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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33> 창녕 남지 개비리길
부산일보 기사 입력일 : 2018-06-20
글 : 소설가 문성수
강(江)은 유장하다. 구불구불 흐르는 동안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시·군 간의 경계가 되는가 하면 문학 작품에서는 이를 이별의 공간으로 표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강이 꼭 분리의 의미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단절된 곳을 서로 이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적당한 곳에 나루를 만들었고 또 그곳을 서로 이어 강 위에 길을 내었다. 한때 국민 애창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의 가사처럼 군대 간 오빠와 이별한 장소도 강이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이 오는 곳도 역시 강의 나루였다.
신전리 영아지마을~용산리 창나루
강 주변 조망 2㎞ 남짓한 짧은 거리
창녕군청, 마분산 연결 6.4㎞ 조성
임진왜란·한국전쟁 역사 고스란히
야생화 쉼터·하늘 가린 대나무 숲
낭떠러지 아래 벼랑길 감은 강줄기
땅의 지층이 지구의 역사를 말한다면 강의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구성된다. 호국의 달인 6월을 맞아 창녕군 남지의 낙동강을 찾은 것은 1592년 임진왜란과 1950년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적 장소임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낙동강 변의 개비리길을 걸으며 이 아름다운 길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고자 하는 의도도 담고 있다.
■기억 속에 재구성되는 강의 역사
남지 개비리길은 신전리 영아지마을에서 용산리 창나루로 이어지는 강가의 벼랑길을 일컫는다. 신전리 주민들이 남지읍내로 왕래하기 위한 장터길이자 학생들의 통학로로 이용했다고 한다. '개비리'의 '개'는 '바다나 강의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란 의미의 고유어고 '비리'는 '벼랑 또는 낭떠러지'라는 이곳의 토속어라고 한다.
낙동강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이 길은 약 2㎞ 남짓의 짧은 거리다. 창녕군청은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려고 인근 마분산 산길과 연결해 6.4㎞의 명품 길을 완성했다. 이번에 길을 찾아 떠나는 도보 여행은 남지읍 용산리 창나루 주차장에서 출발해 창나루 전망대~마분산 정상(180m)~영아지 쉼터~영아지 전망대 ~영아지 마을~개비리길~야생화 쉼터~죽림 쉼터~옹달샘 쉼터~용산 양수장~창나루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여정을 따랐다.
주차장에서 둑길에 올라서면 개비리길 안내도가 상세한 길의 여정을 알려준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에 붙는다. 낮은 산등성이지만, 평지에서 시작되는 만큼 호흡이 가빠지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약 10분이면 창날전망대에 도착한다. '창날'은 '창나루'의 줄임말이고 주차장 인근 옛 강변 나루터에 조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망대는 2층 구조로 지어져 있다. 진주에서 시작해 의령군과 함안군을 경계 지으며 북으로 흐르던 남강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두물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예부터 창나루가 내륙 각지로 들어가는 수상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영산현>에 의하면 이곳의 낙동강을 특별히 기음강(岐音江)이라 기록하고 있다. '갈라진 강'이란 뜻일 것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들이 강을 가로지르는 수책을 설치해 왜군 병선의 북진을 막은 기음강 전투가 있었던 곳이고 왜군과 맞서 싸우던 조선군에게 첫 승전보를 안겨준 역사적 장소라고 동행자는 이야기한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길을 오른다. 이곳 소나무들은 기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 뿌리에서 세 줄기 또는 다섯 줄기로 갈라져 나와 가지를 조화롭게 펼친 소나무가 많다. 전망대에서 완만한 경사를 약 20여 분 오르내리다 보면 이내 마분산 정상 갈림길에 닿게 된다. 지척에 있는 정상(180m)으로 향한다. 펑퍼짐한 정상 봉우리에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분산은 원래 창진산으로 불리던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은 왜적과 맞서 싸우다 불리함을 느끼고 자신의 말에 벌통을 매달아 적진 깊숙이 몰아넣는 기지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어 벌에 쏘인 적들이 우왕좌왕한 틈을 타 기습공격을 가해 대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애석하게도 자신의 말이 적탄에 맞아 숨지자 그 공을 기리어 의병들의 무덤 뒤에 말 무덤(馬墳)을 만들어 주었다는 일화에서 마분산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무덤은 간 곳 없고 토성 흔적과 그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다시 내려와 산길을 걷는다. 곧 개두골 고개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는 도초산과 우슬봉 방향을 가리킨다. 여기서 영아지 쉼터 쪽으로 내려선다. 길은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이 섞여 있다.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이 겹치기도 한다. 약 300m를 내려가면 쉼터를 만나고 5분을 더 걸으면 영아지 전망대에 도착한다. 잘 꾸며진 누대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고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가 건너다보인다. 곽재우 장군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가 있는 곳이다. 임란 당시를 서로 회상하다 숲길로 들어선다.
송간세로를 구비 돌아 길은 길게 이어져 있다. 약 10분을 내려가면 곧 영아지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행정명인 영아지를 옛날엔 영산아까리라 불렀다고 한다. 고개 너머 창아지 마을이 있는데 여기도 창아까리라고 부른다. '아까리'는 '앞을 가리다→앞가리다→아까리'로 음운이 변천된 것 같은데 언덕이 앞을 가린 골짜기 마을이란 뜻으로 아지(阿支)리라고 한다.
여기서 북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지난 한국전쟁 시 낙동강 전투 최후 방어선이었던 그 유명한 박진나루터가 있다. 미군 제2사단과 제24사단이 인민군 정예부대인 제4사단과 2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해 낙동강을 건너 반격하게 됐고 결국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미 2사단은 현재 주한미군의 유일한 전투사단이다. 나루터는 제방 축조사업으로 그 흔적이 사라진 대신 박진교가 놓여 의령군과 창녕군을 직접 잇고 있다. 월하리 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박진전쟁기념관이 건립돼 당시 상황과 전쟁의 참상을 후대에 알리고 있다.
■명주실처럼 가늘게 이어지는 길
개비리길은 영아지마을로부터 시작한다. 강가 절벽에 이어진 잔도처럼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소로다. 길옆 낭떠러지 아래엔 시퍼런 강물이 벼랑을 휘감듯 흘러가고 아슬아슬하게 모퉁이를 돌아나가는 길은 명주실처럼 가늘게 이어진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격전을 벌인 전쟁의 참화가 공포와 두려움으로 상기되는데 강 건너 한적한 마을엔 오수가 내려앉아 현재의 평화로움을 고즈넉한 풍경으로 말해 주는 듯하다. 편치 않은 객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은 아무 말이 없다.
그 무심함에 마음을 빼앗겨 천천히 걷는 동안 야생화 쉼터를 지나 죽림 쉼터에 이른다.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하게 솟은 대나무 숲을 보며 누구는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을 이야기했고 또 누구는 서로 만나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호탕하게 지내는 바람에 세인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는 고려 말의 죽림고회를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입에서 '나모도 아닌 것이 플도 아닌 것이…'라고 시작되는 윤선도의 오우가가 나지막이 읊조려졌다. 속이 비어 더욱 곧은 대숲에 바람이 불자 죽림 안은 청아한 음악으로 가득 찬다. 눈을 감고 조용히 집중하면서 잠시라도 마음이 비워지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그러나 허언과 망언 속에 있던 속인으로선 죽림의 도인 흉내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강가의 벼랑길은 옹달샘 쉼터와 용산양수장을 구비 돌면서 강으로부터 떨어져 도보 들머리였던 주차장 쪽으로 이어진다. 약 2㎞의 거리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아픈 역사와 개비리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세 시간 동안의 도보여행이었다. 좀 더 걷고 싶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일행의 발길은 읍내 장터로 향했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지행 버스는 자주 있다. 오전 9시 20분, 10시 10분, 10시 50분, 11시 30분, 낮 12시 20분, 오후 1시 10분 등이고 남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은 오후 1시 25분, 2시 5분, 2시 45분, 3시 25분, 4시 5분, 4시 55분, 5시 35분, 6시 25분에 발차한다. 편도 1시간 정도 걸리며 요금은 5300원이다.
남지읍에서 낙동강을 건너 함안군 칠서면으로 연결되는 남지철교는 근대문화유산이다. 1931년 건립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로 돼 있다. 당시 최신 기술이 사용된 교량으로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형미를 지닌 교량 중 하나라고 한다. 6·25전쟁 때는 중앙 부분이 폭파됐다가 1953년 복구해 오늘에 이른다. 한번 둘러볼 만한 곳이다.
걷고 싶은 길 <10> 창녕 남지 개비리길
어지러운 현실 잠시 내려놓고 타박타박 역사 속으로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 국제신문 기사 입력일 : 2016-11-13
- 남지 용산~신전리 잇는 2.4㎞ 낙동강변 벼랑길
- 6·25전쟁때 최후 방어선
- 임란때 홍의장군 활약상, '누렁이 모정' 전설 간직
- 절벽따라 걸어가다 쉬어가는 대나무숲에 강 풍경까지 발길 잡아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 절벽을 따라 난 둘레길인 '남지개비리길'은 낙동강 조망이 빼어난 곳이다. 원래 인근 마을을 오가는 주민 외에는 찾는 이가 없는 한적한 오솔길이었지만, 등산객의 입소문에다 창녕군이 둘레길로 정비에 나서면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둘레길마다 사연을 담고 있지만 유독 남지개비리길은 토속적인 이름만큼이나 가슴 뭉클한 민담과 임진왜란, 6·25전쟁 등 상흔을 담은 이야기 길이다.
■누렁이가 발견한 낙동강 벼랑길
남지개비리길은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와 신전리 두 마을을 잇는 2.4㎞의 낙동강 변 벼랑길을 일컫는다. '개비리'는 강변 벼랑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창녕군은 남지개비리길을 품은 마분산의 산길을 연결해 6.4㎞의 순환코스로 만들었다. 노약자는 산길을 피해 강변길로만 왕복할 수 있다.
남지개비리길에 전해 오는 민담은 둘레길을 다 걷고 나서도 한참이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개비리길이 발견되지 않았던 먼 옛날 영아지(현재 신전리) 마을에 사는 황 씨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가 유독 약했고 다른 새끼들에게 밀려 어미 젖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인 용산리로 시집간 딸이 친정에 들렀다가 병약한 새끼를 키우겠다며 시댁으로 데려갔다.
며칠 후 딸은 친정에 있어야 할 누렁이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폭설이 내려 도무지 오갈 수 없는 날에도 매일같이 새끼를 찾아 젖을 먹이는 누렁이를 기이하게 여긴 주민들이 누렁이의 뒤를 쫓았다. 누렁이는 먼 길을 돌아야 하는 산길 대신 낙동강을 따라 난 절벽 길을 지름길로 이용했다. 절벽 길은 가파른 경사로 인해 눈이 쌓이지 않아 폭설에도 왕래가 가능했다. 이처럼 남지개비리길은 미물일지라도 새끼를 향한 애틋한 모정이 찾아낸 가슴 뭉클한 길이다.
■역사의 숨결 마분산과 낙동강 전투
용산리에서 출발하는 순환코스는 먼저 마분산 능선으로 향한다. 경사가 가팔라 거의 등산에 다름없을 정도다. 숨이 턱에 찰 즈음, 첫 쉼터인 창나루 전망대에 도착하면 나무 사이로 낙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분산(馬墳山)은 말이 묻혀 있는 '말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마분산 일대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왜병에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곳이다. 왜군과 수적으로 불리했던 곽 장군은 말꼬리에 벌통을 매달아 적진을 향해 달리게 했고 벌떼로 적진을 교란해 승리를 거뒀다. 그 와중에 말이 죽자 곽 장군은 말의 사체를 거두어 산에 묻고 장사를 지냈다. 그 이후부터 마분산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지개비리길의 절반을 차지하는 마분산 능선은 6·25전쟁 당시 최후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박진지구의 한 곳이기도 하다. 1950년 8월 6일부터 10월 4일까지 미군 제2사단과 제24사단은 북한군 제4사단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 인천상륙작전 등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영아지 주차장에서 6㎞ 정도 떨어진 곳에 당시 전투를 기념해 2004년 문을 연 박진전쟁기념관이 있다. 당시 악전고투했던 흔적이 그대로 담긴 전투 일지를 비롯해 탱크와 장갑차 등 32종의 무기와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걸음 멈추게 하는 죽림과 낙동강 비경
남지개비리길의 으뜸은 역시 낙동강 절벽을 따라 걸으며 보는 '낙동강 조망'과 쉬어가는 둘레길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대나무 숲'이다.
마분산을 내려와 반환점인 영아지주차장을 지나면 벼랑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 정도를 걸어가면 만나는 죽림 쉼터는 드넓은 낙동강 변에 울창한 대나무가 어우러진 명소다. 하늘을 찌를 듯 빼곡히 들어선 대나무 숲은 마치 딴 세상에 들어선 듯하다.
길 중간중간에는 낙동강 조망을 위한 정자와 장미 넝쿨로 만든 하트 모양의 사진촬영 장소, 대나무숲 군데군데에 평상 등이 설치돼 있다. 둘레길을 찾는 이를 위한 창녕군의 배려가 돋보인다.
죽림쉼터를 지나면 개비리길을 걷는 걸음은 조금씩 느려진다. 깎아지른 절벽과 추락사고를 막기 위해 설치된 밧줄 난간 때문만은 아니다. 절벽과 낙동강의 비경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길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마분산 산길을 제외하면 실제 개비리길은 2㎞ 남짓. 그래서인지 남지개비리길은 다른 둘레길에 비해 더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 길이다.
# 남지수변공원은
- 4대강 사업으로 둔치 조성
- 전국 최대 유채꽃단지 장관
남지개비리길이 짧아 아쉬웠다면 남지수변공원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남지수변공원 내 억새의 향연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남지수변공원은 4대강 사업에 따라 남지읍 남지리~용산리 낙동강 둔치 176만8000㎡에 조성됐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60%에 해당하는 드넓은 공원이다. 매년 4월 중순이 되면 전국에서 단일 단지로는 최대 규모인 40만 ㎡의 유채꽃이 만발, 낙동강유채축제와 함께 다양한 행사가 치러진다. 그래서인지 봄과 여름에 남지개비리길을 찾는 이가 유독 많다.
하지만 가을 정취를 즐기기에는 남지수변공원이 제격이다. 창녕군은 남지개비리길 출발점인 용산리주차장 앞 낙동강 둔치에 수만 ㎡의 억새밭을 조성했다. 억새와 수변공원, 낙동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도 건립했다. 전국에서 억새 명소로 손꼽히는 창녕 화왕산 억새를 낙동강 변으로 옮겨, 그 명성을 잇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남지철교, 아름다운 바위 절벽이 어우러진 경관을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된 옛 남지철교는 프랑스 에펠탑과 같은 공법으로 지어져 국내 근대 교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교량으로 손꼽힌다. 방송드라마 '영웅시대'의 촬영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창녕 [남지 개비리길&마분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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