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은 화강암 1,850여 개를 쌓아올려
둥근 홍예문(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굴게 만든 문)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조선의 상징인 자두꽃문의가
중앙의 이맛돌에 세겨져 있는 높이 14.28m,
너비 11. 48m의 서양식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이 문은 일본놈들 물러갔다고
지은 것이 아니라 중국놈들에게
조공바치던 것을 그만 둔 기념으로
만들 문이라고 합니다.
이 독립문은 1897년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중심으로한 안경수, 윤치호, 김가진,
이상재 등이 조직한 '독립협회' 주도 하에 모금을
통해 만들어 졌으며,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따
서재필이 구상한 것을 덕수궁내 '석조전'을
건축한 심의석이 공사 감독을 맡아 시공했다는 군요
특히 현판석에는 태극기와 함께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여 있는데 이 독립문의
현판을 누가 썼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현판을 이완용이 썼다는 주장이
제기 되면서 혼란이 일게 되는군요.
김가진이 독립문 현판을 썼다는 기록은 가족이 쓴
<장강일기>가 전부이며, 그것도 독립문이 세워진지
100년이나 지난 1998년 출판된 것이어서
그역시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반박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독립문의 현판은 이완용이 쓴 것일까?
아니면 김가진이 쓴 것일까?
아니면, 제 3의 인물의 있는 것일까?
문화재청 관계자는 자료가 부족해 독립문의
현판을 누가 썼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답니다
혹시 시인 김정래님이 쓰신 것 아닐까요?
🙏
첫댓글 아니 차마두 화백님은 그림과 글만 잘아시는 줄알았는데
역사까지 두루 박식하시니 역사탐방 해설사까지 맡으시면 어떨까?
한번 제안을 해봅니다
에고고 그런건 저는 못합니다
역사는 관심만 가지면 책이 많아 골라서 보면 됩니다
감사 합니다
차마두님~
저는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안했는데요 ㅎㅎ
저는 감가진이란 분이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가진님의 필체가 독립문 필체랑 같다는 것이지요
전에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나서 말씀 드립니다
글치만 이 또한 확실치는 않네요
그러시군요
혹시 그것쓰시고 다시 들어갔다가
나중에 나오신거 아닌가요? 말이
되나요? 억지네요^^
그래요 역사가들에 의한 평은 감가진
이란분이 자서전에 기록을 해서 자기가
쓴 것이라 했지만 신빙성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친일파 이완용이 쓴 것이
맞는데 좀 그렇네요 역사하나 올바르게
못다루는지 좀 기분 나빠요
감사합니다^^
세상에 그런일이~
이씨 아저씨가 쓴것이라면
바꾸면 좋겠네요..
요즘 신영복님 글씨체도 지운다고들 하더라구요~~
그러게 말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에
박정희 각하의 서체로 썼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나 싶네요
감사합니다^^
해박한 지식을 함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마두님에게 무한한 행운과
건강 하시길 빕니다
아이고 그린이 문우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리의 개선문 처럼 시내 한 복판에 세워져서
길이길이 빛났으면 좋을듯한데..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 어둑 컴컴한 한쪽 귀퉁이에
쭈구려 서있습니다..
그또한 불만이고
대문의 현판이 정확한 기록이없이
니가썼네 내가썼네 그 또한 참으로 한심합니다..
서로 물고 뜯느라고 위정자들이 관심이
눈 꼽 만큼도없다는게 또 한심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어떻게 그렇게
방치해두고 아직도 정확한 역사적 자료
하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는 독립문이 가운데 있었는데
나이들어 가보니 구석진데에 있더군요
누가썻던 소중한 역사의 가치인데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니 많이 아쉽네요
예전에 가운데 있던것을
옮겼답니다 중국에 조공 바치던
것을 끝내다는 의미로 지은문이라네요
감사 합니다
차마두작가님 닥분에 역사공부 몰랐던 것을 이렇게라도 일께워 주셔서 감사 합니다.
사진상으로 건강해진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맞는지요.
잘 자요.
이완용 이 친미 로 구한말 조선을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서재필과함께 의기투합.영은문터에 중국조공국 에서 독립한다는 의미로 이완용이 주도적으로 1896건립. 일본관리의보수를
맡기는등. 유지하다가.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이등박문의 수하가되어
을사오적.경술국적.정미칠적을 다전담하며 1910년내각총리대신까지하며 조선을 배반한 반대급부를 챙긴 매국노가 되었지만
1896년독립문건립 위원장으로 독립을 주장할때 당시명필이었던 이완용이 씌지않았나. 김가진은 일본에 귀족작위를 받고 후에는 상해임시정부 활동을 한독립운동가 이었나 독립문에 가까이할 인연은 없었다는게 중론,
이완용이 친미도 신통치않고 미개한 조선을 일본의 명치유신이후의
신문물을 수렴한 탄탄국가로 만들자는 그나름의 설계가.후세에 대한 위선적변명인지,
조선말 학부대신의 애국적사고가 있었던것인지는
알수없다.
이완용 쓴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분이 영웅이니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따....참말로....으짜 쓰까이.........ㅋ
나두 몰러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하 생각납니다
별꽃 문우님 바로 옆에
계셨던 분이시지요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와서 헐수도 그냥둘수도 어찌하나요
그러게 말씀입니다
제가 뭘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구나 ᆢ 전 여직 몰랐습니다
썩을 늠 이완용 ᆢ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