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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참고말씀: 창33:28; 35:10; 왕하10:10,11; 렘20:8,9; 호2:4; 4:12; 5:4; 11:8; 14:1; 눅1:38
읽을말씀: 호1:1-11; 2:1
주제말씀: 호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첫째,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호1:2)
호세아는 언제 어디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입니까? 남(南)왕국 웃시야(주전 790-739)와 요담(주전 751-736), 아하스(742-725), 히스기야(주전 728-697)가 통치하던 시기이자, 북(北)왕국 여로보암 2세(793-742), 스가랴(주전 753-752), 샬룸(주전 752), 므나헴(주전 762-742), 브가히야(주전 752-740), 베가(주전 752-732), 호세아(주전 732-722)가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절)
그는 주로 어디에서 활동했습니까? 북왕국 이스라엘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무엇이었습니까? 음란한 여자를 맞아 결혼생활을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2절 상)
여기서 ‘음란한 여자’(히, 에쉐트 제누님)는 ‘음란한 자들 중의 아내’라는 뜻을 지니는데, 본 절에 나타난 것처럼 북이스라엘 전체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하고 있었으므로, “...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2절 하) 호세아는 필연적으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본 절의 ‘음란’이란 단순히 음탕한 기질이 있다는 게 아니라 무질서하고 방만히 행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 단어는 본서에서 주로 우상을 섬겨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부패상을 지적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호2:4) /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호4:12 하) /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한 까닭이라.”(호5:4)
그러나 상황이 이러할지라도 하나님의 이 같은 명령은 너무 고통스럽고 가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아무리 북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 크게 방만하고 무질서해졌다고 하더라도, 선지자의 아내로 합당한 신실한 여인을 골라주실 법도 하신데 전혀 그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2절 중)
왜 이 같이 하신 것입니까? 이 같은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깨닫고,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정을 온전히 대언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호14:1)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순종해야 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에라도 끝까지 신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3절) /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8)
둘째,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 말씀이면 받아들이고 선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호1:4,5)
하나님은 호세아의 자녀들 이름을 순서대로 각각 무엇이라고 짓게 하셨습니까? 장남은 ‘이스르엘’, 중간은 ‘로루하마’, 막내는 ‘로암미’입니다.
장남의 이름을 왜 ‘이스르엘’로 짓게 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4절 상) 비슷한 음가를 지닌 ‘이스라엘’이 축복의 이름(창33:28; 35:10)인 반면에, ‘이스르엘’은 아합의 왕가가 예후에게 멸망당한 곳이자,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왕하10:10,11)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패망을 상징하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호1:4,5)
그리고 왜 둘째의 이름을 ‘로루하마’로 짓게 하셨습니까?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6절 상)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라는 의미처럼,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는 긍휼히 여기거나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6절 하)
끝으로 왜 막내의 이름을 ‘로암미’로 짓게 하셨습니까?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8,9절)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 이상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시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9절 하)
이는 이스라엘 족속 모두 멸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유다 족속은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7절 상) 무엇으로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까?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 등입니까?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만 그리하실 것입니다.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7절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고통스러운 내용이라도 하나님 말씀이면 선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8,9) 또한 무엇도 깨닫게 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 2하)
셋째, 고통 중에도 인내하면 회복의 날이 올 것임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1:10,11)
하나님은 심판의 날이나 진노의 날만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회복의 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의 수를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들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10절 상)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정하신 그 곳에서 그들을 다시 무엇이라고 부르실 것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10절 하) 회복의 징표로써 말입니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내 백성)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 하라.”(호2:1)
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을 사로잡혔던 곳에서 돌아오게 하되, 누구를 세우고 함께 모여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까? 한 지도자입니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11절 상) 무슨 말입니까? 더 이상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대결하지 않고, 서로 하나 되어서 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날을 크게 하실 것입니까? 이스르엘의 날입니다.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11절 하) 이스라엘의 패망을 상징하는 이름을 이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고통 중에도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즉 고난의 날들을 잘 인내하면 반드시 회복의 날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의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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