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종말이 화사하다」를 읽습니다. 종말, 종언은 비장하지요. 시의 화자는‘마지막 꽃을 참하고 완결한 적막처럼’이라는 섬뜩한 이미지를 제시하면서‘날아가 버린 것이 새 뿐이 아니라면// 유정한 마침표 하나 세상 밖으로 던져진다’라고 낙화에 대한 애절함을 동적인 생명체인 새의 비상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픈 정경을‘유정한 마침표’로 의미 부여를 하면서 스스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세상 바깥’으로 내동댕이치듯‘던져진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군요. 피동형 서술어를 동원해 꽃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그런 정황을‘대낮에도 눈 부릅뜬 별이 다 보고 있다’고 하면서‘낭자한 빛의 여백 낙화가 여닫을 때’유심히 보니‘꽃보다 만발한 허공’이 눈에 들어오고 그 순간, 시의 화자의 뇌리에‘종말’의‘화사’함이 각인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화사한 종말, 눈부신 종언’을 꿈꾸어도 좋을 듯합니다.
「실밥」에서‘실밥’이라는 말의 어감이 미묘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애잔하거나 애절할 수도 있는 일상어이지요. ‘올 곧게 박은 인연 가위질한 매듭처럼/ 깜짝 놀란 곡선으로 꽃 다 보낸 저 꽃나무’에서 보듯 화자의 시선은 옷에 머물지 않고‘꽃나무’로 별안간 옮겨갑니다. 그것도 주목할 만한 구절‘깜짝 놀란 곡선’이라는 이미지를 슬쩍 제시해 놓고 뒤이어서‘헌 실밥 흔적만 남은 내 이승도 저기쯤’이라는 쓸쓸함으로 시의 화면을 채웁니다. 그리고 ‘꽃 진다 오후 네 시 무궁화호 열차 뒤로// 하동역 썰물같이/ 석양 빠져나간 자리’를 보여주면서 가슴 아리게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리운 이름‘무궁화호’, 정겨운‘하동역’으로 말미암아 울림은 더욱 깊어지는군요. 결구‘실구름 한 뭉치 멀리 너의 저승에 닿는다’라고 끝맺는 것을 보면서 애절함은 그 끝 간 데를 찾기 어렵게 됩니다. 이승과 저승이 함께 공존하는 시편이군요. 이 둘 사이를 실밥이 잘 드러나지 않게 맺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묘비」는 곧 불에 데일 듯한 느낌을 줍니다.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지요. 몹시 두드러지게 삶과 죽음을 노래하고 있기에 숙연하기까지 합니다. 인생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영원지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은연중 일깨우고 있군요. ‘적막의 끌탕을 견딘 맹목의 울음으로/ 매미는 단 한 번의 여름을 무덤 삼고/ 뜨거운 생의 중천에 제 묘비를 세운다'는 첫수부터 정신의 극점, 극단, 극치에 다다른 것을 봅니다. 또한‘막장의 지층을 견딘 불의 간절함으로/ 석탄은 단 한 번의 점화를 꿈꾸다가/ 뜨거운 생의 화덕에 제 묘비를 세’웁니다. 끝으로‘만년설 여백을 견딘 꽃 같은 점 하나로/ 아! 사내는 히말라야 빙벽에 매달린 채/ 뜨거운 생의 밧줄에 제 묘비를 세’웁니다. 각 수의 종장에 되풀이 쓰인‘뜨거운’과‘제 묘비를 세운다’와‘생의 중천, 생의 화덕, 생의 밧줄’이라는 주제를 확연히 부각시키고 있는 견고한 이미지들로 말미암아 이 시편은 삶에 대한 열망에 다시금 불을 지르게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박권숙 시인의 시조 세 편은 모두 삶과 죽음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래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멀지 않는 곳에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일찍이 시인은‘영웅도 또 그렇게 안개처럼 저물어/ 동풍이 밀려오는 이 산길을 먼 훗날/ 나는 또 무엇이 되어 기억해야 할 것인가’라고 「몰운대」에서 노래한 바 있고,「낙동강」에서는‘눈물이 펄럭’인다면서‘딸아, 어둠을 이기는 건 기다림의 힘이란다’라고 읊조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절절한 구절을 상기하면서 숙명과도 같은‘시인의 길’을 잠시 떠올려보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