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개역개정판)
우리 인생이 힘든 이유가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 거짓 교훈과 죄의 유혹, 그리고 배고픔, 또는 배부름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강하게 말한 바
믿음에 굳게 선다(고전 16:13)는 것은
그 분별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다.
다니엘 에버렛(Daniel Everett, 1951~ ) 이라는 전직 선교사가 있다.
195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바텐더, 카우보이, 기술자 등의 직업들을 전전했고,
어머니는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약물과 마약에 빠지는 등 거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고등학교 때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를 본 뒤 영화의 주인공인 언어학자 헨리 히긴스에 매료되었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새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점차 삶의 회복을 경험한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1976년 시카고 신학교에서 선교학 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SIL(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라는 선교단체의 후원과 파송으로 본격적인 선교사 훈련을 받기 위해
멕시코 치아빠스 주의 정글에서 군사훈련만큼이나 힘든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친다.
(80km 행군과 깊은 밀림 속에서 오직 성냥과 물, 로프, 칼, 손전등 소지 후 생존 훈련 등...)
뿐만 아니라 언어 훈련도 체계적으로 받은 모양인데
노엄 촘스키의 현대 언어학 이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존 오지에서 만난 피라한 부족
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고
TED 강의나 옥성호 前 집사의 영상에서 확인이 가능하지만
(절대로 이런 것들을 접하는 시간은 유익하지 않았다...)
그는 신앙을 버리고
가족도 버리며 (버림받았다는 말이 정확할 듯 하다.)
뭐 무슨 불교의 가르침에서 몇 번 들어본 무슨 행복 비슷한 것을 찾았다고 한다...
소름끼치는 부분은
마가복음을 번역하기 위한 그의 헌신적인 수고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수고였다는 점이다.
본인의 말로 녹음
원주민의 말로 녹음...
번역까지도 헌신적이었는데
녹음까지...
그리고 BGM과 연출까지
오늘날의 드라마바이블 제작과 같은
그런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신앙을 버리고, 그들에게 동화되었다.
배가 불렀나?
캘리포니아의 맛있는 음식 대신
아마존의 쥐를 먹어야 (그리고 그걸 가족들에게까지 먹게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도
배부를 수 있다.
그건 자기 만족일 것이다.
선교까지 떠나게 한 열정이
신앙 자체를 떠나게할 냉담으로 바뀌는 것도 가능한 것이
우리네 삶이다.
무엇이 그를 배부르게 했을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부유했지만 불우한 가정의 고등학생에게
진심을 다해 복음을 전했던 옥성호 집사가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의 업적마저 무너뜨릴만큼
탈회심이라는 희한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무엇일까?
(유튜브에서,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며 무신론을 열심히 선포(?)하는 그의 표정은 예전의 그의 표정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마존에서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다니엘 에버렛은
아내와 이혼하고, 자녀들과도 연을 끊었다고 알려졌는데,
그 아내는 다니엘 에버렛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다니엘 에버렛이 발견했다는
파라한 족의 행복이라는 것이야말로
실체가 없는 것이며
다니엘이 주장한 바 근심걱정이 없다던 파라한 종족에게는
질투와 공포마저 존재했다고 한다.
그래도 확실한 건
지구 온난화 때문에 더 팍팍해진 그 아마존 정글에는
부유함이란 없다.
그곳에는 가난 뿐이다.
마가복음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가 신적 존재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랬거나 아니거나
그 파라한 부족민들에게는
복음을 끝까지 거부할 고집과 깡다구(?), 그리고 분명한 철학이 있었겠지
그래서 가난 정도야 우습게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들보다 못한 우리네 모습이
더 우습게 보일 뿐이지만...
가난했던 다니엘은
신앙을 떠나고, 이혼을 당한 후
오히려 언어학자로서는 잘나가게 된다.
결정적으로
브라질과 미국을 오가며
자신의 선교 실패와 (역시 무신론자인 노엄 촘스키 언어학 이론의 실패...)를 바탕으로 한 그의 저서는
불티나게 팔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벤틀리 대학교 학장직까지 오르게 했다는 건 아이러니다.
TED 영상에서 그는 무신론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관객들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서서히 주님을 떠났던 그 사람 다니엘 에버렛, 그리고 옥성호...
무슨 이유가 있었나?
사랑이 식으면
주님도, 가정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했던 바울은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고후 16:24)라는
다소 이색적인 사랑고백으로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한다.
주님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다.
교회를 떠난 자들만 그럴까?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을 떠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바울은 저주의 말 바로 다음에 사랑의 말을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것은 죄를 용납하는 것이 아니다.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떠났어도
그들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먼저
나도 저들과 같은 신세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나의 사랑이 식지 않도록
식어버린 사랑 때문에 내가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주님과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행복이
주님과 무관한 행복이라면
나 자신에게만 집중된 행복이라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기 딱 좋은 온도가 된다.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자신들만의 왕국에서 행복(?)하다는 파라한 족은 채 10,000명이 되지 않는데
그들은 아무도 예수를 믿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가난해도 배부른 그들에게 동화될 것이 아니라
먼지를 떨어버리고 나왔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헌신과 섬김에도
그 엄청난 훈련에도
그 무수한 시간과 추억에도
그의 신실하신 도우심을 실제로 체험해도
배부르기 시작하면 변할 수 있다.
사랑도 그렇게 변하는 법이니까...
사울왕의 변질은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며
내가 면한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성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사울이었던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겸손히 고백한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개역개정판)
선교사처럼 세상을 바꾸기보다
학생처럼 다양성을 수용하고 교류하며 배우려한다는 선교사 출신의 무신론자의 말만큼
배부른 소리를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잠언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개역개정판)
그리고 아마존의 파라한 부족이
쥐를 사냥하지 못하면 내일 먹으면 되지 하면서 웃어넘기는
그 독특한 행복의 관점과 시각은
나름의 지혜와 일리가 있어도
그들도 경험하게 될 죽음과 그 뒤에 있는 악한 세력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묻어나는
그리고 우리 속에서도 발견되는
어리석음이요
좌절과 실패, 근심과 걱정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의지한다.
끝까지 나를, 아니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도 끝까지 붙들게 하실 줄을
소망 가운데 확신한다.
주님...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저주를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고전 16:22)
마라나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오셔서
다스리시고
붙드시며
주님의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늘 보여주시고 체험케 하셔서
그 어떤 가난과 부요함도
배부름과 배고픔도
주를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행복을
절대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살아계시고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 이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