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터 생각
장석남
지난 봄 경주 황룡사 터엘 꼭 가보고 싶어
거길 갔었습니다
종달샌지 공중으로 떠오르다가 가라앉고
주춧돌들 나란히 나란히 무릎 꼭 오그리고 제자리 앉았는 자리마다
하늘도 그 주춧돌의 하늘로서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
주춧돌 하나하나마다 앉아서 한 시간쯤씩
아니 하루쯤씩 앉아 있어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허공을 오르락거리는 새들은
한평생씩 앉았다 가라는 것 같았지만
그만 내 가진 목숨이란 게 그걸 못하게 하고는 재촉하는 바람에 그냥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생에서는 꼭 그 주춧돌 위에
자정 넘긴 하루씩은 세워보고 싶은데
어디에 무슨 숨으로 기원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이승은 다 갈 것 같습니다
귀에 맴도는 종달새들 소리만 몇 남겨서
저승까지 굴려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장석남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2001)
--------------------------------------------------------------------------------------
내가 밥 벌어먹고 사는 포항과 이웃해 있는 천년의 신라 고도(古都) 경주는 수시로 드나드는 도시입니다. 그곳의 황룡사지터는 진평왕릉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광활한 이 폐사지는 내 달콤한 연애의 장소이면서도 마음공부의 수련장이기도 합니다. 그곳으로 찾아갈 때는 보슬비와 종달새가 폐사지 위로 놀러오는 봄날이 가장 좋습니다. 서편의 선도산 위로 해가 막 넘어가는 해질녘이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인천 덕적도 출신의 장석남 시인이 봄날에 이곳 황룡사터를 다녀간 모양입니다. “주춧돌 나란히 나란히 무릎 꼭 오그리고 제자리 앉았는 자리마다/하늘도 그 주춧돌의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또 귀에 맴도는 종달새 소리를 저승까지 굴려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광활한 황룡사지터에 가보면 그곳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아늑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평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경주에 오는 사람은 꼭 이곳을 가봐야 합니다. 이곳에 황룡사지 9층 목탑을 복원하자, 말자는 논란이 있습니다. 천년 전부터 민중들의 염원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탑은 이미 세워져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함부로 덧칠할 일이 아닙니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