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2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새벽 아직도 어두울 때에 무덤에 찾아가서 무덤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고 베드로와 사랑받는 제자에게 달려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에 옮겨 놓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신을 아무도 장사지내지 않은 새 무덤에 서둘러 장사를 지냈다. 그 날은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는 안식일 바로 전날 준비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더 좋은 곳에 모시지 못하고 서둘러 그 무덤에 장사를 지낸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마리아가 빈 무덤을 발견하고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1절은 그러나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가 이른 새벽 아직도 어두울 때 무덤에 갔다는 말로 시작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기에 안식일이 지나고 나서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간 것이다. “일찍이 아직도 어두울 때에” 라는 말은 아직도 빛이 없이 캄캄한 새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밝아오는 새벽에 간 것이 아니라 아직도 캄캄한 시각에 간 것이다.
왜 그렇게 캄캄한 새벽에 갔을까? 더구나 여자가 인적이 없는 무덤을 캄캄한 새벽에 갔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마리아가 밤새 잠을 자지도 않고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는 뜻이다. 날이 밝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캄캄한 새벽에 무덤을 향해 간 것이다.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남녀간의 사랑 때문이 아니다. 누가복음 8:2절에서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 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말 쓰레기만도 못하게 취급을 당하던 여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료 받았던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했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캄캄한 새벽에 제일 먼저 달려가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으려 했던 것이다.
무덤에 가 보니 무덤 문을 막았던 돌이 완전히 옮겨져 있었다. 원어에서 2절은 “그러므로 그녀는 달린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를 향해서 간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돌이 완전히 굴려진 것을 보고 달려간 것이다. 원어에서는 “달린다 그리고 간다 그리고 말한다” 이렇게 따로 나누어서 현재형으로 말하고 있다. 아나운서가 운동경기를 중계 방송하듯 똑똑 끊어치며 그 긴박한 순간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마리아 선수 정신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네 제자들에게 가고 있군요!” 라고 중계방송하듯 전하고 있다.
이어서 “그녀는 그들에게 말한다” 는 말 역시 현재형이다. 이것도 마치 “마리아 선수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처럼 중계방송하듯 전하는 말이다. 마리아는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갔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는 요한 자신을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이 제자들의 지도자였기에 그들에게 달려간 것이다.
왜 하필 두 사람인가? 당시 여자의 증언은 인정되지 못했다. 여자 한명 남자 한명도 역시 증인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 증인 두 명을 추가한 것이다. 마리아가 두 사람에게 말한 내용은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옮겼다. 그리고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를 어디에 두었는지” 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막달라 마리아 혼자 달려가서 말하면서 ‘우리’ 라고 한 점이다. 따라서 여자 혼자서 그 새벽에 간 것이 아니고 다른 복음서가 말하는 것처럼 다른 여자들도 함께 간 것이다. 그렇지만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두 명의 남자 증인들을 부르러 간 것이다.
이 부분의 주인공은 막달라 사람 마리아이다. 시작하는 1절에서 캄캄한 새벽에 무덤으로 간 사람도 마리아였고 가서 빈 무덤을 제일 먼저 보고 제자들에게 가서 증거한 사람도 마리아였다. 요한은 베드로와 요한 자신보다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부활의 증거를 보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리아가 으뜸가는 제자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과 베드로는 도망만 갔고 무덤에 갈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이 여인들이 갔다는 것이다. 요한 스스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이 여인들이 으뜸가는 제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마리아가 그렇게 될 수 있었나? 그 내용이 1-2절과 17-18절의 증언 사이에 끼워져 있다. 마리아는 당시 가장 천대 받던 여자였다. 그것도 정상인 여자도 아니고 일곱 귀신들린 여자였다. 예수님은 이런 마리아에게 다가가 고쳐 주셨다. 그 은혜에 감사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 감사를 잊지 않고 온 맘 다해 갚으려 했기 때문에 빈 무덤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다.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두 제자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이내 떠나갔지만 마리아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남아 울면서 간절히 예수님께 그 감사를 갚고 싶어했다. 이처럼 마리아는 예수님의 으뜸가는 두 제자들보다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았기에 더 많이 감사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첫번째 증인이 되는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