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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리스도의 몸인 형제사랑의집 원문보기 글쓴이: 형제사랑
2009년 4월 27일 (월) 게리 윈즈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계시록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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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저희가 요한계시록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에 큰 목표를 두고 있다. 저희가 12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지만 그것을 하더라도 사실 요한계시록의 서론 정도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은 아주 놀라운 책이며, 성령님에 대한 아주 많은 것으로 가득 찬 책이다. 저희는 이 책을 이해하는데 처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이 강의 시간은 지난 번 내용의 복습에 해당할 것이다. 지난 12월 달에 제가 여기서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전했었다. 그래서 이 앞에 부분은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간략하게 넘어가고, 그 다음 부분을 더 세밀하게 다루겠다. 이 책이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되어서 너무 좋다. 요한계시록 강의안을 펴 주시기 바란다.
* 요한계시록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쓰여 졌다.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지만 첫 번째 포인트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과거 수 년 동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부터 무시되어온 책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제가 이해하기로 지금 이 시대 가운데 가장 주목되어야 할 책 두 가지가 요한계시록과 아가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그 두 가지 책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제가 이해하기로 이 두 가지 책을 같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열적이고 열정적이신 사랑하시는 아가서의 예수님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의로운 심판자이신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가서에서 그 분의 신부를 향한 사랑의 열정을 표현하시는 그 분이 재림하실 때 이 영토를 다시 취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표현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계시록 1강의 D 강의를 살펴보겠다.
D. 요한계시록에 대해 잘못 이해되고 있는 상투적인 거짓 의견들: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거짓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관계없는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뒤에는 여태까지의 세대들이 모두 자기들이 마지막 세대라고 알아왔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각 세대마다 소수의 그룹들이 자기들이 말세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온 때라고 전 세계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실이다. 제가 전심으로 믿는 바는 저희는 자연적인 역사 가운데 예수님이 오시는 세대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요한계시록의 시대에 살고 있다.
두 번째로 잘못 알려진 것은 요한계시록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상징적인 표현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미래에 대한 것을 계시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계시되어 있는 순서대로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어떤 내용이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하신 부분은 우리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한계시록에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그것이 상징적이라고 아주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거짓된 부분은 이 요한계시록이 학자들에 의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내용을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서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성령님께서 이것을 읽고 행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아주 특별하게 명시해 두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습관화 하기 권면해 드린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정도를 빼서 이 요한계시록을 읽는 습관을 들여라. 저는 큰 소리로 소리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이것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여러분들이 요한계시록을 계속 반복해서 읽어가실 때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변화가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분이 점점 더 큰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한 흥분이 점점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책을 이해하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시각도 바뀌게 된다.
* 주님의 날 : 예수님 재림 세대의 두 극단
요엘서 2장에 보면 그 날은 심히 크고 두렵다고 나온다.
11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신자들에게는 위대한 날이 되며, 사단에게는 아주 무서운 날이 될 것이다. 환란이라는 것이 우리를 무섭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환란 가운데 이 땅에 있겠지만, 그 환란이 신자들을 향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환란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두움의 왕국에게 내려지는 그런 것이다. 실제로 그런 중에도 많은 신자들에게 어떤 핍박과 순교를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이 때가 아주 놀라운 영광의 시간이 된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때이다. 교회가 자신의 영광의 자리로 나아가는 때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새로운 차원의 정결함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가장 높은 차원의 영광 가운데 있을 것이다. 이것이 위대한 측면이다.
그와 동시에 어두움의 세계에도 그 표현력에 있어서 가장 극단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 분이 주신 위엄성에 대한 약속이 이미 주어져 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것 중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회에 나타나시고 교회가 영광스럽게 되는데, 적에게는 왜곡된 영광의 극단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의 영광과 어둠의 세계에서 왜곡된 영광을 보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왕국의 전쟁이다. 빛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의 전쟁인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날이 아주 위대하지만 또 무서운 날이다.
환란의 때는 하나님께서 어둠의 세계에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실제로 그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어둠의 왕국에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로 이를 수 있도록 자극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라 할찌라도 그 사람이 벌 받는 것을 인해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그들의 죄는 심판 받아야만 한다. 그 사악한 것들이 다루어져야만 한다.
* 요한계시록의 개요 : 크게 4부분으로 나뉨
요한계시록은 4가지의 큰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가 예수님의 장엄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요한이 위임을 받는 내용이다. 우리가 이 책을 보면서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 책 전체가 예수님에 대한 계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구상에 모든 통치권을 취하시는 것이 그 분의 영광이다. 그래서 이 책이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계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편지이다. 세 번째는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두루마리를 받는 부분이다. 6장~22장까지가 그 분의 왕국이 오는 것을 나타내는 점진적인 줄거리이다. 이번 주에는 6장~22장 사이에 있는 이 땅 가운데 일어나는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여러분이 특별히 로마숫자 3,4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권면한다.
여러분이 그것을 더 많이 읽으시고 더 친숙해 질수록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 기억해야 할 가장 주된 것은 이것이다. 요한계시록의 6장~22장 사이에 5 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5단락들이 순차적으로 번역된 것들이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성령님께서 요한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영화 같은 것을 보여주신다. 처음 부분에 순차적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보여주고 계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가 보면 그 농도가 아주 강하다. 그래서 순차적인 단락 후에는 약간의 휴식시간들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해설 단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본다면 우리 마음 가운데 두 가지 질문이 일어날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가혹하셔야만 하는가?’ 두 번째 질문은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다. 이토록 가혹한 일들이 지구상 가운데 일어날 때 신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해설단락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이다.
첫 번째 순차적 단락은 일곱 인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시간 가운데 신자들이 어떻게 보호 받는가에 대해서 천사가 설명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곱 나팔에 대한 내용 후에,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주는 영광에 대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마음에 가장 감명 깊은 내용이다. 이 단락에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다. 신자들이 들림 받는(휴거) 부분이 있다. 그 분의 형상으로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 악한 자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우리들을 세우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천사가 또 일시정지를 시키고 바로 이러한 일들 때문에 이것이 이토록 가혹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네 번째 순차적 단락은 일곱 대접을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단계이다. 그리고 또 다시 해설로써 왜 이렇게 가혹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서 온 땅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써의 예수님이 나타난다. 어두움의 세계를 완전히 이기시고 왕 중의 왕으로 보좌에 계신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어지는 해설은 교회의 승리와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는 것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실제로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역사가 미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사도행전과 아주 유사한 면이 있다. 우리가 만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마자 있었던 초대교회 때 살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가 그 때 살고 있었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는가? 우리들이 앞으로 있을 핍박들이 무엇인지를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안다고 생각해 보라. 성령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그것을 제공하셨다. 요한계시록이라 불리우는 마지막 때를 위한 사도행전을 저희에게 주셨다.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앞으로 역사가 전개될 책이라고 하신다. 우리에게 아주 도움이 될 것이고, 아주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저희로 무섭지 않도록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 전 세계적으로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날 때 우리 마음 가운데도 공포심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한 공포심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유는 앞으로 우리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두려움을 다루기 위해서 저희가 힘써야 되는 부분이 있다. 저희가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수록 우리가 평안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길 이것을 미리 알려주겠다고 하신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전례에는 없었던 나의 힘을 너희에게 나타내겠다. 능력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알지 못했던 권세 가운데 여러분이 행하게 될 것이다. “적이 몇몇의 신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찌라도, 너희가 나를 신뢰하는 가운데 두려움 없이 견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따라 일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할 때, 저희가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전개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때 하나되어 같이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격려가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없었던 높은 차원의 하늘의 계획과 동의하는 가운데 우리가 기도하게 될 것이다.
* 해설 단락에 사용된 일곱 상징들
이 상징들이 실제로는 몇 가지 안 되고, 우리가 이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용은 항상 사단 그 자체를 상징한다. 각각 상징들에 대해서 여러분들께서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제가 성경구절들을 적어 놓았다. 제가 이 강의 동안 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요한계시록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소개해 주는 것이다. 제가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 강의를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 중에 두루마리를 받아서 먹는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이것에 묵상하는데 시간을 보내시기 바란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 이해하는 영이 임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두 가지 짐승이 나온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이다. 그런데 이 용과 처음 짐승과 또 다른 짐승 셋이 삼위일체의 거짓된 모습이다. 용,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거짓된 표현이다. 이것의 목적은 진정한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의 시야를 돌리는 것에 있다. 그리고 용에게 있는 일곱 개의 머리에 대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스라엘에게 아주 심하게 혐오를 가져왔던 일곱 개의 제국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는 혐오감이 고조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0개의 뿔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게 되는 10개의 나라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의 음녀가 있다. 이것은 거짓 종교 체계이자 경제적인 거짓 체계이다. 세상적인 시스템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음녀 체계를 아주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바벨론의 음녀를 싫어하시는 가장 주된 이유는 이 음녀가 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도록 유혹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멀어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피로 취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음녀 체제를 아주 미워하시며 그것을 파괴하실 것이다. 그리고 여인과 남자 아이가 나온다. 남자 아이는 예수님이며 철장으로 만물을 다스리실 분이다. 여기에서 여인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충성된 자들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개의 복이 있다.
* 1부/ 서론(계1): 예수님의 장엄함을 기록할 요한의 위임 명령
로마 숫자로 6번 단락이다. 요한이 받은 위임 명령이다. 저는 이 요한계시록 1장 1절의 표현을 아주 좋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제가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에 아주 핵심적인 겸손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너무나 위대하고 장엄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님께서 이제 그것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고 할 때까지 겸손하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것과 병행하는 이사야서 42장의 말씀이 있다.
42장의 첫 번째 부분이 예수님에 대해 우리가 아주 친숙하게 알고 있는 구절이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사42:1~4)
예수님의 계획은 세상 끝까지 그 분의 공의를 베푸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사악함에 대해서는 처벌하시겠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기쁨이 온전케 되고 영광이 온전케 된다. 그런데 그 분이 초림 하셨을 때는 아주 조용하고 겸손하게 오셨다. 그 분이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제가 늘 놀라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아픈 사람들을 고치시면서 그것을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부분이다. 그 분은 어떤 공적인 사역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아버지의 심령을 나타내기 위해서, 순종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리고 희생으로 그 분의 삶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두 번째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찬양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그 분의 백성에 대한 그 분의 질투에 대해서 나와있다. 열방 가운데 있을 경배 운동에 대해서 나타났다. 섬들이나 해변 주위에서 경배가 나타날 때 13절에 내용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다시금 임하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겸손하고 조용한 분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실 것이다(13절). 여기에 예수님의 겸손함이 나타나 있다. 예수님께서 2000년 동안 그 분이 표현하는 것을 참고 있으신 것이다. 겸손함 가운데 그 분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복음의 메시지가 온 땅 가운데 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말씀하신다.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부르짖을 것이다.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다.” (14~15절).
이 구절들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놀라운 강인함에 대해서 나타나 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너에게 계시를 주는데 아버지께서 마지막 때에 나타내기 원하시는 나에게 주신 계시를 너에게 준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 부드러운 모습의 예수님과 왕으로 오실 예수님의 강인한 모습이 같은 예수님이다. 사랑으로 동기부여 받은 예수님이다. 이 땅 가운데 모든 것을 올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동기로 오시는 것이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보면서 공부하게 될 때에 우리 마음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도록 이끌 것이다. 그 분의 부드러운 모습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써 강인한 모습의 예수님을 또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성경 구절에서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설명이 성경에 150여 개의 장에 나타나 있다. 여러분이 IHOP사이트에 가시면 이 장들에 대한 정보를 받으실 수 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성경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앞으로 다가올 때에 대해서 나타나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2부/ 일곱교회를 향한 편지(계2-3) : 이기는 자들을 위한 권면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영감을 준다.
* 3부/ 천상의 회의(계4-5) : 예수님께서 7인 박힌 두루마리를 받으심
* 첫째 연대순 단락 : 심판을 위한 6개의 인
요한계시록 5장에서 주님께서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으신다. 그 두루마리는 다름 아니라 지구에 대한 소유권, 권리증서이며 마지막 때에 있을 계획이 적힌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이 하실 일에 대한 전략적인 실행계획이 있으시다. 많은 정보가 담긴 이 부분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두루마리가 어린 양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저는 이 부분을 아주 좋아한다. 이 성경 말씀이 사자의 손에 그 두루마리가 주어졌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 양이 표현될 때는 언제나 예수님의 겸손하신 부분에 대해서 나타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그 분 자신을 순종 가운데 내주신 예수님. 아가서 2장에 너의 인생에 내가 보호막을 내렸다고 하신 예수님과 동일하신 예수님이다.
“내가 너의 위에 덮은 그것은 사랑이다. 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 중에 하나는 이러한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통해서이다.” 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그 분의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 인들이 차례차례로 예수님을 통해서 열어진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심판들이 이 땅에 내려지게 된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사건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실 때, 주님의 말씀이 진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제가 상상하기는 모든 신자들이 모바일을 통해서 주님의 소식을 알리는 모습이다. 이것이 전 교회에 다 일어나게 될 일들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순차적으로 이런 일들을 이루시는 주님의 전략이다.
인봉의 심판과 나팔 심판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7번째 인이 나팔 심판을 포함하고 있다. 여러분들 중에서 러시아 인형을 보신 분들이 있는가? 바로 일곱 인이 그것과 같다. 일곱 번째 인은 그 자신을 열어보면 별 내용이 없지만 그것을 열면 또 다른 심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곱 번째 나팔 심판 또한 그렇다. 아주 큰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의 휴거이다. 이것이 또한 일곱 대접 심판을 포함한다. 다시 인봉으로 가겠다. 인의 심판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데, 그것은 아주 심하다. 그래서 거기서 잠깐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천사가 그 때 설명한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누가 설 수 있느냐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천사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신자들이 보호되었는지, 이 때에 신자들이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를 보여준다.
* 둘째 연대순 단락 : 6개의 나팔
인의 심판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악한 부분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다시 말하면 인 심판 가운데 일어난 일들은 사악한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악한 일을 하는 것이다. 아주 심한 부분이고, 많은 어려움들을 야기시킬 것이다. 그런데 나팔 심판으로 가면 그 심하기가 더 심해진다. 왜냐하면 이 심판을 하시는 그 가운데 영계를 동원하시기 때문이다. 인봉 심판 때는 사람들의 사악함이 작용하는 것이고, 나팔 심판 때는 어두움의 영계의 권능들이 풀어지는 것이다. 사악함의 심판을 행하는 가운데 어두움의 영계가 있고, 또 천사들이 작용한다. 그런데 이 모든 시간대 가운데 신자들은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예언 운동이 아주 온전한 권능 가운데 나타난다. 요한이 나팔 심판의 가혹함을 보면서 주춤할 때, 천사가 요한에게 예언사역의 권능과 영광이 어떨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주 강한 보호하심과 지혜와 계시들이 풀어질 것이다.
* 셋째 연대순 단락 : 교회의 들림받음
예수님이 이 지구 대기를 뚫고 들어오시는 부분이다. 마지막 나팔 소리. 우리가 마음 가운데 이것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써 역사를 개입하러 다시 오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개입하실 때 시간이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 때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모든 적들이 그 순간에 확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 대기를 그 시간과 장소 가운데 전사로써 다시 임하신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분은 사람이기도 하시다. 어두움의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서 하늘의 천상의 군대를 이끌고 오시는 것이다.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면 천사들이 땅 끝에서부터 우리를 이끌기 위해서 나아온다. 그것은 우리의 큰 소망의 날이다. 우리가 구름 가운데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들림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우리가 그냥 천국으로 가 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이 땅에 군대로 오게 된다. 어두움을 이기면서 이 땅을 행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행군하며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 셋째 해설 단락 : 영계의 전쟁
이 개입이 이토록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도록 우리를 들어 올리실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일하게 지구에는 아주 가혹한 날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무기들을 동원하고 오시기 때문이다. 대접 심판 때에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직접 심판하시기 위해서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전에 있었던 인봉 심판은 사람들의 사악함으로 인한 것이었고, 나팔 심판은 영계가 악을 처벌하는 부분이며, 대접 심판 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때이다. 그래서 각 단계마다 가혹한 정도가 가중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가 다시금 요한에게 왜 그것이 그토록 가혹해야 함을 설명해 준다.
* 넷째 연대순 단락 : 하나님 진노의 일곱 대접
이 모든 것에 주된 목적이 사단의 체제에 기반을 부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늘 군대의 우두머리로써 대기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30일 동안 실제적으로 이 땅을 행군하시면서 그 분의 적들을 이기시면서 진행하시는 기간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 열방 가운데 행군하실 때 일곱 개의 대접들을 푸시는 것이다.
* 넷째 해설 단락 : 바벨론의 멸망
천사가 요한에게 이토록 가혹한 심판은 바로 바벨론을 멸망 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설명한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요한에게 설명해 주시는 내용이 바벨론의 음녀의 중심이 얼마나 사악하기에 이토록 가혹한 심판이 필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 다섯째 연대순 단락 : 천년왕국, 새 땅
적그리스도와 그 군대를 불 못으로 던지신다. 실제로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불 못에 던지고 적그리스도의 군대의 사람들은 죽이신다.
* 다섯째 해설 단락 : 이 땅의 새 예루살렘
이 마지막 부분에 핵심적인 것은 아버지께서 직접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열망이시고 계획이시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하나님이요, 그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 대해서 아주 친숙해 지기 전까지는 이 책의 내용이 조금 이상한 동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공부한 저의 과거 수년 동안 있었던 제 경우를 말씀 드리겠다. 저는 이것이 아주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꼭 여기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가 우리가 내일 하게 될 약속된 일처럼 여겨진다. 여러분이 이것을 더 연구할수록 여러분의 영 가운데 이것이 더 실제화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기대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그 당시 신자들에게 썼던 편지의 내용이다. 이러한 일들이 다가올 것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시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살 길이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평강의 영을 주고, 우리가 이해하는 가운데 하나된 영으로 함께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대하는 가운데 우리 영 가운데 큰 기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