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통과의례처럼 많은 사람들이 궁합을 본다.
궁합이 뭐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는 보험이나 증명서도 아닐 텐데, 수많은 커플들 혹은 그들의 부모님들이 궁합을 보는 이유는 뭘까?
당신은 어떨 때 궁합을 보고 싶습니까?
이런 주제라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TV프로 <야심만만>의 내용으로 딱 어울릴 만한 질문이다. 꼭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건 아니어도 “내가 이 남자와 계속 사귀어야 할까?” “이 남자랑 나랑 잘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각자의 재미있는 대답이 통계가 되어 나올 테고 또 패널들의 재미있는 경험담이 들려올 것이다. 과연 1위는 뭘까? 궁금하지만 설문조사할 만한 제작비(?)가 없는 관계로 궁금증으로 묻어 두기로 하자. 여하튼 ‘나와 그가 잘 맞는지’ 궁금한 커플이 많은 관계로 노천의 관상쟁이 할아버지나 점집, 사주 카페에서는 사주와 함께 ‘궁합’을 주요 종목으로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는 실정. 하물며 이것이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으로 가면 그 비중이나 중요성은 더더욱 업그레이드된다. 우리 나라 신혼부부 중 궁합을 안 보고 결혼한 사람이 없을 정도. 물론 본인들이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많을 테지만 주위의 어른 중 꼭 한 명은 궁합을 봤을 확률이 99.9%에 육박한다. 핸드폰으로 신용 카드 결제를 하고 화상 통화까지 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궁합’이 무슨 행복한 결혼을 보장해 주는 증명서도 아닐 텐데. 이혼을 막아주는 ‘초강력 부적’이 되는 것도 아닐텐데. 마치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꼭 보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결혼의 통과의례 궁합?
물론 나 또한 결혼 전 궁합이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결혼을 몇 달 앞둔 시점. 시어머니로부터 정확한 생년월일을 가르쳐 달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걱정이 앞섰다. 생년월일과 시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분명 한 가지 이유. 궁합을 보려는 것인데 혹시나 ‘절대 결혼불가’라는 점괘라도 나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노천의 관상쟁이 할아버지에게 재미로라도 한 번 볼걸. ‘운명은 스스로 개척한다’ 라는 나름대로의 신념 하에 점 따위는 미신이라고 업신여기던 것에 대해 아주 조금은 후회가 밀려왔다. ‘도대체 궁합이란 게 뭐길래’ 생년월일만 보고 두 사람이 잘 맞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안다는 거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고 걱정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갈 무렵, 마침내 시어머니로부터 ‘잘 산다더라’라는 낭보를 들었다. ‘잘 산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토익을 만점 맞은 취업 준비생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궁합’의 장점이란 게 이런 거구나. 좋다고 말해 주면 더 잘해 보려고 하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 하지만 반대로 나쁘게 나왔다면 어땠을까? 물론 나쁘게 나왔다고 해서 결혼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도 없으니 괜히 찜찜한 기분만 가중되는 건 뻔한 일일 것이다. 또한 결혼 후, 서로 싸우고 서로 실망할 때마다 ‘우린 궁합이 안 좋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군.’ 하면서 자책할 일도 불 보듯 뻔하다. 과연 궁합에 그와 나에 대한 좋고 나쁨의 미래가 들어있는 걸까? 단정적으로 잘 산다, 못 산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은 역시 주변 탐문 수색(?). <야심만만>처럼 천 명에게 물을 수는 없지만 대신 주변 사람들과 지식인을 통해서 간단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과연 궁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로 맞춰가면 안 맞던 궁합도 맞게 되는 거 아닐까?
결혼한 지 2년. 우리도 궁합을 봤다. 그런데 점 보는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와 나는 물과 나무라고 하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자주 싸우게 될지 모르니 잘 맞춰가며 살아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우린 그 말에 신경 안 쓰고 예쁘게 잘 살고 있다. 내가 가끔 농담으로 ‘자주 싸우게 된다더니 궁합이 틀렸네’ 했더니 남편이 그런 다. 뭐든 맞춰가면 된다고.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안 맞던 궁합도 맞게 된다고. 이게 정답 아닐까?
(유미선, 29)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궁합!
난 궁합을 믿는 편이다. 아니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궁합이 나빠서 고생하는 경우를 우리 부모님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결혼 전에 궁합을 봤는데 결혼하면 불행해질 사주라고 했다고 한다. 때문에 특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결혼을 무지하게 반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했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점쟁이가 말한 대로다. 엄마는 결혼 전 매우 건강하셨다는데 결혼하자 마자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고 있고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안 풀린다. 이런 일들을 30여 년 가까이 보아온 우리 언니, 오빠들도 모두 절대 궁합이 안 맞는 사람이랑은 결혼을 안하겠다고 한다. 물론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 또한 남자친구를 사귈 때 가장 먼저 봤던 것이 궁합이었다. 그와의 결혼을 결정한 이유도 물론 그 사람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궁합이 좋다는 점괘의 영향이 컸다. 그 사람과 사귈 때부터 궁합을 보고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진지하게 사귀었을 정도다. (정성운, 34)
궁합 때문에 흔들리는 결혼
그를 사랑하지만 그를 둘러싼 가족 환경 때문에 결혼을 망설였다. 그의 직업은 의사. 썩 부유하게 자라온 환경이 아닌 탓인지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대하는 게 많았고 내게도 은근히 이것저것 많이 바라는 눈치였다. 뭐, 소문처럼 열쇠 세 개를 요구하는 건 아니었지만 친척들에게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며 무언의 압력을 줬던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는 3대 독자에 종손. 제사만도 일년에 11번이나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엄마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딸이 사랑하는 남자니까 어쩌겠냐고 하며 허락을 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궁합을 보고 오시더니 결혼을 하면 남자가 바람을 피울 확률이 높은 데다가 결혼하면 고생을 한다며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신다. 우린 이미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날짜까지 잡은 상황. 물론 그와 헤어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엄마가 저렇게 반대를 하고 나서니 어떻게 할까? 난감하다. 그에게 이런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확인되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결혼을 취소할 만큼 궁합이 커다란 역할을 하는 걸까? (김민아, 28)
저희 어떻게 하죠 ?
나는 80년생, 남자친구는 77년생. 우린 결혼을 생각하고 양가 어른들에게 인사도 드린 상태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건 바로 궁합. 시어머니 될 분이 궁합을 6번이나 봤는데 모두 이런 최악의 궁합은 처음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점쟁이는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자신이 나서서 말리겠다고 했을 정도. 우린 결혼해서 살 경우, 둘 다 단명하는 최악의 경우라고 한다. 우린 서로 힘든 적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사랑해 왔고 앞으로도 정말 사랑하겠다는 마음 변함없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둘만의 의지로 결혼하기는 힘든 상태. 시어머니는 죽어도 결혼은 안 된다며 결사반대 하시고 있고 이 사실을 안 엄마도 나이도 어린데 벌써 결혼하냐며 마음을 접으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비올수록 땅은 굳어진다고 우리의 사랑은 더욱 간절해졌고, 고민 끝에 우린 둘만의 결혼식이라도 올리자고 마음먹은 상태. 하지만 정말 우리가 잘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이정희, 25)
궁합은 해석하기 나름
결혼을 중요시 생각하는 우리 나라의 풍습상 결혼 전 누구나 궁합을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결혼을 얼마 앞둔 시점,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궁합을 봤다. 다행히 점을 봐주시는 분이 좋은 분(?)이어서 그런지 궁합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 전체적인 결혼 생활에 있어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기 마련이라 이걸 한번에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면서 그에게는 급한 성격을 고치고 아내의 말에 귀기울이라고, 내게는 욕심 부리지 않으면 잘 살 거라는 말을 해주셨다. 처음에 ‘에이 그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두 사람의 단점을 고쳐 잘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그는 급한 성격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많았고, 나 또한 욕심 많고 지고는 못 사는 성격으로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몸도 자주 아프고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때문에 싸울 일도 많았지만 궁합 볼 당시 나왔던 ‘급한 성격과 욕심’을 조심하라는 말을 상기하며 서로 한발 물러서니 싸울 일도 좋게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내가 보기엔 궁합이란 해석하기 나름인 듯싶다. 궁합 상 나쁜 게 나왔다면 고치고 주의하면 되는 거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박지선, 27)
궁합보다는 성격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결혼 전 본 궁합에서는 우린 아주 ‘잘 산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야길 듣고 의기양양, 기분이 좋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자, 우리는 다투는 날이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성격 차이. 난 사람들이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들 때 그저 그건 대외적인 명분으로 가장 적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하고서야 알았다. 두 사람의 성격이란 게 결혼생활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조금은 낙천적이고 털털한 내 성격에 비해, 그는 고집이 센 데다가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 꼼꼼한 성격. 결혼 전에는 그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나의 예측은 예상을 빗나갔다. 그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꼭 짚고 넘어갔다.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잔소리. 게다가 직장 다니는 내게 아침밥과 주말에는 시댁에 가자고 무리한 요구까지 한다. 처음에는 그의 급하고 꼼꼼한 성격에 맞춰보려고 노력했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 조금 노력하면 별 문제 없을 텐데… (신채성, 30)
이렇듯 맞는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한 알쏭달쏭한 궁합에 대해 신세대 역술인이자 라이브 비전의 대표인 송병창 씨는 이렇게 말한다. “궁합을 잘 산다, 못 산다는 이분법적 점괘로 나누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죠. 오히려 결혼까지 갔다는 그 자체로 그 두 남녀의 궁합은 이미 좋은 궁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결혼하면서 생길 수 있는 일, 서로의 사주를 근거로 상대방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로 인해서 생겨날 문제점을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의미가 크죠.” 또한 그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남녀가 만나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측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사주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궁합이라고 말한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시기별로 좋고 나쁜 일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모든 일을 결정하는 건 두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에 단번에 ‘잘 산다’, ‘못 산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 개인의 사주가 맞을 확률은 80% 정도 되지만 미안하게도 궁합이 맞을 확률은 50:50 뿐이라는 게 그의 솔직한 얘기. 그만큼 미래 예측에 대한 부분은 그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게 사실이다.
궁합을 통해 두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사고방식 등을 파악해서 예측 가능한 문제점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게 궁합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고. 우리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것처럼 인생의 정보 검색 차원에서 궁합을 보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라고 그는 말한다. 결국은 생년월일이나 시에 의한 사주 궁합보다는 두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자라온 환경, 취미 등에 의한 심리 궁합이 더더욱 결혼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말씀.
많은 심리학자나 결혼 전문가들도 결혼 전 사주 궁합을 보는 것보다 심리 궁합을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주 궁합이란 개념이 없는 서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그와 내가 가치관이나 성격, 취미, 습관 등이 얼마나 잘 맞는지 하는 심리 궁합에 관한 것. 존 그레이의 <화성남자, 금성여자>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심리 궁합을 잘 조절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는 서양사람의 심리에서다. 그런가 하면 아예 행복한 결혼이 될 것인가의 여부는 사실 상당 부분 결혼하기 전에 결정되는 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임상 심리 전문가 김선희 씨는 <결혼하면 행복한가요?>라는 저서에서 결혼에도 성공이 있다고 한다면 성공의 50% 정도는 얼마나 나와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결혼 전 심리 궁합을 맞추는 것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체크해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느냐?” 하는 사랑 궁합이 가장 중요할 터.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성격, 가치관, 사고방식, 습관 등 서로 다른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있어야만이 이해하고 맞춰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결혼 전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사주 궁합도 심리 궁합도 아닌 ‘그를 정말 사랑하느냐’인 사랑 궁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