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하고 무자비한 사나운 태풍이 몰려와,
사람 허리 굵기만 한 나무들이
픽픽, 쓰러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뚝뚝 부러진 크고 작은 나무 가지들이
이곳저곳 내동댕이쳐져
치열한 전쟁터가 연상 되는 날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저 하늘 위 높은 곳에는
여전히 밝은 태양이 찬란히 빛나고 있음을---.
시커먼 먹장구름들이 떼지어 몰려와
온 하늘 가득 매우고,
잔 정 많고, 마음씨 고운 외할머니의
온화한 미소를 늘 머금고 있던 하늘이,
누만 년, 참고 또 참아온 분노를
거침없이, 한꺼번에 표출하기라도 하는 듯이
집터조차 흔들리는 천둥 번개를
마구, 맹렬히 퍼부으며 호령 할 때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저 하늘 위 높은 곳에는
여전히 밝은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우리를 둘러싼 상황들이 우리의 적군이 되어
우리의 뜻,
우리의 기대,
우리의 소망과 반대로 흘러갈 때,
그로인해 우리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의 형제,
우리의 가족들까지도
우리를 향하여 등을 돌릴 때,
그리고 마지막 남은 우리들의 영원한 아군인
우리들의 마음마저,
캄캄한 골방으로 기어 들어가
촛점 잃은 눈으로 고개를 떨군 채,
전쟁터의 패잔병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주저앉아
차가운 한숨만 푹푹 내쉬며,
어두운 절망의 슬픈 노래를 부를 때,
그때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주 오래 전,
우리들의 기억 저편의 아늑히 멀고 먼 시대,
그 시대를 사셨던 우리 선조들도
지금 우리들처럼
오직 절망의 노래 밖에는
부를 노래가 없는 날이 적지 않았음을---,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기억해야 한다.
그분들의 날에도 하늘 높은 곳에는
여전히 밝은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