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가해 11월14일 화요일 [(녹)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수도회]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마땅한 도리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지혜 2,23─3,9
† 복음 루카 17,7-10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언뜻 보면 주인이 퍽 야속해 보입니다.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온 종을 따스하게 맞아들여 밥부터 먹이기는커녕, 다시 주인의
시중을 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이렇게 덧붙이지요.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오늘 복음은 인간이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마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데,
어떤 보상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지요.
만일, 하느님의 일을 얼마만큼 했다고 하여, 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한다면
참된 종의 자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러고는 오늘 복음처럼 응답해야 합니다. “저희는 ……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일을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할 때,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 주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이 마음이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 끝없이 매달리며, 묵묵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2017년 가해 11월14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2,23─3,9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언젠가 혼자서 여행을 하다가 시골의 장터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북적한 장터를 돌아다니다가 오징어 튀김을 파는 좌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툼한 오징어 튀김이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보였고, 어렸을
때 즐겨 먹었던 오징어 튀김이 생각나더군요. 저는 주저 없이 오징어
튀김 좌판 앞에 서서 일인분의 튀김을 주문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접시에 오징어 튀김이 담겨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입을
깨문 순간 곧바로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글쎄 튀김옷 안에 들어 있는
오징어가 너무나 얇고 작은 것입니다.
튀김을 먹음직스럽게 크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분처럼
튀김옷만 두껍게 입히면 될까요? 아닙니다. 튀김옷 안에 큰 오징어가
들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크고 먹음직스러운 오징어 튀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튀김옷을 두껍게 입힐 것이 아니라, 오징어를 키워야 합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그럴싸하게 꾸미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
멋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허세라고 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명품 옷과 가방 등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내 자신의 마음입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삶을 인정해주실까요? 욕심과 이기심을
가지고 겉으로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모습을 통해서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셨듯이,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먼 훗날 주님 앞에서 섰을 때 크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잠시 맡겨두신 이 세상의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하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잘 했다고 자랑하고 허세를 부릴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계속해서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마음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을
바라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겸손한 모습을
가지고서 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 키우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것을 한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분명히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변하며,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윌리엄 제임스).
1박2일로 갑곶성지 직원들과 전라도 전주로 연수왔습니다.
말의 무게(윤문원, ‘지혜와 평정’ 중에서)
어떤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어 생각을 마음에 담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은 입에 있어 생각을 무심코 내 뱉습니다. 사람의 혀는 야수와 같아
한번 고삐가 풀리면 다시 잡아 묶어 두기가 어렵죠. 내뱉은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습니다.
말이란 내뱉는 사람에겐 가볍게 느껴져도 듣는 사람에겐 큰 무게를
지닙니다. 마땅히 말해야 할 때는 말해야 하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전진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는 겸손하고 부드럽게 하고 주장해야 할 때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고 분명하게 말해야 상대방에게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듣고, 지혜롭게 질문하고, 조용히 대답을 합시다.
섣부른 말은 어떤 이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만들기도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 확신이 없는 말들이 너무나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
잠시 말의 무게를 생각해봅니다.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내 마음이 커질수록
힘 있는 말,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전주 전동성당.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마땅한 도리 -
기 경호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1월14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루카 17,7-10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마땅한 도리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잘 지켜 공덕을
쌓아 하느님께 보상을 받겠다는 인과응보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로 오해하였던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사도들이 예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17,5)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사도라는
걸 내세워 하느님의 관대함을 요구할 수는 없음을 상기시켜주십니다.
사실 현세에서는 채용된 노동자라 하여도 자신이 한 일과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고용주는 인간을 노동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되며, 늘 노동을 하는 사람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가권력도 이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를 집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질서는 전혀 딴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밭을 갈거나 양을 치고 들에서 돌아온 종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하지 않습니다(17,7). 오히려 주인은 자신의 저녁을
준비하고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17,8). 이것이 바로 삯을 받고 일하며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품꾼과
하늘나라를 위한 종의 다른 점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종은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그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세상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축복임을 압니다. 하느님을
소유함으로써 모든 것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하느님 나라의 종은 주인을
위하여 무상으로 일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종은 무슨 일을 했다고
해서 주님께 보수나 사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정체성은 아무런 대가니 보상없이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일을 우선시 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심부름꾼이 바로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하늘나라의 ‘공무원’인 셈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종은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17,10)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이요 예수님의 제자로 불린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전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사랑의 의무일
뿐입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이해타산을 따질 수 없으며, 죽기까지 다 채우지 못하는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종'(유언 41), '하찮은 종'
(지도자편지 1), '가장 작은 종’(2보호자편지 1)으로 인식하였으며,
장상직을 수행하는 형제들을 ‘형제들의 봉사자요 종’(인준칙10,1)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형제들이 하느님의 종이며
형제들을 섬기는 서로의 종임을 깊이 인식하였고,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을 실행했습니다.
우리 또한 모든 이를 조건없이 섬기도록 불리운 주님의 종임을 똑똑히
인식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종인 자신의 신원과 본분을 망각한 채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조차 계산하고 대가를 따지는 천박한 품꾼이 되지
말아야겠지요. 자비와 선행, 정의를 위한 투신, 영성생활에 관한 지식과
변화 등 그 어떤 것도 자기 업적인양 자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오직 하느님과 함께 있음에 감사하고, 주님의 도구로 쓰여짐에
기뻐하는 성숙한 주님의 종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루카 17, 10)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1월14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루카 17, 10)
정신을 차리게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쓸모없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 사랑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만나게됩니다.
영원한 기쁨은 이 모든 것을 맡기는 겸손에서 옵니다.
작아져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작아져야 할 우리자신입니다.
주님께 중심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중심이 되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쓸모없기에 어리석은 우리의 의지를 멈추게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우리를 물들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주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작아지고 낮추어야 할 우리의 모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작아지면질수록 모든 것은 은총이 될 것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원] 하느님 앞에 겸손한 자세!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1월14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7,7-10: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에서 종이 주인의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9절)
고 하신다. 그저 주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10절)고 가르쳐주고
계신다. 한 마디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나서 겸손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일만을 시키지 않으신다. 살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참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앞자리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섬기는 일을 제법 잘 했다
하더라도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뽐내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 그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때때로 웃어른의 정당한 지시에 대하여 머리 숙여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는가 하면, 심하게는 낳으시고 기르셨으며 평생을
그 자녀들만을 위해서 염려하시며 애태우시는 부모님들의 간곡한
권고까지도 겸손되이 받아들이기를 외면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어느 조그마한 권력이나 지위에 앉게 되면 더더욱
수하 사람이나 타인이 마치 자기 생각, 자기 원의, 자기 취미만을
채워주기 위해 있어주어야 하는 양 뒤흔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도 알고 자기 직분과 위치가 주는
권위를 드러내야 할 때 분에 넘치는 충동도 꺾을 줄 안다. 교만하지
않으며 만용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영광이나
명예와 권세도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인 다른 이들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위해 사용할 줄도 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여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10절) 이 말씀은 제자들이 파괴적인 욕정을
멀리 하도록 만드시려는 뜻이었다. 입으로 영광을 떠드는 자들은 덕행을
실천하여도 그것으로는 아무런 은총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갖 덕을 실천하더라도 그것을 자랑삼는 사람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고
말며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또한 주님 앞에 자신을 무로 돌릴 줄 아는 자세도 가져야 하겠다. 우리는
마당을 쓸 때 빗자루를 이용하고 쓸고 난 뒤에는 그 빗자루를 좋은
자리에 고이 모셔두는 것이 아니라, 문 뒤 한적한 곳에 세워 둔다. 즉,
“주인이 필요하여 나를 쓰셨고 이제는 내가 할 바를 했으니 내가 차지할
곳은 이곳입니다” 하는 것과 같다. 주님 앞에 그리고 우리의 이웃 앞에
또한 겸손한 봉사자의 모습을 가지도록 노력하자.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서울]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2017년 가해 11월14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 17,7-10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위해서 집을 마련해 드렸고, 생활비도 드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인데, 마음으로
생색을 내곤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오사카에 사는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는 50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의뢰인을 변호하면서 운이 좋은
사람들과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덕을 베풀고, 자신의 선행을 굳이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불평과 불만을
말하기 보다는 받아들이면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생색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일례로 자리보전하고 누운 시어머니를
큰며느리가 10년 넘게 간호해서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다른 자식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그저 돈 욕심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며느리에 대한 악감정이 컸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잘 모신 건 인정하지만
항상 감사하라며 생색을 낸 건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타인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운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뢰인을
만나보면 100%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겸손한 마음을 잊으면 봉사를 해도 그것이 공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철원 총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빗나간 탄환을 쏜 병사를 알게
되면 원망하게 될 것이고, 그 병사 또한 자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므로
원치 않으니 어느 병사가 쐈는지 밝히거나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아들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아버지가 보인 태도는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당부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불운으로
기억될 사건의 방향을 틀어 그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운을 바꾼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새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덩어리들은 세상이 나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오늘 하루는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삶의 순간들은 모두 감사와 은총덩어리입니다.
신앙 안에서 사제는 봉사자여야 하고, 성사를 집전해야 합니다. 봉사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가장 큰 사명이고, 성사의 집전은 사제에게 주어진
고유한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미사와
고백성사를 정성껏 집전해야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하
국가도 가히 고르게 할 수 있으며 벼슬과 녹봉도 가히 사양할 수 있으며
서슬 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으나 중용은 지키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제가 맡겨진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고, 봉사와 성사
집전을 잘 할 수도 있겠지만 사제가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참 힘들다고 하겠습니다.
한 신자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싫은 소리,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으세요?” 저는 그분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머리로는
싫은 소리, 충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저의 마음과 감정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섣불리 남에게도 충고나 조언을 하지 못합니다. 만일 제가
누군가에게 충고나 싫은 소리를 한다면 그것은 설령 상대방을 다시는
못 보게 되더라도 그에게 꼭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은 더욱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종이 주인을 위해서 일하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영광은
주님께로 돌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혜의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근본에로 돌아가자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11월14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루카17,7-10)
근본에로 돌아가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은 노력에도 남이 칭찬해 주고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기대를 하였는데 채워지지 않으면 섭섭해 하고 화를 내며
다투기도 합니다. 때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에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주님 눈에
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변사람들의 반응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언젠가 ‘아름다운 손’이라는 제목으로 한 시민이 거액의 돈을 주워
경찰에 맡김으로써 주인이 잃은 돈을 찾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순간적인 유혹도 있었겠지만 주인에게 돌려준 귀한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마음 항상 지켜지길 희망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돈은 분명 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보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카17,10). 하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바보라면 얼마든지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근본에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부 실루스는 “모든 일이 당신의 생각에 가장 좋은 방향으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되기를 바라라. 그러면
혼란에서 벗어나 기도중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하는 사람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여러분은 공을 이루고 물릴 줄 아는 사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참된 노고는 남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남의 눈에 띄는 노고는
허영심만 키울 뿐입니다.”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으면서도 생색내려고
하는 이나,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데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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