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10회차 문경 대야산 수직암벽에서 뜻하지 않게 갈비뼈 석 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 치밀한 준비 없이 지난해 마지막날 경남 산청 대원사를 출발, 치밭목 산장에서 새해 첫 날 중봉 거쳐 천왕봉 올라 10회에 걸쳐 대야산까지 이르렀다. 뒤늦게 백두대간 공부를 다시 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고 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625km를 걸어야 하는데 북한 구간을 걸을 수 없으니 향로봉부터 지리산까지 690km를 걸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중 대야산과 속리산, 점봉산 등 비법정 탐방로로 지정된 곳이 200km이니 490km정도 걸어야 한다.
조상들은 산을 한 그루 나무로 바라봤다. 그 개념을 대간 종주에 나서고 나서야 알게 됐다. 학교 다닐 때 익히 알았더라면 우리 국토를 이해하는 데 한결 나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원리를 알고 있었더라면 대간 종주를 하며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무처럼 줄기와 가지, 그 중에 큰 가지와 곁가지로 나누고 큰 가지와 곁가지 사이에 강이 흐르는 것으로 봤다. 산수분할 또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원리다. 산이 물을 가른다는 의미다. 산에 의해 강줄기가 나뉘고, 산줄기는 이어져 있어, 누구나 자기 집 뒷산에서 산줄기를 거슬러 가면 강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에 닿을 수 있다. 개발로 인해 낮은 산줄기가 잘려서 물길이 생긴 곳이나 섬산은 제외된다.
큰 것부터 작은 것으로 대간, 정간, 13정맥, 기맥, 지맥으로 나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연속된 산지체계이며, 백두대간 종주는 연속된 산지의 정상부 능선을 따라 걷는 것을 뜻한다.
처음 백두대간 개념이 문헌에 나타난 것은 10세기 고려 승려 도선이 지은 '옥룡기'다. '우리나라는 백두에서 일어나 지리에서 끝났으며 물의 근원, 나무줄기의 땅'이라고 갈파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대간이란 개념이 나오고, 이익의 '성호사설'에 백두대간과 정간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신경준의 '산수고'와 '동국문헌비고 여지고'에서 산줄기 흐름을 설명한 뒤 신경준의 '산경표'에 에 산줄기와 산의 갈래,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나타냈다. 이런 선조들 노력에 터잡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편찬됐다.
그 뒤 우리 산하를 기록한 것은 일본인이었다. 태백산맥이나 소백산맥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도 고토 분지로였다. 지질을 기준으로 나눈 것이어서 실제 백두대간과 상당히 다르다. 1910년 최남선이 조선광문회를 설립해 택리지와 산경표 등을 간행했지만 일제의 식민지 교육과 민족 상잔 등으로 명맥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명맥을 이은 이가 누구일까? 1984년 첫 겨울 단독 종주에 나선 남난희일까? 아니었다. 뜻밖에 성우였다가 나중에 산악인이자 고지도 연구가로 전향한 이우형(2001년 별세)이란 인물이었다. 1980년 신경준의 '산경표'를 우연히 인사동 고서점에서 발견, 지도 제작에 나섰다. 그가 만든 '산경도' 검증에 나선 것이 대한산악연맹의 대학생 백두대간 등반대였다. 1988년 7월 2일부터 7박 8일 검증에 나섰지만 준비 소홀로 완주를 다음으로 미뤘다. 남난희와 권경업이 1990년 10월 6일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 이듬해 9월 1일 향로봉에서 종주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3년 뒤 광주 소아과 의사 조석필이 '산경표를 위하여'란 책을 출판, 대간 종주 붐을 일으켰다.
나는 대간 종주를 시작하며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비법정 탐방로는 택하지 않고, 택시나 숙소 등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게 움직이며, 가급적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위해 산 아래 내려와 자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 원칙이 가장 지키기 어렵다. 대야산에서도 비법정 탐방로에 발을 들였다가 뜻밖의 큰 부상을 입게 됐다. 네팔과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국내 산악인이 여섯 명에 이르는데도 정작 뉴질랜드인도 마음놓고 다니는 북녘 백두대간을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고, 남한 구간마저 이렇게 많은 곳을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데도 정작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개탄스럽다. 경작지와 하우스 농장, 공장, 채석장과 광산 등에 의해 대간이 할퀴어지는 참상을 목격하는 것도 안타깝다.
40년 이상 틈틈이 유명 산 위주로 다녀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그 큰 산들을 잇는 고개와 작은 산, 구릉 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절감하고 있다. 지금까지 3분의 1과 절반 사이를 종주했는데 지리와 덕유를 잇는 봉화산~백운산, 속리와 대야를 잇는 청화산~조항산 구간은 꼭 다시 찾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산과 물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따스한 사람들이다. 대간 종주는 기본적으로 인파가 북적대기 어려운 길을 걷지만 여원재 민박 할머니, 폐교된 분교를 펜션으로 고쳐 짬뽕 먹고 싶다는 나를 승용차에 태워 읍내로 데려다준 주인, 무척 친절해 나중에 꼭 다시 신세를 지고 싶은 택시 기사 등이다.
대간 길을 거닐면 뭐가 달라지느냐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내 몸뚱아리가 건강하다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육십 일생을 돌아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비워진다는 것 말고 별다른 감흥도 없다. 많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걷고앞으로 내가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