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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문화
국제 BTS 학술대회, 앎과 우정을 나누는 축제
윤지영
1. 질문을 바꾸는 청년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정에 들어섰다. 국제 BTS 학술대회를 알리는 보랏빛 배너가 교정 곳곳에 걸려 있었다. 팬데믹 때문에 대면 학술대회도 오랜만이고, 국문학 전공자라 국제 학술대회는 더더욱 생소하다. 게다가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팬덤 아미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회라니.
런던과 캘리포니아에 이어 올해로 3회를 맞는 국제 BTS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로는 논문을 쓸 실력도, 발표할 자신도 없어 청중석에 앉아 있어야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보고 싶었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었다. 방탄소년단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방탄소년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2021년 3월 15일. 지금으로부터 1년 6개월 전이다. 나는 새 학기의 분주함에 지쳐 귀가했을 것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TV를 틀었을 것이다. 늘 그렇듯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을 것이고, 그러다 채널을 멈춘 게 방탄소년단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Breaking the silence>. 2019년 방탄소년단의 첫 번째 스타디움 월드 투어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화면에는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함성과 넘실거리는 보랏빛 물결, 그리고 무대 뒤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나왔다. 일곱 명의 훤칠한 청년들이 진지하게 무대 동선을 의논하는 모습, 산소호흡기를 댄 채 쓰러지는 모습, 호텔 방에서 비빔면에 와인으로 야식을 먹는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음악과 공연, 성공에 관한 인터뷰 같은 것들.
방탄소년단이 이미 세계 정상에 올라 있던 무렵이었다. 아이돌에게 전혀 관심 없는 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라는 곡으로 그래미에 한국 가수 최초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뉴스도 봤다. 그래도 그런가보다 싶었다. 잘 생기고 춤 잘 추는 20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할 시기는 지났다. 그건 젊은 여성들이나 하는 유치한 시간 낭비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시청하게 된 것은 그룹의 리더인 RM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저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보는 사람이라,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행복하다고 대답하기 어려워요. 행복한 순간에도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건 내 문제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으로….”
성공과 인기를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돌, 언제나 빛의 이면을 생각할 수 있는 20대, 답을 찾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대신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알기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시인과 철학자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이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 연구자가 방탄이라는 토끼굴에 빠지면 생기는 일
학술대회는 7월 14일부터 3일간 진행됐다. 하지만 전날 진행된 워크숍과 온라인 발표를 포함하여, 외국에서 온 참가자들을 위한 이틀간의 방탄 투어, 7월 내내 평창동의 한 뮤지엄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 그리고 주말마다 열린 북 콘서트와 드로잉 워크숍까지, 이번 학술대회의 외연은 훨씬 더 넓다.
참가자의 규모도 그렇다. 발표 신청자만 국내 포함 20개가 넘는 나라의 150여 명에 달했고, 분야도 문학, 철학, 정치학, 지역학, 대중문화, 마케팅,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 정체성 연구와 젠더 수행성, 교육과 심지어 의료보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 학문 분야에서 방탄소년단을 연구하고 있었다. 어떤 연구자는 코로나 시기 세계인들의 정신 건강에 미친 방탄소년단의 영향에 관해 발표했고, 어떤 연구자는 동서양의 신화적 모티프로 방탄소년단의 가사를 분석했다. 방탄소년단이 교란하고 있는 젠더 및 인종의 경계에 관한 연구, 배움의 매개체로서의 방탄소년단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성공적인 브랜딩과 마케팅의 아이콘으로서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자본주의와 만나는 지점에 대한 통찰도 빼놓을 수 없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Breaking the silence>로 시작된 방탄소년단에 대한 탐구가 소위 ‘덕질’이었음을 자각한 순간, 이미 늦었다. 아미들의 표현을 빌자면 ‘토끼 구멍에 빠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멈출 수 없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자 목적지도 없고 방향도 알 수 없는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뮤직비디오였다. 유튜브에서 ‘방탄소년단’이라고 쳤을 때 제일 먼저 떴다. 그것 말고도 소속 기획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콘텐츠는 많았다. ‘무한도전’과 비슷한 콘셉트의 예능, 팬들과 화상으로 소통하는 라이브, 자신들의 근황과 솔직한 심경을 담은 로그 영상 등, 내가 그들을 인식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콘텐츠들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쉬지 않고 딸려 나왔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팬들이 만든 콘텐츠였다. 일곱 멤버가 각각 노래의 어떤 부분을 부르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그들의 이름과 목소리, 얼굴을 구분하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콘텐츠에 각국의 언어로 자막을 다는 것도 팬들이다. 리액션 영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유튜버의 관심 분야나 업종에 따라 어떤 사람은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를 분석하고, 어떤 사람은 뮤직비디오의 영상과 편집에 대해 분석했다. 안무를 비평하는 댄서도 있고 창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보컬 코치도 있었다. 멤버 간의 대화나 연설 장면을 분석하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이라는 하나의 기표를 중심으로 댓글로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고, 영상으로 반응하며 계속해서 그 연결을 확장해 갔다. 그 흐름을 따라 나도 랩의 맛을 알게 되고, 영어 듣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방탄소년단이 아니었으면 들을 일 없는 이야기와 볼 일 없는 사람들을 영상으로나마 만났다. 필리핀계 벨기에 국적 래퍼가 방탄 노래의 멜로디를 샘플링한 랩, 방탄 뮤비의 편집 기술에 대한 하와이 출신 감독의 분석,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미군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 들을 일이 언제 또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방탄소년단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어느새 국가의 경계도, 노래의 장르도, 관심 분야도 넘어서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지 6개월 만에 방탄소년단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인스턴트 영상 매체 때문에 문자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개탄하던 나였다. 정지용의 시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 때문에 좌절하던 나였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만난 이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반복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찾아내고 서사와 캐릭터를 구축하고 세계관을 읽어내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고, 방탄소년단은 어떤 존재란 말인가. 그러니까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모여든 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도 나와 비슷한 경로로 그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리라.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도달한 곳이 재판장이었다면, 방탄에 빠진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은 학술대회장에 모여든 것이다.
3. 연구로 ‘덕질’하기
시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가사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마케팅 전략만으로 방탄소년단이 그토록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리라. 그랬다면 방탄소년단의 성공 전략을 벤치마킹한 이후 K-POP 그룹도 그들에 비견할 만한 성공을 거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게 그들의 메시지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연구자가 방탄소년단을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논의를 살펴볼수록 분명해지는 건 내 논의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소위 ‘방탄 현상’은 방탄소년단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난스럽고 특별한 팬덤 아미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어쨌거나 나는 그 논문 덕분에 벼르고 있던 BTS 국제학술대회에 초대받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표는 첫날 첫 번째 세션의 <팬덤과 정치학>이었다. 필리핀에서 온 노엘, 한나, 앨리슨은 2022년 필리핀 총선에서 개혁파의 수장인 레니를 지원하는 데 청년들이 어떻게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K-pop을 동원했는지 소개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칼리나의 발표도 비슷했다. 노동법 개악을 포함한 법안의 일괄 개정을 골자로 하는 옴니버스 법률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인도네시아 청년들도 방탄소년단을 소환했다. 이들의 발표 자료에는 방탄소년단의 <Not today>가 울려 퍼지는 시위 현장을 담은 영상과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를 전유한 투쟁의 구호들이 소개됐다.
칼리나가 발표를 마치고 단상에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주먹을 쥐고 들어 올리며 외쳤다.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를 지지해주세요.”
전율이 일었다. 우리도 저들처럼 서방 세계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떠나온 과거가 지금 이 시대의 다른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의 주먹 쥔 손이 어설픈 만큼 저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할 것이다. 그 험한 길을 우리는 김민기, 양희은의 노래를 부르며 헤쳐왔고, 지금 아시아의 청년들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부르며 뒤따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촛불 혁명으로 교체한 정권을 5년 만에 다시 내어준 2022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그러나 비슷한 정치적 상황에 놓인 방탄의 팬이자 젊은 여성 연구자들이, 정치와는 가장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아이돌 때문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동시에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전거典據로 삼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것, 다른 하나는 절대 물러서지 말자는 것. 전자가 2018년도 가을 유니세프에서 방탄소년단이 청년 세대를 대표해 연설한 ‘Love Myself’와 동명의 시리즈 앨범에 응축되어 있다면, 후자는 비주류 흙수저 아이돌로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방탄소년단이 견지한 태도로 대표된다.
예컨대,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라는 <소우주>의 가사는 국적, 인종, 성별, 나이, 계급과 상관없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70억 가지 개별성에 대한 사랑의 선언으로 해석된다. “All the underdogs in the world/ A day may come when we lose/ But it is not today/ Today we fight!”라는 <Not Today>의 가사는 세상의 모든 약자에게 봉기와 연대의 구호로 공명한다. 하여 이 가사의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방탄소년단은 비주류들에게 사랑과 저항의 상징으로 호명된다.
<Focus Session>의 발표들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 새로운 휴머니티와의 조우”라는 학술대회의 주제를 대표하는 이 세션은 세계 각국에서 초대된 비 연구자 아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방탄소년단을 앞세워 ‘자기로서 존재하기(Love myself)’를 고취하고, 세상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현장에 대해 보고했다. ‘한국 농아동 교육연구소’의 안정선 대표는 방탄 콘서트에서 농아미(농아인 아미)들의 노래 들을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모든 농인의 문화 향유 권리를 주장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Justice Desk는 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여성과 어린이들의 자립과 자조, 그리고 그들과의 연대를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로 호소한다. 세계적인 아미 네트워크인 ‘One In An Army’는 빈민·가출청소년·고아·병자에서부터 해양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면서, 그리고 브라질의 ‘Army Help Planet’은 화재로 소실되어가는 아마존의 삼림 회복과 브라질 젊은이들의 정치적 수행을 독려하면서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메시지를 활용한다.
요컨대, 방탄소년단은 밀레니얼 시대의 모든 담론과 기술, 욕망이 접속하는 상징적 기호이다. 방탄소년단은 SNS와 유튜브를 활용하여 그 아이콘을 해석하고, 전유하고, 재생산하고 전송하는 아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시작되어 서로 연결되는 이 흐름들은 자본을 공고히 하는 지점으로 흘러들기도 하지만, 기존의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더 나아가 질문을 바꾸기도 한다. 이 그물망 속에서는 학술적 연구도 하나의 덕질일 뿐이다.
4. 방탄과 아미의 새로운 휴머니티
얼마 전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방탄 콘서트가 부산에서 열렸다. 부산시가 주도한 이 행사는 방탄의 홍보사절단 위촉식에서부터 콘서트 당일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콘서트 장소 선정과 개최 비용 떠넘기기, 숙박업소의 폭리, 방탄의 대체복무 논란 등, 아미의 눈에는 하나같이 기이하고 비상식적으로 보였다. 아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성세대들의 권위적 태도를 지적하고, 기득권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했고, 콘서트 당일에는 행사의 운영주최인 부산시가 할 일을 대신했다. 이 과정에서 아미는 정보를 수집해서 언론에 제보하고, 부산시에 항의 전화를 하고, 자율적으로 봉사단을 조직·운영했다.
콘서트 당일, 방탄소년단은 역대 어떤 콘서트보다 더 뜨겁게 공연에 임했고, 아미는 열광과 환호로 호응했다. 이게 바로 아미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다. 자신들이 아끼는 대상을 지키겠다는 것. 그건 곧 자기 자신의 욕망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방탄소년단이 노래한 ‘Love Myself’와 ‘Speak Myself’의 실천이다.
아미의 이러한 움직임을 기성세대는 지극히 사적인 욕망에 따른 정동의 표출로, 방탄소년단이나 아이돌 문화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극성스러운 것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정동이나 욕망을 합리적 이성과 대척점에 놓고, 후자를 우위에 두는 근대적 사유 안에서만 사실이다. 이성을 근간으로 하는 자율적 주체와 그 확장된 판본인 근대적 공동체가 허구임을 폭로하는 논의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일찍이 스피노자는 실존과 행위의 역량으로서의 욕망, 즉 코나투스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위적 이념이나 초월적 관념 말고 좋아하는 것을 지키는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닐까? 너무 거창하다면, 그런 마음들이 이어져 여러 개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들이 목소리로 터져 나와 하나의 사건이 출현하게 된다고 말하면 아닐까? 적어도 그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학술대회의 현장과 운영도 남달랐다. 행사장에는 아미를 상징하는 보라색 물결 일색이었고, 휴식 시간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의 청중들이 발표자에게 다가가 방탄소년단과 아미에 관한 발표 내용에 공감과 관심을 표했다. 쉬는 시간이면 곳곳에 모여 방탄에 관해 뜨거운 대화를 나누며 직접 만든 방탄 굿즈를 교환하기도 했다.
상시적인 조직이 없는 학회, 다음 개최지를 학술대회 마지막 날 청중들의 요청으로 결정하는 학술대회, 개최지로 결정되면 그때부터 해당국의 ‘학자 아미’와 ‘일반 아미’가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섭외하고 운영하는 이러한 방식은 권위적이고 형식적이고 지루한 것으로 인식되는 학술대회의 일반적인 상을 넘어선다. 지성과 정동이 한데 섞이는 현장, 앎과 우정을 나누는 축제로서의 학술대회가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큰 차원에서도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