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제주시 영평동 2037-2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경찰주둔소)
동샘이주둔소와 관련하여 영평동 마을지 '가시나물'에는 '한 면의 길이가 20m인 사각형이고 화북지서 관할로 경찰관 10여 명이 교대로 근무를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979년도 항공사진에서는 약 25m로 추정되고 있다. 항공사진 속에서는 삼각형의 주둔소로 초소와 가운데 집자리 모습도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아라동 금천마을 양우종(1932년생)님은 죽성마을 새가름 주둔소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제주4・3유적Ⅰ'에는 1949년 이후 경찰토벌대가 주둔한 곳이며 화북지서 관할이었고 경찰 10명 이상이 번갈아 주둔하였다고 하였다. 마을 주민 김병지(1933년생)씨는 마을이 재건된 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주둔소 경찰을 도와 경비를 서기도 했다고 한다.
영평동 주민 김덕용(1943년생)님은 마을이 재건되고 몇 해 뒤인 1954년 경 고구마도 가지고 가서 구워 먹으면서 놀 때 처음 봤었는데 냇가 가까이에 출입구가 있었으며 관망 초소와 벽에 두 세 개의 총안이 있었다고 한다. 안에는 2칸 집이 있었고 산담과 밭담으로 가져다 써서 허물어지다 길이 나며 훼손되었다 했다. 주둔소 옆 밭 주인인 김창호(1937년생)님은 성담에 몇 개의 총안이 있었고 높이는 3m에 가까웠으며 안에 집은 3칸 넓이 정도 되었다고 했다. 초소는 성담보다 낮았다고 한다.
주로 관음사 주둔소에 머물다 잠시 이곳 주둔소에 파견 근무를 했던 아라동 전태종 님은 입구가 동쪽 냇가를 향하여 나 있었으며 냇가 안에 있는 동샘이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다고 한다. 주둔소 북쪽에 붙여 동서 방향으로 소가 지나다닐 만한 길이 있었다.
문: 근무하는 경찰관은 몇 명 있었습니까?
답: 경찰관은 어디든 두 명인데 양계평 씨라고 거로마을 사람. 그 분이 우리보다 두 살 위인데 특공대 총책임자였습니다. 경찰관 하나만 있을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들도 볼 일이 있어서 경찰 본서에 일이 생기면 주둔소가 비워지게 돼 안 되는 겁니다.
문: 밥은 어떻게 해 드셨습니까?
답: 밥해주는 아주머니가 있어야지, 밥이나 마음껏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 삶이 아니었습니다.
문: 화장실도 주둔소 안에 있었습니까? 죽성 마을 새가름 주둔소처럼?
답: 예, 주둔소 구석에 있었습니다.(증언: 2018년 4월 26일 전태종(1935년생)님)
주둔소가 있던 언덕 자리는 상당한 깊이로 굴토되어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현재는 위 번지 중에서 남쪽을 묘지로 이용하고 있는데 월평동 강병효(1934년생)님은 주둔소 쌓았던 돌을 이용하여 경계를 쌓았다고 했다.(한상봉, 제주 4・3 시기 군경주둔소. 2019년)
《작성 202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