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2차대전에서 가장 치열했던건 독일, 소련이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웠던 동부전선입니다. 소련은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국력을 총동원했고 독일 또한 모든 최정예부대는 모두 동부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의 언론매체들때문에 서부전선이 2차대전의 하이라이트로, 매우 치열하고 중요했던것처럼 인식되는데 사실은 서부전선은 동부전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통계로 보는 동부 전선
1941년 동부 전선의 총 길이: 2,768킬로미터
1941년 동부 전선의 주 전선 길이: 1,320킬로미터
1942년 동부 전선의 총 길이: 3,058킬로미터
1941년 독일군의 동부 전선 목표 종심: 1,690킬로미터
실제로 독일군이 1941년에서 돌파한 최대 종심: 1,223킬로미터
1942년 독일군이 돌파한 최대 종심: 1,730킬로미터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분들을 위해 부연하면, 1940년 서부 전역 당시의 총 전선 길이와 종심은 각각 약 800킬로미터, 약 480킬로미터입니다. 동부 전선의 총 길이는 서부 전선의 약 4배, 총 종심은 약 3.5배입니다.
1941년 6월
독일군: 3,117,000명
그외 추축군: 650,000명
*서부전선의 독일군: 900,000명
소련군: 2,680,000명
*소련군 예비: 2,820,000명
1942년 6월
독일군: 2,690,000명
그외 추축군: 1,030,000명
*여타 전선의 독일군: 672,000명
소련군: 6,724,000명
1943년 7월
독일군: 3,483,000명
그외 추축군: 450,000명
*여타 전선의 독일군: 2,045,500명
소련군: 6,724,000명
1944년 6월
독일군: 2,520,000명
그외 추축군: 850,000명
*여타 전선의 독일군: 1,544,500명
소련군: 6,425,000명
1945년 1월
독일군: 2,230,000명
그외 추축군: 100,000명
*여타 전선의 독일군: 1,486,700명
소련군: 6,532,000명
1945년 4월
독일군: 1,960,000명
소련군: 6,410,000명
베를린 공방전(1945년 4월 16일~5월 8일)때
독일군: 병력70만, 전차 1500대, 전투기 2000대, 야포 9000문
소련군: 병력 250만,전차 6250대,전투기 7500대, 야포 40000문
-소련군이 베를린을 포위했을때 연합군은 서쪽에서 빠르게 진격하였으나 베를린 변두리에서 30마일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당시 독일군와 소련군은 항복하면 포로로 잡지 않고 사살하였기에 독일군은 죽기살기로 저항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서부전선에서 날린 연합군의 포탄수만큼의 포탄을 베를린에 퍼부은 후 베를린을 단독 공격한다. 그러면 왜 스탈린은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작전을 전개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돌격으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며 점령하였을까?
스탈린은 베를린에 위치한 카이저 윌헬름
연구소(Kaiser Wilhelm Institute)에서 진행한 핵 연구프로그램과 핵물질을 손에 넣는다는 것이 첫번째 목표고
두번째로는 직렬발전기(cascading generator)를 탈취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많은분들이 1943~1944 사이에 증발한 엄청난 숫자의 독일.소련군에 대해 궁금하실것 같습니다. 바로 쿠르스크전투(1943년 7월 4일~1943년 8월 23일)때문입니다.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은 소련군이 방어태세로 돌입할것을 예상하고 5월 3일 총 공격을 가할 생각이었으나 히틀러의 반대와 북아프리카전선의 패배로 7월에야 공격을 개시할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소련군은 첩보를 통해 독일군이 공격해올것을 미리 알고 엄청난 대전차지뢰들을 매설하고 참호를 팠습니다. 여기에 독일군이 그냥 진격한겁니다;; 만슈타인의 말대로 5월 3일 공격했으면 소련군은 그냥 당했을지도 모르죠. 당시 소련군은 5월에 공격해야 할 독일군이 공격하지 않자 7월까지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독일공군의 열세를 짚고 넘어갈 생각입니다. 독소간의 공군력 차이의 결정적 원인이 바로 1941년 6~10월 사이에 있었던 독일과 영국간의 공중전에서 독일이 엄청난 공군력의 소모했기때문입니다. 그 전투에서 영국은 전투기 900대를 잃었으나 독일은 무려 1700대를 손실했습니다. 그 이후로 독일본토가 심심찮게 영국전투기들에 의해 공습당하고, 수많은 독일장교들이 홀아비가 되었죠;;
쿠르스크전투: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으로 100만명이 사망했다.
참여한 병력수
독일:78만명, 전차2900대, 전투기2100대, 포9900문,
소련군:191만명, 전차5100대, 전투기2800대, 포25000문,
-역시 물량과 자원앞에선 장사없습니다. 만약 한국과 중국이 1대1로 붙으면 종국엔 저렇게 될거 같네요. 갑자기 만슈타인의 이 말이 떠오릅니다. 제 사견으론 우리 가카는 아무리봐도 3번유형같습니다. 4종류의 장교가 있다.
첫째, 게으르고 멍청한 장교(將校)다. 그들은 혼자 놔두면 아무런 해(害)도 끼치지 않는다.
둘째, 열심히 일하는 지혜(智慧)로운 장교다. 그들은 모든 세세한 사항까지 적절하게 처리되게 하는 뛰어난 장교다.
셋째, 열심히 일하면서 멍청한 장교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골칫거리다. 이런 장교는 당장 잘라야 한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도움이안되는 일만 골라서 한다.
마지막으로, 똑똑하고 게으른 친구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장군(將軍)으로 승진할 자격이 있다.
자타공인 2차대전 최고의 전략가 만슈타인. 그는 동부전선에서 수많은 승리와 쓰디쓴 패배를 모두 경험했다. 또한 전쟁터에서 아끼던 아들도 잃었다. 1942년 어느날, 그는 큰 아들 게로를 만났다. 그리고 몇일 뒤 불행하게도 아들이 동부전선에서 사망했다. 허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스탈린그라드에 갇힌 제6군을 구출하라는 히틀러의 급명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만슈타인의 지도위에는 3개의 전선이 있었다. 동부전선, 서부전선, 그리고 히틀러와의 전선이었다. 그는 작전을 계획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릴때마다 히틀러의 반응이 어떨까 걱정부터 했다. 사사건건 히틀러와 의견충돌을 빚었고 하도 답답한 나머지 이런말까지 했다고 한다. "소련군과 싸우는것 보다 히틀러와 싸우는게 훨씬 더 어렵다."
만슈타인은 수도없이 히틀러에게 자율재량권을 요구했다. "총통 각하, 저에게 동부전선을 맡겨주시면 제 아들이 묻혀있는 땅을 지키기 위해 제가 아는 모든 전략과 전술을 펼치겠습니다." 그러나 참견질을 참지 못하는 히틀러가 들어줄리 만무했다. 만슈타인은 드넓은 공간위에서 펼쳐지는 기동전을 좋아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전략적 후퇴도 필수적이었으나 위치사수를 강력히 요구하는 히틀러와 사사건건 의견이 부딛쳤고 만슈타인은 그때마다 문을 쾅 닫으며 "에라이 멍청한 놈"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종전 후, 그는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소련은 만슈타인을 넘겨달라며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그는 결국 뉘른베르크 재판에 서게 된다. 영국 군사법정은 1949년에 금고형 18년형을 선고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4년후 석방되었다.만년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아들 게로의 기억에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출처: http://panzerkatz.egloos.com/2731997 및 기타 사이트.
배경음악은 kenji kawai-log in입니다. log off도 들어보시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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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로그 오프는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의 아바론이란 실사 영화 ost였죠.
불곰국의 위력이 나오는거죠... 그냥 무식하게 돌격..... 스탈린그라드는 사수하라는 스탈린의 명령에 총도 못받고 돌맹이던지며 죽어간 수십만명의 군인들.. 독일군놈들 참 전쟁의 천재들이 많았던거는 확실하나 천만 다행으로 히틀러의 똥고집때문에 무너지는 결과가 나왔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롬멜 평전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군요. 아는분들한테 독일군내에서 손가락중에서도 으뜸에 들어가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히틀러를 왜 죽일려고 했는지의 고찰이 묻어나옵니다.
전 롬멜은 신격화되는 느낌입니다. 롬멜 관련된 책은 많이 봤고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가 전쟁에서 이룬 성과에 비해 과도하게 추앙받는 느낌입니다. 전 롬멜이 그냥 초반에 반짝한 느낌인데요.
스탈린은 처음엔 장군들을 불신해었으나 점점 장군들의 말을 존중하고 이해했으나(그 교훈을 얻기까지 수천,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긴했지만요),히틀러는 점점 더 장군들을 불신하게되죠. 공통적으로 장군들을 불신할때 자주 하는 소리가 한치도 물러서지 말고,다 죽더라도 현위치를 고수하라였구요.
히틀러 자서전(엄청 두껍고 지루한면도 있지만) 보면 소련하고 전쟁을 시작한 후 3개월 지나자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겠다' 이미 패배를 직감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소련이 물호랑이가 아니였고, 독일이란 나라 자체가 영국, 러시아,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전쟁을 계속 이끌어가기에는 국력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새로운 전술로 프랑스를 이긴것에 너무 의미를 두다보니 강해보이지만 전쟁을 계속이어가기엔 능력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유럽을 다 지배한것도 아니고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전쟁의 결과는 충분히 변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더해서, 진짜 저 당시 독일의 저 힘은 진짜 상상 이상인거 같아요 -_-; 일개 국가가
제가 좋아하는 피터린치시네요^^.
어차피 미국이 가진 저그에 가까운 생산력에 밀리고 말았겠지만 뜬금없는 소련 공격이 아니었으면 나치가 조금은 더 전쟁을 끌고 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뭐 이탈리아 뻘짓이야 대강 계산에 들어간 거니까 세금 같은거라고 쳐도...
히틀러가 미국이랑 휴전하고 소련을 견제했다면 혹은 그 반대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속의 급속하게 확장하고 오래못가는 제국이나 국가를 보면 정복과정이나 전쟁이 뜬금포더군요 즉 그렇게 지배할만큼의 강국은 아니였는데 천운과 시기 소수인물의 영도력에 의한 경우가 많고 그 경우는 금세 몰락하다군요 전 독일도 그렇게 봅니다 프랑스공략이 너무 쉽게 되었죠 그게 독일의 실력이기보다는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