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1부 - 시지프스의 신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당신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의미없는 일의 반복이다. 스탈린 치하의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데이소비치의 하루에는 수용소 죄수들의 벽돌 옮겨쌓기 일화가 나온다
중죄수에게 시킨 일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한 곳에 벽돌을 쌓게 만든다. 그 다음 쌓은 벽돌을 허물고 그 벽돌을 다른 장소에 쌓게한다. 그곳에서 벽돌쌓기가 끝나면 그 벽돌을 허물어 원래 자리에 다시 쌓는다. 이 일을 끝도 없이 반복하게 한다. 이 벽돌쌓기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죽게된다. 이들의 벽돌쌓기 노동이 육체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아니라 정신적으로 감당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쌓기와 허물기 속에서 일에 대한 의미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일화는 비단 수용소의 죄수들에 국한된 일화가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에도 이를 적용해 볼수 있다. 우리들의 일상은 대부분이 끊임없는 일들의 반복이 대부분이다. 만약 우리가 일에서 의미를 발견할수 없고 단지 호구지책으로만 여긴다면 우리의 삶은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인생의 선배들은 이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알베르 까뮈는 그의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우리의 삶의 부조리를 이야기 한다.
그리스의 코린토스를 건설한 왕이었던 시지프스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꾀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어느날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그를 데리러 오자 시지프스는 오히려 타나토스를 잡아 족쇄를 채워 그를 가두어 버렸다.
죽음의 신이 활동을 못하게 되자 세상에는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다. 세상의 질서가 흐트러질 것은 우려한 제우스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시켜 타나토스를 구출하고 시지푸스를 잡아간다.
그러나 영리했던 시지푸스는 지하세계에 잡혀가기 전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일러둔다.
저승에 잡혀간 시지푸스는 아내가 자신의 시신을 들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방치한 것을 원망하며 사흘간의 말미를 주면 아내를 혼내주고 자신의 시체도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겠다고 간청한다. 그를 불쌍히 여긴 하데스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이승으로 돌려보냈지만 시지푸스는 예상대로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고 꽁꽁 숨어버린다. 제우스는 결국 자신의 전령인 헤르메스를 지상으로 보내 시지푸스를 잡아 지하세계로 끌고와서는 그에게 가장 끔찍한 형벌을 내린다.그 벌은 아크로 코린토스산에 있는 커다란 둥근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것이었다. 바위는 정상에 오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면 시지푸스는 산 아래로 내려가 다시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 이 일을 끊임없이, 영원히, 무한대의 시간동안 반복해야 한다.
까뮈가 이 에세이를 통해 하고 싶었던 철학의 주제는 이 의미없는 일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삶이다. 부조리란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세상은 온갖부조리로 가득차 있다.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부조리한 세상속에서 절망적 한계 상황에 처해진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은 세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이 무의미한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 둘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적 존재에 귀의하는 것,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싸우며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벌이 끝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 올리면 굴러 내려오고 다시 올리면 또 굴러내려오는 의미없는 일들의 반복일 지라도 다시 힘차게 밀어올린다. 그 길 만이 자신에게 영겁의 형벌을 내린 신들에 대한 반항이다. 까뮈는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하고 깨어 있는 정신으로 부조리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그러한 영겁의 형벌을 내린 신에게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가했다.
솔제니친은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10년동안의 그의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고 197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지만 반소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서독으로 추방된다.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에 무신론자였던 솔제니친은 나올 때는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감옥아 내 너를 축복하노라,
내 삶에 네가 있었음을 축복하노라,
감방의 썩어가는 밀짚 위에 누워 깨달았으니,
인생의 목적은 번영이 아니라, 영혼의 성숙에 있음이라.
그에게 수용소 생활 10년은 그의 영혼을 성숙케하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우리 모두는 다만 울타리가 없을 뿐 그와 같은 똑같은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은 끊임없는 생활의 반복이다. 게다가 인간의 수명은 매우 길다. 거북이와 같이 몇 백년을 사는 생물도 있지만 젊고 팔팔하게 살다가 바로 죽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긴 노년기를 보내야만 한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라면 우리는 60세에 은퇴한다고 해도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우리의 직장생활은 기껏해야 30년이다. 은퇴후 40년은 일하며 살아온 나날들 보다도 10년이나 더 많다.
만약 우리의 인생에서 철학이 없다면 우리의 노년은 매우 쓸쓸할 것이다. 평생동안 일만하다가 은퇴한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나를 인간답게 하는지, 무엇이 나의 영혼을 성숙하게 하는지, 무엇이 인생을 재미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삶의 철학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은퇴후 무망(無望)의 삶을 살다가 쓸쓸히 떠나갈수 밖에 없고, 내가 지금껏 해온 일에 대한 가치 또한 발견하기도 힘들다. 철학이라는 게 뭔가 거창한 것도 아니며 철학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견디기 힘든 시지프스의 돌굴리기와 같다. 때로는 수용소의 죄수들처럼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다시 시지프스와 같이 바위를 굴러 올리려 직장에 출근해야만 한다. 내가 먹여살려야 하는 가족을 위한 호구지책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지칠 때면 욕을 해대며 돌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대한 의미는 무엇인가? 단지 어제와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일일뿐인가?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늘 반복되기만 하는 고통스러운 일은 보람된 일이 되고 또는 재미난 놀이가 될 수도 있다. 그것만이 우리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굴레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출처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https://www.safety1st.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