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여행] 우도여행 끝을 보기위해 첫 방문한 천진항...........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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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를 방문 하는날 밝아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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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우도여행 끝을 보기위해 첫 방문한 천진항...........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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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지난번 여행에서 하우목동항에서 시작을 하여 좌측 시계 방향으로 주흥포구-답다니탑 전망대-망루등
대-하고수동 해변-비양도-영일동포구-검벌레 해변에서 발길을 멈추고 시간 관계상 중도에 우도를 빠져 나와야
만 했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찾아가는 우도 여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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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섬속의 섬 우도에 가려면 제주도 성산 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성산 항에서 3.9km, 배타는 시간은 15분 남
짓이면 우도에 도착하는 거리다. 제주 본섬의 마지막 오름인 지미봉(해발 162m)에서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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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바라보는 전경, 오늘 방문 할 우도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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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등지고 새벽을 가르는 바다 위 돛단배는 방향 지시등도 없이 아침부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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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일찍 성산포 항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우도의 서남쪽에 자리한 천진 항으로 들어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역시 우도 들어가는 길목엔 지난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알록달록한 지붕, 푸른
땅콩 밭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몽환적인 삶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절경을 빚어내는 “꼼딱헌 소섬”이 유랑자의
시야에 아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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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딱헌 소섬은 제주 방언으로 ‘아름다운 섬, 牛島(우도)’를 일컫는 말이다.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 牛島
(우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물소가 누워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소섬’ 또는 이를 한자화한
牛島(우도)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우도 여행은 소의 몸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비스러운 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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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와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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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주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크기의 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 딸린 부속 섬 가운데서는
가장 크다. 그런데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현무암으로 쌓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돌담, 제
주의 상징인 해녀, 거센 바닷바람까지 제주 특색을 모두 만나 볼 수 있는 곳, 또한 바로 우도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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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제주’의 범주에 우도가 포함돼 있다는 점 또한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하여 우도
를 ‘제주의 축소판’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도는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6.18㎢이고, 해안선
둘레 길이는 17km인 꼼딱헌 소섬은 유랑자에겐 오히려 작은 게 잇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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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부재로 고요한 연 보랏빛 하늘과 맞닿아 밤새 내려앉은 어둠으로 짙은 남색으로 변한 바다와의 경계가
어디라는 것을 햇님이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실오라기 같던 붉은 실선이 점점 굵게 짙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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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우는 소리 들리고 東窓(동창)은 밝아오는데 牛島(우도)를 찾아가는 새벽길 햇님은 이렇게 流浪者(유랑자)
를 애써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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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것이 매번 하루·이틀 여행으로 부족함을 느꼈던 제주의 풍경을 단숨에 玩賞(완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진 옛 제주의 날것 그대로의 풍경을 지금도 여과 없이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도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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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뱃고동 소리를 들으면서 먼저 천진 항에 도착하면 포구에서 가장먼저 보이는 것은 우도의 관문 천진 항이
란 표지 석과 더불어 1993년에 건립한 우도임을 알리는 표지석. ‘牛島(우도)’와 그 아래에 ‘瀛州東頭(영주동두)’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영주는 제주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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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제주의 오름들과 바다의 수평선들 그리고 평화로운 신비의 섬 우도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
들어내고 있다. 가장 가깝게 보이는 오름이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지미오름(지미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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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을 뒤로하고 유랑자를 실은 배는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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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더 이동을 하면 로터리 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牛島海女抗日運動記念碑(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
가 애처롭게 서 있는데, 어인 일인지 눈길을 주는 이는 거의 없다. 왜일까?, 본시 우도는 잠녀 즉, 해녀와 연관
이 많다, 왜 이 자리에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서 있는 이유를 일반인들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아예 관심
도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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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다. 여행에 있어서 역사를 알면 재미가 두 배가 되고 역사를 알면 나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왕지사 나온 이야기인 만큼 이 황일 운동 기념비가 서있는 이유를 잠시 들여다보고 가기로 하자, 이곳 기념비
역시 쪽발이 일본 놈들이 등장한다, 참~그러고 보면 일본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국민들에 너무나도
많은 죄를짓고 픽박 했었음을 11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수탈의 현장들을 확인 할수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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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강점 이전에도 제주어장을 약탈했지만, 1910년 강점 이후에 어업조합이나 해녀조합 등 관제조합을 통
해 더 악랄할 착취를 일삼았다, 여기에 빡친 해녀들이 오늘날 구좌읍 세화장터에 모여 항일 시위를 했다. 인근
에 있는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 연평리 등에서 참여한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세화해녀항일투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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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1~1932년 성산, 구좌와 해녀의 본 고장으로 꼽히는 우도 해녀들과 함께 당시 제주 해
녀 연인원 1만7,000여 명이 모여 어용 해녀조합을 앞세운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궐기로, 당시 어민 항쟁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였다. 한때 제주 전체 주민의 절반가량이 해녀였고 지금도 330여 명의 해녀가 바다를 지키며 살
아가고 있는 제주가 왜 4.3사건과 더불어 우도해녀항일기념비가 돋보이는지를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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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여행은 이를테면 소의 몸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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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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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일운동은 3개월 동안 지속되며 제주 동쪽에서 17,000여 명의 해녀들이 참여하였으며. 우도 해녀 300명도
참여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제주 전역으로 투쟁이 번져나갔고 이후 해녀 愛國志士(애국지사)들은 붙잡혀 옥
고를 치른다. 참으로 가슴이 퍼렁덩이 처럼 멍하고 또한 哀惜(애석)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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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기념비 아래에 적힌 해녀들의 슬픈 노래가 嚴冬雪寒(엄동설안) 비바람에 흩날리는 빗줄기처럼 세차
게도 유랑자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든다. 그도 그럴것이 가사엔 구구절절 해녀들의 삶과 恨(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항일기념비에는 창가 형식의 노래로, 당시 우도 해녀들이 불렀던 ‘해녀의 노래’가 새겨져 있는데 내
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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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속의 섬 우도 천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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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물결위에 시달리는 몸/~~으로 시작해서 .......,
2/.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 어린 아이 젖 먹이며 저녁 밥 짓는다. /하루 종일 해 봤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 / 살자 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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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하고 /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어 파도 세고 무서운 저 바다를 건너서 /
기울 산 대마도로 돈벌이 간다.
4/.‘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
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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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는 해녀 역사와 문화가 뿌리가 깊은 섬이다. 등대가 세워진지 30년 후인 1932년에 우도 해녀들은 자신들
이 채취한 해산물을 일본인들이 상인조합과 야합해 착취하자 격분해 수백 명이 항일 봉기를 일으켰다. 유례없
는 섬 여성들의 항일운동을 기리고자 우도포구에는 해녀상과 해녀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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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항 부두에는 1993년에 건립한 우도임을 알리는 표지석. ‘牛島(우도)’과 그 아래에 ‘瀛州東頭(영주동두)’라
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영주는 제주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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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해녀들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이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고 하며 지금도 나이만은 해녀 분들은 이 노래
를 부를 때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철저하게도 무시당하고 홀대받았던 시절, 아마
도 해녀들의 척박했던 삶과 애환, 가족의 생계 등 저마다의 이유로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해녀들의 고통과,
못 배워서, 몰라서, 혹사 당했던 억울함까지 망라한 슬픔의 눈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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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섬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수탈의 현장이요, 억울하고도 뼈아픈 역사다.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도 바
다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주와 우도를 오가는 연락선은 뱃고동을 울리며 떠나고 그 자리에 에메랄드
빛 바다는 오늘도 수만 가지의 물보라를 그려 내면서 반짝인다. 참고로 제주도는 2005년 1월 세계평화의 섬으
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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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島海女抗日運動記念碑(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서 있는데, 어인 일인지 눈길을 주는 이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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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1~1932년 성산, 구좌와 해녀의 본 고장으로 꼽히는 우도 해녀들과 함께 당시 제주
해녀 연인원 1만7,000여 명이 모여 어용 해녀조합을 앞세운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궐기로, 당시 어민 항쟁으로
는 전국 최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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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일운동은 3개월 동안 지속되며 제주 동쪽에서 17,000여 명의 해녀들이 참여하였으며. 우도 해녀 300명
도 참여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제주 전역으로 투쟁이 번져나갔고 이후 해녀 애국지사들은 옥고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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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기념비 아래에 적힌 해녀들의 슬픈 노래가 嚴冬雪寒(엄동설안) 비바람에 흩날리는 빗줄기처럼 세차
게도 유랑자의 가슴에 匕首(비수)처럼 파고든다. 배움이 없어 몰라서 얼마나 서러웠을꼬.......,그럼에도 불구하
고 가슴에 타오르는 항일의 불꽃은 그 누구도 끌수가 없었나 보다.
대한민국 친일파 들이여 가슴에 세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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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우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등대를 보기위해 이동 수단인 삼륜 전기차 대여를 하기로 한다, 먼저
다가오는 전기차 대여업체에서 사장인 듯한 청년 하나가 다가오면서 전기차 필요하세요? 당연 전기차를 대여
받았다. 차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바퀴 3개가 달린 오토바이에다 뚜껑을 덮어놓은 '삼륜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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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우 찬찬히, 그리고 상세하게 차의 운전 요령을 알려 준다. 차의 브레이크와 가속기는 각각 왼쪽과 오른
쪽 핸들에 달려 있었다. 그러면서 가속기는 오토바이 탈 때처럼 양쪽으로 돌리지 마라, 필요하면 앞으로 돌려서
가속하라, 브레이크와 가속기를 같이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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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여행의 명물 삼륜 전기 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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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은 우도에서 착취당하는 것은 물론 18세 몸으로 한산도, 가옥도, 제주일대를 떠돌다가 마침내 돈 더 벌
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까지 가게 됐다. 노동만 착취당했다. 그 해녀 노래 중 우도를 그리워하는 노래도
있다.
“가냘픈 생명선은/저 바다에 달린 몸/
그리운 바다/
쓸쓸한 고국산천/
제주도는 사백리/
무궁화 피는 산천/
갈매기 우는 바다/
그리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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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가 세 개뿐이어서 차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속력을 내지 마라. 보험은 안 된다. 넘어지거나 사고
가 나면 상상보다 훨씬 큰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 어쨌든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자 그럼 천천히 한번 앞으
로 나아가 보세요.ㅋㅋ 지난번에 다 교육받은 그 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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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우도 등대를 저만큼 올려다보며 등대로 이어지는 해변 길을 따라 달린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바닷바
람에 나풀거리는 풀잎들의 춤사위를 보면서 우도봉 등대오르는 쇠머리오름길에서 손을 내밀면 잡힐듯한 제주
의 본섬을 바라 보면서 서성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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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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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은 홈페이지: https://www.visitjeju.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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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찾아가기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등용로 130-21
*지번): 성산읍 성산리 347-9 [성산포항 종합여객터미널]
*대표번호: 1800-5560
연락처(문의) :064) 782-8425, 5670, 5671
*우도가는 배 운항시간안내www.udoship.com/pages.php?p=3_1_1_1
*우도 잠수함: www.jejuseaworld.co.kr
*잠수함 연락처: 064-784-2333(대표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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