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의 대와 곧은 큐, 그리고 공을 가지고 이뤄지는 '당구'
짙은 담배연기, 그리고 내기를 통한 짜장면 배달…과거 불량 청소년들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놀이가 이젠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당구는 과거 이상천, 쟈넷리, 차유람, 김경률 선수 등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올해 프로당구협회인 PBA가 출범해 우리나라 여섯 번째 프로스포츠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당구가 단순한 놀이에서 전문적인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자리잡기까지 많은 당구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특히 강원 지역은 과거 당구의 불모지였지만, 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한 이비인후과 의사 덕분에 인프라 확충과 당구인 양성에 큰 힘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메디파나뉴스는 강원도 당구연맹회장을 역임하면서 당구발전에 힘을 쓴 춘천 연세강이비인후과 강석태(52회) 원장을 만나 그가 당구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쓰리쿠션'으로 들어봤다.
◆ 원쿠션: '의약분업' 시대 실력 쌓고, 은사 만나 '당구계' 투신
당구대와 큐, 그리고 공으로 즐기는 당구는 숫자가 적힌 단색공과 줄공을 구멍에 넣고 마지막에 8번 공을 처리하는 '포켓당구' 방식이 있다.
아울러 구멍(포켓)이 없는 당구대에서 두개 이상의 적구를 연속해서 맞히는 '4구', 하나의 공을 쳐서 3회 이상 당구대에 닿은 다음 나머지 공을 맞추는 '쓰리쿠션'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강 원장이 이런 당구를 처음 접한 것은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그러나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바로 2000년도 의약분업과 관련이 있다.
강 원장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춘천시의사회 총무이사를 역임해 의사들의 투쟁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한 공간에 모이는 활동과 약 20여일 간 휴진을 하는 과정에서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동료의사들과 당구를 쳤다"고 돌아봤다.
단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놀이였던 '당구'는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욕을 북돋아주는 촉매제가 되었고, 의사들의 투쟁에 강원도 의사들의 적극 나서게 되는 힘이 되었다.
일명 '쓰리쿠션 300'은 기본일 정도로 월등한 당구 실력을 겸하게 된 강 원장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당구는 단순히 지인들과 놀이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강 원장이 본격적으로 당구계에 투신하게 된 것은 바로 대한민국 1세대 당구 선수인 이상천 선수와 만나게 되면서이다.
이 선수는 당구불모지였던 우리나라 선수로써는 드물게 1990년대 세계선수권을 휩쓸던 인사로 당구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당구 역사상, 가장 감각이 좋은 선수로 회자된다.
2003년 이상천 선수는 당시 세계 챔피언인 세미 세이기너 선수와 함께 춘천을 방문했고, 그때 첫 만남을 가졌으며 이후 강 원장은 이 선수와 한팀이 되어 복식경기를 하는 기회를 얻었다.
강 원장은 "이후 나를 좋게 본 이상천 선수가 본인이 대한당구연맹 회장을 하고자하는데, 부회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했다.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고사했지만 강원도당구연맹 회장을 맡아 돕겠다고 답을 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이상천 선수와 강 원장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선수는 강 원장과 복식당구를 끝으로 2004년 위암으로 유명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 투쿠션: 故이상천 선수 유지 이어받아…강원도 지역 당구계 활성화 공헌
짧은 만남이었지만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해 준 故이상천 선수의 유지를 이어 받아 강 원장은 이후 강원도 당구협회장으로 6년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게된다.
가장 먼저 강 원장은 'Sang Lee배'라는 이름으로 故 이상천 선수 추모대회를 개최했고, 각종 교류대회를 만들어 당구가 활성화 되는 것에 큰 기여를 했다.
강 원장은 "당시 강원도에는 당구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에 전문 선수가 부족했다. 이런 차원에서 분기마다 열리는 '중부권 선수권 대회' 등을 만들어 당구인들이 나갈 수 있는 대회를 유치했다"고 돌아봤다.
또한 지자체인 양구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대한체육회장배 당구 대회를 유치하는 등 TV로 중계하는 당구대회 4개 중 2개의 대회의 모체를 강 원장이 연맹회장직을 수행하던 시절에 만들었다.
아울러 강 원장이 강원도 당구연맹회장을 하면서 가장 큰 업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한체육회 가입을 통해 당구가 스포츠로 정식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난 2008년 인천시와 강원도가 전국 당구연맹 최초로 체육회 산하 단체에 가입하면서 당구의 대중화에 불씨를 당겼다.
강 원장은 "당구의 장점은 바로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당구장이 도처에 있기에 여러장소에서 즐길 수 있으며, 나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스포츠이다"고 규정했다.
이어 "본인도 당구를 치면서 이제는 아들 뻘과도 함께 게임을 즐긴다. 또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의 다각적인 의견을 듣고 교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강 원장은 당구를 치다 친해진 동생이 이후 아들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적도 있었으며, 의사 사회에서 벗어나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며 진료상담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다.
강 원장은 지난 2005년 체육회 가입 신청 이후, 당구의 장점을 체육계 인사를 만나 적극 피력한 결과, 정식 스포츠가 되었으며 이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는 선수가 나오는 등 전성기를 맞이 했다.
◆ 쓰리쿠션: "즐거운 스포츠 '당구'…의사 사회로 이식 중"
지난 2010년까지 강원도 당구연맹 회장을 수행한 이후, 강 원장은 외유를 끝내고 다시 의사사회로 돌아왔다.
춘천시의사회장을 거쳐 현재 강원도의사회장을 역임하며, 각종 의료계 내부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고언(苦言)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당구의 즐거움을 동료의사들과 나누기 위해 춘천시의사회 내부에 약 20명 정도 규모로 당구 동호회를 조직해 의료계에 당구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강 원장은 "춘천시의사회 내부에 당구 동호회를 만들어 당구를 접하지 못한 의사들에게 레슨이나 기회를 주고 있다. 정해진 날 없어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구를 치게 되면 술집에 덜 가기 때문에 건강도 좋아질 것"이라고 웃음을 던지며, 많은 의사들이 당구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아가 의료인들의 사회 공헌이 꼭 '해외의료봉사'나 '의료물품' 후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시사했다.
강 원장은 "가족이나 주변에 이야기 한다. 의사의 사회봉사가 꼭 의료봉사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내가 즐기고 있는 취미를 열심히 하고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도 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강 원장의 활약으로 인해 당구불모지 였던 강원도에 당구를 즐기는 인원이 늘었고 인프라 확장으로 당구인이 설 자리가 많아졌다.
끝으로 강 원장은 유명 당구채널인 빌리어즈 TV에 나오는 당구의 정신을 언급하며, 향후에도 당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 원장은 "춘천시의사회 당구 동호회를 통해 후배의사들에게 당구를 알려주고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며 "당구장에서 '당구대처럼 넒은 마음, 큐처럼 곧은 마음, 공처럼 둥근 마음, 쵸크같은 희생정신'을 잘 배우길 바란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