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을 주의하라
마가복음 8:14~21
찬송가 292장(주 없이 살 수 없네), 405장(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달마누다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바리새인들로부터 비방과 시험을 받고서 그곳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벳새다로 건너가던 선상에서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세 가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인 교훈들을 잘 듣고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직전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달마누다 혹은 마가단 지방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다가 바리새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라는 시험도 받았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금방 다녀온 데가볼리 지역의 이방인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모처럼 자기 지방에 찾아오신 주님을 맞이하자 은혜를 사모하여 삼일 동안이나 갈릴리 곁 광야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삼일이 지나도 떠나지 않은 그들을 보내면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이방인들의 심령과 대조적으로 동족 유대인들은 모처럼 찾아오신 예수님을 반가워하지도 않고 도리어 시험하는 완악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매우 실망하여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고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떠나 배에 올라 건너편 벳새다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에 타고 가신 후에도 입을 다물고 한참을 침묵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무겁게 입을 열어 제자들에게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병렬구절인 마태복음 16:6 말씀에서는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 중에 ‘누룩’이라는 말에 잡혀서 못 가져온 빵들을 생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누룩’을 영적인 뜻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 곧 밀가루 제물에 누룩을 넣으면 안되었습니다. 또 유월절 명절과 무교절 명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을 전혀 넣지 않은 무교병 빵만 먹어야 했습니다. 그 명절에는 집안에 누룩이 하나도 없도록 치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누룩이란 죄를 상징하고 세속주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은 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훈과 사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종교적 교훈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성경 외에 인간의 종교적 지침들을 많이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그것들은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왜곡시킨 교훈들이었습니다. 또한 사두개파 사람들은 현실주의, 현세주의, 물질주의에 물들어서 내세도 없고 심판도 없고 천사도 없고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물질의 축복만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세상 권력과 타협하고 성경도 모세 율법 5경만 믿고 나머지 선지자들의 죄에 대한 책망의 말씀들은 일체 받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의 누룩은 변질되고 부패한 세속적인 교훈을 가리킵니다. 또한 헤롯의 누룩이란 당시 헤롯 왕가를 중심으로 나라를 지켜가려고 하는 정치 운동과 그 이념을 상징하였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혈통이 아닌 에돔의 혈통인 헤롯 왕가를 통하여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의 누룩은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현실정치적인 인본주의 교훈이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 당시에 다양한 종교와 정치 철학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바르고 분별있는 성경적 진리를 따르는 데 큰 방해가 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서 분별하여 성경의 가르침과 그 정신에 합당한가를 잘 분별하여 물리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이런 저런 가르침들이 성도들 귀와 눈을 현혹하곤 합니다. 정치적 이념에 기울어진 상반된 교훈들이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기도 합니다. 또한 세속주의적이고 물질중심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교훈들이 성경적 용어들을 입혀져서 강단에서 선포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지상에 계실 때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는 경고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상에서 제자들에게 입을 열고 무겁게 가르치신 이 교훈을 마음 깊이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유행하는 여러 종류의 누룩들을 조심하여 깨끗하고 정결하고 옳은 진리로 무장한 성도들이 됩시다.
둘째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독백처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제자들이 모아두었던 떡을 안 가져왔다고 걱정하는 것을 보시자 주님께서는 답답하셔서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라고 하면서 지난번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얼마든지 먹거리를 제공하실 수 있는 분이니, 먹거리 때문에 염려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냐는 책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얼마든지 주시는 분입니다.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다 알고 계시고, 공중의 새도 다 먹이시고 들판의 들꽃들도 다 입혀주시고 계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의식주에 대하여 염려와 근심은 일체 내려놓으십시오. 오병이어 때나 칠병이어의 기적 때에도 주님께서 그 회중들이 혹시라도 기진할까봐 혹시라도 먹지 못해서 쓰러질까봐 먼저 염려하시고 선제적으로 이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먼저 염려하시고 더 먼저 조치를 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맙시다.
셋째로, 절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때에도 이르신 말씀에,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12)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남은 것을 거두어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이번에 칠병이어의 기적 때에도 사천 명이 먹고 남은 것들을 다 거두게 하여서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제자들을 교훈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얼마나 거두었는가를 물으시고 정확히 그 개수에 대한 제자들의 답변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만큼 예수님께서 부스러기까지도 소중히 여기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낭비하는 것 좋아하지 않습니다. 절약하고 소박한 삶을 선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을 소유하거나 과시적인 목적으로 화려하고 값비싼 것을 구입하는 것이나 유행만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본을 보이시고 가르치신 바 소박하고 절약하고 아끼는 삶의 방식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가 필요할 때에 그 아껴 모은 것들을 쓸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것들을 가지고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교훈에 담긴 세 가지 교훈을 우리도 마음에 새깁시다. 우리가 듣는 바 교훈들을 잘 살펴서 거기서 우리의 신앙적 진리를 부패하게 하는 각종 누룩을 살펴 내버리도록 합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삶의 필요를 주님께서 다 채워주실 것에 믿음을 갖고 안심합시다. 그리고 필요 이상 많이 갖고 낭비하려는 것 대신에 있는 바를 족하며 소박하고 절약하는 삶의 방식을 살아갑시다. 그렇게 할 때에 이 시대의 현란한 풍조와 세속적인 풍조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과시하려는 풍조 속에서 자유롭게 되고 우리 자신이 행복하며 또 다른 이들도 행복하게 만드는 주님의 제자들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