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해서 1966 년 11월 어느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주 산골을 벗어나
넓은 서울에 올라가서 무언가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하여 나의 삶을 개척
하겠다고 ,큰 야망을 품고 허름한 잠바에 책몇권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주역
에서 넓은 들판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의 초겨울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은 ?
초라한 시골의 촌놈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가슴을 당당히 펼치고 머리에는 서울
에 올라가 나의 꿈을 이루워 보겠다고 꿈 많은 젊은 청년 이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산골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살고 나주의 촌놈이지만 가슴에 큰
야망을 품고 나의 목표를 달성 해 보고져 하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내 평생 돈이
없어서 그때 그시절에 호남선의 무임승차로 일명 도둑차를 타고 상경하였지
타고난 성품으로 보면 도둑차를 타고 갈 사람이 아니다.
내 살아온 인생에 이렇게 도둑질을 한 짓을 두고 평생 갚지를 못하여 두고두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지금이라도 갚으라면 감사하다고 갚 겠다. 자랑이 아니라
평생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본 사람도 아니고 , 공직에서 어느 돈뭉치에 눈이
어두어 상대하고 결탁하여 놔물도 받은 적도 없다 . 수고했다고 점심이나 먹으라고
하여 조그마한 점심값은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기차 승차표를 끊지 않고 무임으로 승차한 행위는 상당히 큰 도둑이다.
그때의 기차의 여객 전무의 큰 모자에 누런태를 두르고 복장을 한 모습은 일본 경찰과
같은 모습이다 그 뒤에도 이 여객전만 보아도 깜짝깜짝 놀랜다.
비록 돈이 없어 무상으로 도둑차를 타고 간 행위는 나쁘지만 서울에 올라가 천만 서울
시민을 위하여 정말 봉사하는 마음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열심히 근무하였다고 자부를 하였다고 생각을 한다 . 비록 박봉이지만 ......
죄송하지만 그때 무임승차 비용은 나중에 열심히 서울시민에게 봉사하였으니 서로
상쇄하여 잘 보아 주시기를 철도청장에게 앙망하나이다
첫댓글 선배님
2004년 상반기 정년 퇴임식 분들 중에
인물이 젤 훤~~~~하셔요
ㅎㅎ
아이구 온유님 11월의 마지막 달랑달랑한 12월달의 한장이
초겨울에 떨어질려고하는 낙옆처럼 11월의 마지막의날...
거의 60 여년전의 일어난 사건입니다
정년퇴임식의 안경은 쓰고 중앙에 서 있었고 그옆에 부구청장이었습니다
다 지나간 한때의 일들입니다
옛날에는 무임승차를 많이들 했었지요.
기차를 타고가다가 승차권 조사도 역무원들이 했었고 ... 지나간 세월의 한 페이지 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나주역에서 승차를 하여 익산역에 가기전에 승차표 검사를 하는데
피하여 용산역에서는 철망을 뚫고 유유히 나왔습니다
다 지나간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존경 합니다.
감사합니다
뭐 존경이야 .....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에구 ᆢ 그 기차표 값은 ᆢ
봉사하시면서 다 갚았습니다
제생각이지만 ᆢ그리고 열심히
사셨잖아요 ᆢ
그때에는 상당히 큰 죄 질입니다
앞만보고 살아온 인생 , 그래도 별볼일 없네요
이번 큰 행사에 수고가 아주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무임승차 몇배로
지불하셨네요.
참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오셨으니
노후에 건강부자
선배님 늘 행복하세요.
아이구 청담골님 감사합니다
그때 그 무임ㅅ승차한 행위는 나의 뇌리에 항상 남아있슴니다
좋게 봐주시어 감사합니다
아이고 그깐 기차삯이 몇푼이나
한다꼬 뭔 죄가 되것어요 어차피
굴러가는 바퀴 젊은이 한 사람 더
탔다고 안굴러가나요 괜찮아요
아무상관 없으니 너무 오랜세월
가슴에 죄의식 갖고 있지말고 탈
탈 털어버리세요
차마두 화백님 감사합니다
아니 그때의 경제상황은 어렵습니다
제호주머니에 100원 달랑 가지고 상경한거 같습니다
세월은 지났어도 약간의 죄의식은 느낌니다
동구리님
착하게 열심히 사셨고 사회에 봉사 많이 하셨다고
나라님도 버얼서 용서 하셨답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아이구 정겨운 댓글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때 무임승차의 항상 나의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약간의 죄의식 ....
동구리님~
그만큼 공직으로 봉사 하셨으니
기차삯은 안 갚으셔도 되겠네요
고생 많이 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늘 파이팅입니다
아이구 시인김정래님 감사합니다
박봉에 고생좀 했지요 그래도 노후에 년금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임승차
피끓는 나이이니 가능했겠지요.
그 무임승차로 인해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시었고
공직에서 주민을 위한 봉사로 갈음하신걸로
여기시면 마음이
편안해 지실겁니다.
선배님 글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추위에 건강 잘
챙기시고
건필하십시오.
아이구 반갑습니다
날씨가 쌀쌀한 겨울입니다 건강에 조심하시고.....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저의 적성에 아주 맞습니다
그래서 정년까지 잘간거 같습니다
추위에 잘지내시기 바람니다
그때 무임승차로 서울에 올라오셔서 평생 공직으로 봉사하셨으니 충분히 갚고도 남으셨습니다. 저도 어린나이에 세무공무원 1년6개월하다가 대학에 가고 싶어 사표쓰고 다른길을 걸었지만 그냥 공직에 있을걸 하고 가끔 후회됩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정겨운 댓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한 사연이 있었군요
나쁜마음 아니고 청운의뜻을 품고
서울상경하셨고 또 공직봉사 오래 하셨으니 용서가 된듯 싶네요
아니 그런가요?
과분한 댓글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때는 무임승차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제친척도 무임승차 하는 바람에 아들과 손잡고 뛰어 내렸는데
언덕아래 굴러 떨어진 아들 이름을 울면서 부르는데 엄마 나 여기 있어 하며 나타나길래 둘이 얼싸안고 울었데요
지금요 한지역의 재벌이 되어 지역 발전에 많이 힘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답니다
그동안 동구리님도 나라일 열심히 하시고 또한 봉사 하셨으니 다 갚고도 남지요
건강 하셔요
아이구 함빡미소님
그렇게 생각하여주시니 고마을뿐입니다
그때 그시절 오죽했으면 무임승차를 하였을까요?
그래도 가난을 떨치고 늙으막에 잘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정겨운댓글에 감사를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