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바구니 그리고 시골 목사의 책무
동장군이 기지개를 펴려고 준비중인 양구의 날씨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무렵이면 유난히 궂긴 소식들이 날아들곤 하지요.
두어 달 전 마을의 어르신 한분이 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에 그분을 알던 분들이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80대 중반의 연세에 비해 그동안은 여느 어르신들과 달리 관절이나 외적으로 약해 보이지 않았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던 점은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으며 길어야 수개월 남았다는 대학병원 측의 소견입니다.
소식을 접할 무렵, 환자 가족분들이 마을 구성원들이 알기를 꺼려한다는 말에 아는 척을 할 수도, 그렇다고 모른척 하기도 그런 애매모호한 입장이었습니다.
교인이 아닌 비신자분이기에 입원하신 병원으로 병 문안을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만 급할 뿐 들려오는 소식은 수도권의 자제분 댁에서 머물고 있다는 근황뿐이었습니다.
친지 가운데 신자인 분과 이웃에 사는 교우분을 통해서 찾아뵙고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의사타진을 했지만, 마음만으로 감사하다는 정중한 고사(固辭)만 들었습니다.
간간히 그래도 잘 견디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13일(금) 아침 교우 분으로부터 부고를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만감이 교차했던 점은, 이분은 자택에서 마을회관을 가려면 늘 교회 앞을 지나다니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이분이 제게는 특별했던 이유는 약 사년 전 단오 무렵의 어느 날 회관을 가시다가 교회를 들리셨습니다.
“어쩐일이시냐” 했더니 하지 감자를 많이 심었는데 판로가 열리지 않아서 그러니
목사님이 농가들의 농산물을 잘 팔아준다 하니 우리 하지 감자를 좀 팔아 주라“는 부탁이셨습니다.
일단은 알아보겠노라 한 후, 이때부터 감자 시세를 파악하고 인터넷에 양구 감자를 구입해 주시기를 호소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3년 정도 동안, 매년 35-40여 박스의 감자를 전국의 그리스도인분들이 팔아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지속하다 보면 사역이 아닌 장사로 오해받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농협 마트 식품 담당자분에게 연결해 드리며 직거래를 하도록 했었습니다.
그렇게 몇 해를 감자를 팔아 드렸더니 두어 번 정도 겨울에 예배를 나오셔서 감사헌금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분의 부고를 듣고서 금요일 저녁 아내와 함께 조문을 갔었습니다.
미리 교회에서 조화바구니를 보냈기에 굳이 조문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런저런 연유로 마지막 배웅을 하는 것이 도리지 않나 싶었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하려고 테이블에 앉았더니, 고인의 외동딸과 자부되는 분이 인사를 하시며 뜻밖의 말씀을 건네시는 것입니다.
“도촌교회 목사님이시라면서요. 저희 엄마에게 잘 해 주셨나 봐요.
엄마가 혼수상태의 비몽사몽간에도 목사님이야기를 하셨어요.
도촌교회 목사님이 기도해 주러 온다고 했다며 너무 감사합니다.“ 하시는 것입니다.
유족분 들로부터 그러한 말씀을 들으며 농촌교회 목사의 무게감과 책무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역교회 목회자의 존재 이유와 직무를 논하자면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런데 관계중심이 우선인 시골 마을의 특성상 복음전도는 외침만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는데 애로점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은 이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삶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내기란 결코 보통 실력으로는 쉽지 않다는데 우리의 아픔이 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마을에 자리한 교회 목사를 언급해 주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한편으로는 그간의 몸부림을 인정받는 느낌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색적 복음 전파에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풍겨야 하는 목회자의 책무와, 본연의 소명을 감당하는 일을 위하여 복음의 복에 동참하는 자로(고후3:23)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정진(精進)하려 합니다.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9:22-23)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