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여행] 여수 평화 테마촌...........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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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행] 여수 평화 테마촌...........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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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예술랜드에서 나와 곧장 남으로 핸들을 돌려 평화 테마 촌으로 향했다. 달랑 관광지도 하나들고 여수
곳곳을 누비며 달려왔던 4번째 여수여행 아직도 갈 곳도 많고 볼 곳도 많다. 사실 여수 테마촌은 어떤 곳일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궁금증을 풀기위해 달려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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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 날씨에 흐드러진 벚꽃도 이제 막바지다. 여수 테마촌은 과거 돌산읍 율림리 445번에 소재한 폐교된
율림초드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북한 반잠수정 전시관과, 무기 전시관이 운동장을 중심으로 두동으로 나누
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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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벚꽃의 아름다움은 한꺼번에 활짝 피었다가 춘설처럼 흩날리면서 한꺼번에 떨어지는 벚꽃의 화끈하고
도 깨끗한 모습에 아마도
유랑자가 좋아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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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도착하자 역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화사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유랑자를 맞이한다, 햇빛 비추는
날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벚꽃, 봄에 이 벚꽃만큼 화사한 꽃이 또 어디 있을까, 유랑자가 아무리 생
각해 보아도 떠오르질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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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벚꽃의 아름다움은 한꺼번에 활짝 피었다가 춘설처럼 흩날리면서 한꺼번에 떨어지는 벚꽃의 화끈하고
도 깨끗한 모습에 아마도 유랑자가 좋아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벚꽃은 일본의
꽃 국화(國花)라고 알고 있다. 유랑자도 한때는 그렇게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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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왜놈들은 근본이 없기 때문에 국화(國花)가 없으면서 국화(國花)처럼 사용하는 꽃 문장(紋章)으로
일본 황실의 상징인 가을 국화(菊花)가 있을 뿐이다. 또 하나 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 한라산으로 에도시대에
일본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벚꽃의 꽃말은 순결, 절세미
인, 연인의 매혹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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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먼저 북한 반 잠수함 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무료입장, 관광객이 주로 찾는 여수 돌산에 무기 전
시관이 생긴 것은 남해안에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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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8년 12월 17일 자정이 조금 안된 시간 돌산읍 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은 당시 육군 31사단 해
안경비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이병이 TOD로 관측 한다. 해군이 즉각 출동하여 초계함과 고속정 4대가 포위를
하고 정선 명령을 내리며 위협사격을 했으나, 북한 반잠수정이 응사를 하며 도주하자 이를 추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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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함포 3발이 괴선박 옆구리에 명중 하면서 결국 거제도 남서쪽 100km 지점에서 이를 격침 한다. 무려 7
시간 35분에 걸쳐 추격전이 끝난 것이다.(최종 사체 6구 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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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의 포를 맞고 침수된 북 잠수정의 촉소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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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유고급과 시호스급은 보통 잠수정으로 분류가 되는데 반잠수정은 그것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다. 잠수정과 잠수함을 구분하는 기준은 배수량으로 배수량 200톤 미만을 잠수정, 200톤 이상을 잠수
함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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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P-4급, 유고급은 모두 잠수정으로 보고 모형으로 보는 것과 같은 작은 크기의 잠수정은 무게가 10.5톤
에 불과하며 길이는 12.8m에 반잠수정의 특성상 최대속도는 85km에 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수 깊이는 20m
에 불과하고 무장은 어뢰 2발이 전부이다. 즉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고 모선이 있어야 남해까지 이
동이 가능하다. 최대 탑승인원은 8명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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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반잠수정(I-SILC)의 앞부분은 생각보다 멀쩡한 편이다. 이런 형태의 반잠수정은 이곳에 전시된 것 외에 1983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침투 후 귀환하다가 해군 함정에 의해 격침된 반잠수정도 이와 유사한 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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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당시 격침 되었던 잠수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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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반잠수정은 3개월 후인1999년 3월17일 인양되어 2003년부터 평화테마촌에 전시됐고, 전시관은 처참하
게 부서진 반잠수정 1척과 노획 장비 총 70종 589점을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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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되는 품목으로는 M61체코 기관권총 1정, 수류탄 2 발등의 무기 및 화약류가 있고 각종 침투 장비가 15종
15점, 압축 식량, 밥통 조림, 고무 밴드, 유해가스 마스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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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한반도가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거쳐 그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북한은 각종 침
투장비를 통해 한국을 엿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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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전쟁은 과거의 러일전쟁을 종결할 때 나왔던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영원한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라는 격언처럼 냉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반도에서 6.25와 같은 전쟁은 다시는 일어 나
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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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보고 나오면 다음으로는 무기전시관이다. 여수시는 2014년 6월, 6.25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자며 무기
전시관을 열었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무기전시관은 819.8㎡ 면적에 기관총과 박격포, 탄약, 전투복 등 205점
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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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이곳의 이름은 평화테마촌이지만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
벽 북한의 포격이 시작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3년 이상 끌어오던 한국전쟁은 유엔군 측과 공산 측 대표가 서
명하면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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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휴전 협정 12일 뒤인 6월 25일에 포격으로 시작된 결정적으로 휴전이 된 것은 53년 8월 8일 한미 상호
방위조약이 가조인되었을 때이다. 한국전쟁 당시 여수는 전쟁의 참화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었지만 그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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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역시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된다. 살길을 찾아 서울을 탈출했던 수많
은 시민들이 이곳 여수까지 오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되어서 대전차 로켓포의 휴대성이 좋아
졌지만 한국전쟁 당시만 하더라도 대전차포는 휴대가 쉽지 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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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침공하여 발발한 전쟁으로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한 국제전으로 비화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간 교전이 이어졌으며, 2021년 현재까지 약 71년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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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들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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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잡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RPG 시리즈는 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대전차 포켓 포로 구소련이 최초로
RPG-2를 개발하였으며 1961년 기존 RPG의 사거리와 위력을 강화시킨 RPG-7 대전차 로켓포로 오늘날 가장
인기 많은 대전차 로켓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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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RPG-7은 소말리아 내전에서 특수전 헬기 블랙호크 2대를 격추 시키기도 하였던 무기이
다. 보통 포를 다루는 부대를 말하면 포병을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전투무기가 부족했던 한국전쟁 당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무기는 보병부대에서 운용되는 박격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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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실시된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 이후 9월 28일 서울 수복 국기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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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내부에는 6․25전쟁 상황이 체계적으로 기록된 각종 자료와 함께 북한 무기 230점과 한국 무기 15점 등 총 245점의
유물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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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도 군시절 이런게 박격포다라는 취지의 포를 훈련할때 몇번 쏘아 본 경험이 있어 조금은 안다. 야포라
고 불리는 견인포보다 크기가 작지만 높은 각도로 포탄이 날아가기 때문에 산이 많은 한국 지형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60mm 박격포는 사람 손으로도 운반도 가능하고 기동성이 좋았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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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현대식 무기가 등장했던 한국전쟁의 결과로 인해 당시 한국은 150만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 와 20만여
명의 행방불명자, 25만 명의 부상자를 냈다. 결과적으로 전체 인구의 1/2 이상이 참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겠다.
휴전 직후 집을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난민의 수가 200만여 명에 이르렀고 상시 굶주림에 직면한 숫자가 전
체 인구의 20~25%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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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소련제 북한 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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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평화 협정(Peace treaty, 종전 협정 또는 강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아직도 진행중인 전쟁
이지만 남북 양측의 국민들에게는 전쟁 중이라는 인식은 드물다. 이는 준전시(準戰時)라는 특수한 대치 상태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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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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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지원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많이 사용한 소총은 구소련 등에서 공급받은 소총이다. 주
력으로 사용했던 총에 사용된 탄약은 7.62mm로 이 크기의 탄약은 러시아군이 지금도 주력 소총으로 사용하는
AK-47 이라는 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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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총들을 보면 확실히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군이 한국군에 비해 화력 우세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소총 중에 한반도에서 사용된 무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원거리 목표를 정확
히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걸작 드라구노프(SVD 반자동소총)등은 모두 구소련에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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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지금도 이런 신분증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신분증과 당원증 등을 볼 수 있다. 마치 1970년대의 한국 의료보험증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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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까지 이런 막사는 전방에 가면 흔했고 모든 군인들이 단체 생활할 때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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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대전차 수류탄이었던 RPG-43이나 북한군의 모방 수류탄인 F-1, PRS-43 탄창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토
카레프'라고도 부르는 TT권총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P38과 함께 인기를 끌던 권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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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TT권총은단순화된 구조로 인해 잔고장이 없었고 장탄량도 많은데다가 총구 속도가 빨라 관통력도 좋
다는 평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을 상당히 위협했던 북한군 장교의 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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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내무반이 마련돼 있어 군복을 입거나 철모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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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례는 지금이 '전시'인지 '평시'인지 명확하게 입장을 내린 적이 없으며 사안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국회 또한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과 남북 관계의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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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현대식으로 변해서 이런 내무반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유랑자도 군시절 이런 내무반을 사용
했었다. 일명 구 막사 시대를 거쳐 신막사 초기에도 이런 형태의 내무반은 일반적이었다. 암튼 전시공간은 전
쟁으로 인한 폐허, 서울을 잃고 남으로, UN군의 참전과 반격, 내무반 체험, 평화를 위한 노력 과 평화 염원이라
는 주제의 기록물과 관련 영상으로 채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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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도 전쟁의 아픈 흔적과 생활상을 우리가 다는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과 선배들이 흘린 피와 그
리고 고통과 아픈 상처등 여백없는 흔적들을 다시한번 가슴에 되 새겨보는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제 유랑자는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려 테마촌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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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의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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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로 365
(지번)돌산읍 율림리 445-2
휴무일:월요일
연락처 :061-659-5687 대표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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