐尹)공파 |
중현(重炫) |
서울 | |
102 |
좌정승(佐政丞)공파 |
만희(萬希) |
||
103 |
좌정승(佐政丞)공파* |
석경(晳卿) |
||
104 |
주사(主事)공파 |
성승(成承) |
호(護)군공파, 통덕랑공파 |
|
105 |
지제(知制)공파 |
|||
106 |
지평(持平)공파 |
희복(希福) |
서울 | |
107 |
직장(直長)공파 |
세주(世柱) |
참판공파 |
울산 |
108 |
진사(進士)공파 |
건(虔) (56세손) |
||
109 |
진사(進士)공파* |
덕직(德直) |
안산 | |
110 |
진사(進士)공파 |
양경(良慶) |
||
111 |
진사(進士)공파 |
영(瑛) |
김해 | |
112 |
진사(進士)공파 |
윤직(潤直) |
순천 | |
113 |
진사(進士)공파 |
원규(元圭) |
감찰공파 |
|
114 |
진사(進士)공파 |
의조(義祚) |
현령(縣令)공파 |
서울 |
115 |
찬성(贊成)공파 |
성수(成洙) |
태인 | |
116 |
참봉(參奉)공파 |
인서(麟瑞) (49세손) |
밀양 | |
117 |
참봉(參奉)공파 |
청유(淸有) |
||
118 |
참의(參議)공파 |
대승(大承) |
||
119 |
참의(參議)공파 |
순손(順遜) |
주부공파 |
광양 |
120 |
참의(參議)공파 |
여무(汝霖) |
습독공파, 부사정공파 |
길주 |
121 |
참의(參議)공파 |
영준(永俊) |
통덕랑공 |
|
122 |
참의(參議)공파 |
정기(鼎基) |
서울 | |
123 |
참의(參議)공파 |
진덕(盡德) |
||
124 |
참의(參議)공파 |
진시(盡始) |
||
125 |
참의(參議)공파 |
창(漲) |
||
126 |
참의(參議)공파 |
홍윤(洪潤) |
||
127 |
참찬(參贊)공파 |
합 |
경파에서 분파? |
아산,대동 |
128 |
참판(參判)공파 |
복선(復善) |
||
129 |
참판(參判)공파 |
성옥(成玉) |
||
130 |
참판(參判)공파 |
신문(信文) |
만경 | |
131 |
참판(參判)공파 |
언방(彦昉) |
부사과공파 |
|
132 |
참판(參判)공파 |
종해(宗海) |
||
133 |
참판(參判)공파 |
진직(盡直) |
||
134 |
참판(參判)공파 |
홍보(洪寶) |
검사공파 |
임천 |
135 |
참판(參判)공파 |
효성(孝誠) |
부호군공파 |
강화 |
136 |
첨사(僉使)공파 |
무승(武承) |
||
137 |
첨정(僉正)공파 |
덕휴(德休) (51세손) |
||
138 |
청풍(靑風)공파 |
사순(思純) |
검사공파 |
안변 |
139 |
충순위(忠順偉)공파 |
극제(克悌) |
||
140 |
충의(忠毅)공파 |
여철(汝鐵) |
파조: 希漢 |
풍기 |
141 |
충정(忠貞)공파 |
구(球) (55세손) |
검정공파, 공조참의공파 |
나주 |
142 |
충정(忠靖)공파 |
이장(以璋) (51세손) |
장흥 | |
143 |
충정(忠靖)공파 |
효성(孝誠) |
*참판공파와 파조? |
|
144 |
통덕랑(通德郞)공파 |
춘직(春直) |
임피 | |
145 |
통사랑(通仕郞)공파 |
수학(守羽高) |
계공랑공파, 통덕랑공파 |
교동 |
146 |
통사랑(通仕郞)공파 |
여구(汝龜) |
||
147 |
통정(通政)공파 |
강윤(江潤) |
위천,밀양 | |
148 |
통정(通政)공파 |
대선(大善) |
서울 | |
149 |
통정(通政)공파 |
무작(武作) |
||
150 |
통정(通政)공파 |
삼창(三昌) |
파주 | |
151 |
통정(通政)공파 |
종남(從南) |
終? |
성천 |
152 |
통정(通政)공파 |
종일(宗一) |
서울 | |
153 |
통정(通政)공파 |
진충(盡忠) |
||
154 |
통정(通政)공파 |
창수(昌壽) |
||
155 |
통정(通政)공파 |
희성(希聖) |
||
156 |
통훈(通訓)공파 |
귀생(貴生) |
동지중구공파 |
서울 |
157 |
판결사(判決事)공파 |
용만(用萬) |
부장공파, 주부공파 |
경주 |
159 |
판결사(判決事)공파 |
을동(乙棟) (56세손) |
||
160 |
판관(判官)공파 |
|||
161 |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파 (별명; 삼현(三賢)파) |
관(管) (49세손) |
군수공파, 남창공파, 녹사공파, 둔암공파, 문민공파 진사공파, 진의공파, 집의공파, 치오공파, 한림공파 |
청도 |
162 |
판도판서(版圖判書)공파 |
첨검(添劒) (51세손) |
백천,장단 개성 | |
163 |
판도판서(版圖判書)공파 |
첨부(添咐) |
||
164 |
판서(判書)공파 |
건(鍵) |
창평 | |
156 |
판서(判書)공파 |
경진(景振 ) |
||
167 |
판서(判書)공파 |
관(觀) |
||
168 |
판서(判書) (영천)공파 |
불비(不比) (50세손) |
장사랑공파, 현감공파 |
금산,서울 |
169 |
판서(判書)공파 |
세강(世綱) |
청도,밀양 | |
170 |
판서(判書)공파 |
유공(維公) (56세손) |
울산 | |
171 |
판서(判書)공파 |
진업(盡業) |
||
172 |
판서(判書)공파 |
진인(震仁) |
||
173 |
판서(判書)공파* |
효돈(孝敦) |
||
174 |
판윤(判尹)공파 |
경보(敬輔) |
경주,아산 | |
175 |
판전(判典)공파 |
명택(明澤) (50세손) |
도사공파,부사공파 |
|
176 |
학생(學生)공파 |
경수(敬壽) |
비인 | |
177 |
학생(學生)공파 |
규수(奎洙) |
서울 | |
178 |
학생(學生)공파 |
광령(光靈) |
여 |
연안 |
179 |
학생(學生)공파 |
락서(洛瑞) |
||
180 |
학생(學生)공파 |
성직(性直) |
서울 | |
181 |
학생(學生)공파 |
세철(世喆) |
||
182 |
학생(學生)공파 |
승오(承五) |
||
183 |
학생(學生)공파 |
응조(應祚) |
공주 | |
184 |
학생(學生)공파 |
인식(寅植) |
공주 | |
185 |
학생(學生)공파 |
진각(盡珏) |
||
186 |
학생(學生)공파 |
진산(盡山) |
참의공파 |
홍산 |
187 |
학생(學生)공파 |
정일(正一) |
덕천 | |
188 |
학생(學生)공파 |
포경(布慶) |
||
189 |
학생(學生)공파 |
학성(學成) |
고양 | |
190 |
학생(學生)공파 |
황(滉) |
서울 | |
191 |
학생(學生)공파 |
효성(孝誠) |
||
192 |
학생(學生)공파 |
현수(玄壽) |
||
193 |
학생(學生)공파 |
희도(希度) |
||
194 |
한림(翰林)공파 |
관(寬) (55세손) |
생원공파, 송정공파(景秋), 진사공파 |
장흥 |
195 |
현감(縣監)공파 |
응한(應漢) |
경주 | |
196 |
휴은(休隱)공파 |
호(琥) (55세손) |
정읍,능주 | |
밀양, 강능에 후손이 살며 중조 인서(麟瑞)는 김수로왕 56세손이고 태옥(泰玉)의 후손이며 생원(生員)으로
제능참봉(齊陵參奉)을 지내셨다.
3세손 일준(逸駿)은 명종때 문과급제하시어 울산부사. 담양부사를 지내셨으며, 4세손 극해(克諧)는 예조좌
랑, 5세손 연부(連富)는 부사(府使)를 지내셨다.
※ 참봉(參奉) : 조선시대 각 관청에 소속된 종9품의 벼슬
자(字)는 여운(汝雲), 호(號)는 상제(상齋), 공민왕 때 대언(代言)을 거쳐 좌찬성사, 삼중대광도첨의문
하시중에 이르렀다. 조선 개국 후 태조가 수차에 걸쳐 불렀으나 항절(抗節)하고 나가지 않아 제주로 유
배되었다.
고려때 좌헌납(左獻納) 좌찬성(左贊成) 도첨의 문화찬성사 (都僉議 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이씨왕조가 들어선후 좌정승(左政丞)의 벼슬을 내려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아 제주도 애월현(涯月縣) 에 유배되시어 여생을 마치셨다 많은 시(詩) 남기셨다.
공(公)의 후손들이 제주도 에 많이 산다. 후손(後孫)으로는 휘(諱) 익철(益喆) 숙종 을미년에 무과(武科) 급제 하시어 통훈대부 행 중림도찰방(通訓大夫 行 重林道察訪)오위장 (五衛將).되시고 증(贈) 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부총관 에 추증 되셨다 아드님 휘(諱)종보(鍾輔) 는 무과급제하시어 통정대부 전주 중군(通政大夫 全州 中軍),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함경북도 병마우후 겸 토포사(咸鏡北道 兵馬虞候 兼 討捕使) 휘(諱)종식(鍾軾) 은 월여진병마절제사(月呂鎭兵馬節制使)부호군(副 護軍)이되시고 증(贈)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겸 오위장에 추증 되셨다. 휘(諱)종집(鍾輯) 은 영조경오년에 만호(萬戶).용양위부호군.절충장군 오위장(折衝將軍 五衛將)을 지내셨다.
휘(諱) 기휴(沂休) 오위장(五衛將) 증(贈) 병조판서(兵曹判書) 휘(諱) 종관(鍾?)의 아드님 이시며 철종4년 무과급제 하시어 명월만호(明月萬戶).오위장(五衛將)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겸 나주진우영장 토포사(折衝將軍 行 龍?衛副護軍 兼 羅州鎭右營將 討捕使)고종14년(1877)년 격포진수군첨절제사(格浦鎭水軍僉節制使)고종17년 가선대부 행 용양위호군(嘉善大夫 行 龍?衛護軍)고종28년 가선대부 지중추부사(嘉善大夫知中樞府事)를 지내셨다 공(公)이 격포 첨사(格浦僉使)시절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건립되었다
김해 김씨의 시조는 서기 42년 가락국을 세운 金首露王이며 좌정승공파 제주 입도조는 金萬希(一名 景興 : 1314∼1404)이다. 그의 字는 汝雲, 호는 척재( 齋)·월포(月浦)이다.
제주도의 '제주선현지'(1988)와 한라일보의 '선현의 고향'(1989. 5.)그리고 金海金氏璿源統合大同世譜(1889)에 수록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 말의 절조 있는 遺臣으로 이태조의 간곡한 부름을 뿌리치고 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는것은 충신의 수치라하여 초개와 같이 벼슬을 버리고 태조 2년(1393년) 10월에 유배되어 濟州四賢으로 추앙 받은 대표적 선현의 한 사람이다. 황해도에서 출생한 그는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다음 左獻納左贊成의 요직에 올라 영달이 보장되었으나 李存吾가 중심이 된 辛旽을 축출하는 내용의 疏斥事件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 후 辛旽은 반역을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수원에서 참형을 당했고 김만희는 복직되어 左政丞의 顯職에 올랐으나 병을 사칭하고 出仕하지 않은 채 고향인 兎山月城으로 귀향하고 말았다.
1388년 고려의 마지막 기둥이었던 최영 장군이 이방원에게 피살되고 정치적 실권이 위화도회군을 한 이성계에게 돌아가게 되자 고려의 국운이 이미 돌이킬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古西山에 숨게 말았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그는 杜門洞諸賢의 한 사람으로 꼽히어 '諸賢錄'에 그 이름이 수록(두문동 72인에는 게재되어 있지 않음)되었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그를 重臣으로 기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불렀으나 '忠臣은 不事二君'이라 하여 이에 불복, 出仕하지 아니했다. 이러한 절개 때문에 유배로서는 가장 무거운 형벌인 제주도 유배의 벌을 받게 되었다. 80세의 고령으로 유배인이 되어 제주에 당도한 그는 애월포를 거쳐 곽지악에 은거하면서 주경야독으로 인생의 무상을 달래며 충효의 길과 사람의 正道를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쳐 학문의 바탕을 이 땅에 심었다. 그러면서 그는 고려의 충신이었던 자신의 이름을 유배인의 신분으로 호칭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하여 '景興'으로 개명하고 호까지 입도한 지명을 따라 '月浦'라 고쳤다 한다.
그러나 金萬希에게는 또 다른 슬픔이 있었다. 제주에 유배되기 전 아들 赫과 대부인 黃氏를 고향에서 사별했던 그는 손자 禮를 데리고 유배길에 올랐었고 11년에 걸친 낯선 땅에서의 황혼기를 유유자적하 면서도 정치에 대한 환멸과 망국민으로서의 有限을 달래기 위해 후손에게만은 자신이 걸어온 전철을 답습시키지 않고 새로운 新開地를 열어가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자인 禮와 증손인 奉을 제주에 남겨 두고 홀로 귀향길에 올랐으니 이 때가 그의 나이 91세였으며 이듬해 7월 6일에 세상을 떠났고 황해도 월성군 토산땅에 안장되었으며 李美(경주 이씨), 韓 (청주 한씨), 康永(신천 강씨)과 더불어 濟州四賢으로 추앙 받고 있다.
이후 선조의 松竹같은 충절은 증손인 奉까지 이어져 세종조에 淸臣之孫이라 하여 禮曹參判으로 천거되어 소명을 받았으나 曾祖의 충절을 끝내 계승하여 관직을 사양하였다. 金海金氏 左政丞公派가 名族으로서 다시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6세손 繼瓚이 禦侮將軍, 司僕司正의 벼슬에 오르고 그 아들 用砥가 8형제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이 곧 '邦'자 돌림으로 유명한 세칭 八邦이다.
종친회에서는 입도조 묘가 북녘에 있어 참배하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긴 나머지 '81년 12월에 入島 3세 金禮(실질적인 입도조)와 부인 密陽朴氏의 묘소가 있는 곽지악 기슭에 '高麗三重大匡僉議左政丞金海金公萬希神道碑'와 2세 赫의 壇享碑를 세워 성역화하고 있다.
|
자(字) : 정수(正守)
호(號) : 송암(松巖)
경주에 살며 중조 거공은 어모장군.부호군을 지내셨다.
태령(泰齡)의 아드님이시며 아드님 자문(自文)은 주부(主簿)를 지내셨고 경주 두산산성(斗山山城)에 묘가 있다.
4세손 석견(石堅-訓鍊院正)과 5세손 몽수(夢秀-守門將) 몽량(夢良) 몽남(夢男-主簿)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무훈을 세우셨다.
두산(斗山)문중
부호군(거공)파로써 현재 경주시 양북면 두사리와 인접한 송전리에 한때는 400여호가 넘게 할았으나 현재는 200여호가 살고 있는 집성촌이며 경주, 포항, 대구, 부산, 울산등지에 5천여호가 살고 있는 대문중이다. 부호군파의 파조는 휘 거공이며 자는 정수이고 호는 송암 또는 운제이며 일찍무과에 급제하여 선조조에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예조판서이다. 입향조 두산은 휘석견이고 자는 자고이며 호는 문옹이다. 명종 병오생으로 문무를 겸비한 정충대절의 임눌로 병조참의를 지냈다. 경주 문천에서 두산으로 입향한 입향조이다. 휘 석견공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세워 아들과 함께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임란중에 둘째아들이 순절했다. 임란후 공을 추모하여 두산에 상절사를 건립하고, 제향을 받들고 있다. 현재 그후손들이 송계정을 세워 선조의 유훈을 받들고 있다.
※ 부호군(副護軍) : 조선의 5위(五衛)에 속했던 종 4품의 무관.
|
자(字)는 수행(首行), 판서(判書)를 역임.
울산에 많이 산다. 중조 유공은 정국(定國)의 후손이시며 태령(泰齡)의 맏아드님이시다.
유공은 판서를 지내셨으며 공의 묘는 강서(江西)에 있다.
아드님 건문(健文)은 판결사(判決事)를 수증(受贈)하셨고 손자 치남(致楠)은 통정대부, 증손 준일(俊逸)은
통정대부, 현손 시감(時鑑)은 판관을 지내셨다.
※ 판서(判書) : 고려시대 각 관청의 6조(六曹)의 으뜸벼슬로 정3품관 / 조선시대 6조의 으뜸벼슬로 정2품
의 관직(官職). 지금의 장관.
고려 때 승사랑(承仕郞)을 역임.
중조 지서는 시조대왕 김수로왕으로부터 51세손이며 유환(有煥)의 아드님이시다.
3세손 인범(仁範)은 교하현감(交河縣監), 4세손 세량(世良)은 첨중추(僉中樞)를 지내셨다. 후손이 경주.
연일에 살고 있다. ※ 승사랑(承仕郞) : 종8품의 문산계(文散階).
|
자(字)는 덕윤(德潤), 호(號)는 호양제(浩養齋), 고려 때 도첨의판전(都僉議判典)을 역임.
경주에 후손이 많이 살며 중시조 명택은 김수로왕의 51세손이며 귀서(龜瑞)의 아드님이다. 고려 공민왕때
대광도첨의 판삼사부사(大匡都僉議判三司副使)를 지내셨으며 아드님 영손(榮孫)은 이조 태종때 직제학.
지제고(知制誥)를 지내셨고 대제학(大提學)을 수증(受贈)하셨다.
서도 판관 령 동정(石 判官 令 同正) 휘(諱) 재백(再伯) 의 손자 밀직제학(密直提學) 휘(諱) 구서(龜瑞) 의
아드님 이시며 고려 공민왕 때 벼슬하기 시작하여 대광 도첨의 판전 삼사부사(大匡 都僉議 判典 三司副使)
에 이르셨다 고려가 망하자 예성강 의 호양재(浩養齋) 에 퇴휴(退休)하셨다손자(孫子) 휘(諱) 광욱(光旭)
은 강계부사(江界府使). 증손(曾孫) 휘(諱) 효동(孝東) 은 직제학(直提學).수찬(修撰) 고손(高孫) 휘(諱) 수
문(守文) 은 집의(執義),가선대부 예조참판 겸 지 춘추관 사(嘉善大夫 禮曹參判 兼 知 春秋? 事)지냈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때 부친 휘(諱) 효동(孝東)과 더불어 호남에 은적(隱跡) 하셨다현손(玄孫) 휘(諱) 덕룡
(德龍) 은 선조임금 때 무과(武科) 급제 하시어 수문장(守門將).판관(判官)을 지내셨고 임진왜란 때 의병
(義兵)을 일으켜 공을 세워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 에 녹훈(錄勳)되시고 훈련원 첨정(訓鍊院 僉正)에 제
수되셨다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 첨검(添劒)파(52세)
중조 첨검은 김수로왕 52세손이며 시추(是秋)의 차남이신 정국(定國)의 후손이
시다.
겐 조정에서 예조참판이 증직(贈職)되었다. 9세손 연광(鍊光)은 임진왜란때 회
양부사로 재직중 순국하신 충신이다. 후손들이 백천(白川), 장단, 개성에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