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개역개정판)
고린도후서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개역개정판)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를 발송하는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좋은 일을 기대했을까?
자주 그렇듯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역시나...
고린도교회에서 전해오던 소식은
기대하던 소식이 아니었다.
고린도교회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네요...
바울은 주후 53-57년경의 전도 여행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지만
또 뭐가 문제였는제 장기 체류도, 문제 해결도 못하고 에베소로 귀환했다고 배웠다.
그리고 바울이 썼던 그 ‘눈물의 편지’
지금은 남아있지도 않은 그 편지는
일부의 회개와
일부의 분노를 자아내었다고 한다.
당신 사도 맞아??
(이런 태도가 우리한테는 없나?)
참... 사역의 길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고난 그 자체...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그러니까 내가 무슨 사망선고를 받은 거 아닌가..(고후 1:9)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든다면
당장이라도 사역을 그만두든지
다른 방향, 다른 스타일로 갈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10절에서
이 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으니
앞으로도 건지실 것이다는
막연한 희망이 아닌
주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난과 환난 앞에서 담대히 서는 모습이다.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닐까?
건강하고
돈도 좀 있고
외모도 괜찮고
무엇보다
환난이 없다면...
이거야 말로 복이지.
주님, 제발 다른 복 말고
이런 복을 주~~~시옵소서!
솔직히 그런 기도조차 자주 하지 않았지만
자주 한다고 그런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건
잠언 묵상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터...
그 유명한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 세 가지 특징을 말한다.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
2)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
3)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말씀 묵상이 먼저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 싶지만
악을 싫어하는 것이 먼저 나왔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아멘...
그런데...
이미 악한 꾀를 따라 왔지 않은가?
그것도 잦은 빈도로
잠언 1장은 악한 자가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고 했고
시편 1편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지나간 실패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넘어지고, 실패하기 마련이다.
지은 죄가 별로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있을 터...
그러나
그 양반들도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사도 바울 같이, 무슨 사형선고 받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고난이 찾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실패한 그 자리에서 슬퍼하고 애통하며 회개하고
내가 고난당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서 다른 고난 받은 자들을 위로하는 것 (고후 1:6)
그런 사람들에게
복 있는 사람이 받는 복은
말씀으로,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찾아온다.
그 애통의 자리
그 고난의 자리에
말씀을 묵상함이 즐거움과 위로로 찾아온다.
의무로 말씀을 대하면 괴로움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슬픔과 절망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말씀은 기쁨과 위로를 선물한다.
악한 자의 꾀임은
대체로 세상에서의 경험에 근거하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약속한다.
인생 뭐 있냐?
즐겁고 편하게 살아.
절반도, 1/3도 안되는 경험적 진실에 근거한 개똥철학은
나의 삶을 결국은 시궁창으로 인도한 다음
영혼을 사탄에게 팔아넘기라고 종용하기까지 한다.
뿌리도 없고
쭉정이처럼 가벼워서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악인들에게는
말씀을 즐거워함이 없다.
말씀을 묵상함도 당연히 없다.
말씀을 묵상함이 없으니
삶을 올바르게 산다고 살아도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고
삶을 센스있게 산다고 살아도(?) 결국 사기꾼 비슷한 삶이 되고 마는 것이다.
손자병법적 모략으로 살아서 승리를 추구하는 삶이 멋있어 보이는지 어쩐지 몰라도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삶이 복된 경우는 없다.
그런 승리를 간혹 거두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도 바울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은 불가능하다.
2026년이 절반이나 지났는데
아직 절반이나 남았으니 감사하다.
20세기를 살아온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2026이라는 숫자가 여전히 낯설다
MZ는 좀 다르겠지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환난과 불확실성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10)는 말씀과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악한 자의 꾀를 따르지 말라(잠 1:10)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기를
그래서 남들도 위로하면서 살길(고후 1:6)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고후 1:11)
고후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판)
첫댓글 https://youtu.be/h18mpBWSVmg?si=SxBzi22QrJLsZxj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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