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승도 깨달음을 손에 쥐어줄 수는 없는 법”
“그대들은 다만 술지게미나 먹는 자들일 뿐이다
이처럼 떠돌아서야 어느 때 ‘오늘’을 갖겠느냐…
다시 이 큰 나라에 선사가 없음을 알겠는가?”
두루마기자락 부여잡고 뒤따르는 아들 손 떨쳐버리는
비정한 듯 보이는 속이 무지 깊은 아버지의 솜씨!
“넌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다…무엇에도 의지 말라”
황벽 희운(黃檗希運,?~850) 선사는 당대(唐代) 스님으로, 남악-마조-백장의 계보를 이은 선사다. 복건성 복주의 황벽산에 출가한 후, 강서성 백장산의 회해(懷海)선사의 제자가 되어 법을 이었다.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인 임제 의현(臨濟義玄) 선사나 앞 칙에 등장한 목주선사가 그의 제자이다.
➲ 본칙 원문
擧 黃檗示衆云 汝等諸人盡是噇酒糟漢 恁麽行脚何處有今日 還知大唐國裏無禪師麽 時有僧出云 只如諸方匡徒領衆又作麽生 檗云 不道無禪只是無師
➲ 강설
뛰어난 선지식은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위대한 능력을 완전히 체득하여 인연 닿는 이들을 잘 지도한다. 무심히 내뱉는 한마디 말이나 대화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끔 하며, 적절한 행위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던 온갖 번뇌를 끊게 하여 대자유의 경지로 이끈다. 또한 모든 것을 초월해가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초월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수행자는 그런 선지식을 만났을 때 재빨리 귀신 소굴에서 벗어나야 대장부라고 할 수 있다.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황벽스님께서 대중에게 법문을 하셨다.
“그대들은 다만 술지게미나 먹는 자들일 뿐이다. 이처럼 떠돌아서야 어느 때 오늘을 갖겠느냐? 다시 이 큰 나라 안에 선사가 없음을 알겠는가?”
➲ 강설
과연 황벽선사시다. 스승 백장선사를 치고 제자인 임제를 세 번이나 두들겨 팬 솜씨가 어디 가랴. 관행에 따라 이곳저곳 스승을 찾아 깨달음의 인연을 구하는 후학들에게 가차 없이 내갈겼다.
“뭐 진수성찬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선들이 마실만한 귀한 술도 아닌 술지게미나 먹는 놈들 같으니라고. 그래가지고서야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말이야. 그만큼 싸돌아 다녔으면 자네들 구해줄 선사가 없다는 것쯤은 알 것 아닌가?”
참 통렬하다. 정신이 번쩍 들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공부하는 이들이 골수에 새겨야 할 말이다.
➲ 본칙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했다.
“그렇지만 도처에서 후학들을 바로잡고 대중을 받아들여 통솔하는 그런 이들은 다시 어떻습니까?”
황벽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禪)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승이 없다는 것이다.”
➲ 강설
과연 공부하는 사람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천하의 황벽선사라고 해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황벽선사는 천하에 선사가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황벽 자신을 비롯해 도처에서 헌신적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고 대중들을 이끌고 있는 수많은 선지식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그러나 황벽스님이 깨우쳐주시려 했던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뻔히 알면서도 늘 잊어버리는 것을 일깨워주시려고 했던 것이다.
“선(禪)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스승이라도 깨달음을 손에 쥐어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건 두루마기자락을 부여잡고 등 뒤에서 따르는 아들의 손을 떨쳐버리는, 비정한 듯이 보이는 속이 무지 깊은 아버지의 솜씨다.
“넌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그러니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말라!”
정수사 대웅보전 어간문. 이 문을 열면 진짜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까?
➲ 송 원문
凜凜孤風不自誇 端居寰海定龍蛇
大中天子曾輕觸 三度親遭弄爪牙
➲ 송
늠름하고 고고한 기풍으로
자랑하지 않으며
단정히 천하에 앉아서
용과 뱀을 지도하도다.
➲ 강설
얼핏 황벽선사가 자기 자랑처럼 대중을 나무랐다고 오해하지 말지라. 황벽선사는 본디 거침없고 망설이지 않는 노인네다. 설두선사는 이 황벽노인네가 얼마나 자비롭고 거침없는 선지식인지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은 모양이다. 앞의 본칙을 보면 누구라도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황벽선사는 용이라고 가까이하고 뱀이라고 버려두는 노인이 아니다.
황벽스님이 만행을 할 때 어떤 스님과 길벗이 되었다. 이윽고 개울에 이르게 되었는데 비로 불어난 물살이 매우 거칠었다. 황벽스님이 도저히 건널 수 없음을 알고 멈췄는데, 동행하던 스님은 거침없이 물위를 걸어가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황벽스님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참 고약한 놈이로다. 내 진즉 알았더라면 네놈의 다리를 분질러 놓았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 스님이 감탄하며 말했다. “참으로 대승의 법기(法器)이시니 저로서는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스승 백장선사를 모시고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오는 황벽을 본 백장선사가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저기 대웅봉 아래에서 버섯을 따고 오는 길입니다.”
“호랑이를 보지 못했는가?”
황벽이 호랑이 흉내를 내니 백장선사가 도끼를 들고 찍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황벽이 잽싸게 한 대 갈겼다. 백장선사는 껄껄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법문을 위해 법상에 오른 백장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대웅봉 아래에 호랑이가 있으니, 그대들은 조심하라. 늙은 나도 오늘 한 번 물렸다.”
➲ 송
대중천자가 일찍이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세 번 손톱과 어금니에
당하고 말았다네.
➲ 강설
대중천자(大中天子)는 당(唐) 선종(宣宗) 황제다. 형인 목종(穆宗)이 재위시에 아침 조례를 파하자 빈 황제의 자리에 어린 대중이 올라가 신하들을 대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대신들은 모두 왕자가 돌았다고 수군거리며 황제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그러나 황제는 오히려 기뻐하며 “내 아우는 우리 집안의 뛰어난 후계자니라”하며 칭찬하였다.
목종이 타계하고 그의 아들인 무종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대중(大中)이 옛날 황제의 자리에 올라가 장난을 했던 것을 핑계로 때려죽어서 후원에 던져 버렸다. 죽은 줄 알았던 대중(大中)은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향엄 지한선사가 머물던 절로 피신하여 사미계를 받은 상태로 수행을 하였다.
그 후 염관선사가 주석하던 절에서 서기(書記)를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황벽선사가 정성스레 예배를 하는데 대중이 물었다.
“불법승(佛法僧) 어디에도 구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엇을 구하여 예배하는 것입니까?”
“불법승 어디에도 구하지 않기에 이처럼 예배하는 것이니라.”
“예배를 해서 무얼 하겠다는 겁니까?”
이 말을 듣자마자 황벽선사가 대중의 뺨을 후려쳤다.
“너무 거칠지 않습니까?”
“여기 무엇이 있다고 거칠다고 하는 것인가?”
그러면서 황벽선사는 또 다시 뺨을 후려쳤다.
뒷날 황제가 된 대중은 그때의 기억으로 황벽선사를 ‘행동이 거친 스님’이라는 뜻의 추행사문(麤行沙門)이라는 호를 내렸다. 황벽선사를 생불(生佛)처럼 모시던 상국(相國, 정승) 배휴가 황제에게 간청해서 다시 호를 단제선사(斷際禪師)라고 내렸다.
임제선사는 “불법의 핵심이 무엇입니까?”하고 황벽선사께 세 차례 물었다가 세 번 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는 뒷날 깨달음에 이르러 임제종의 종조(宗祖)가 되었고, 대중은 세 번 말과 손으로 당한 뒤 이윽고 당(唐)의 선종(宣宗)황제가 되었다. 참 맞은 값을 제대로 한 것이지.
직접 당해봐야만 한다. 암! 그렇고말고. 제대로 당해보지 않으면 꼭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를 하거나 앵무새처럼 영험 없는 말만 떠드는 법이다.
추행사문(麤行沙門)이라. ‘거친 스님’이라는 호칭에 선종황제의 감사의 뜻이 절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