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트롯으로...데뷔 10주년 장민호의 인생
장민호 上 <인생>
입력 : 2021.04.23
1990년대 미국에 푸드 네트워크라고 음식 전문 채널이 개국했다. 시작은 초라했다. 뉴욕시의 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집에서 쓰는 조리도구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강사진은 화려했다. 나는 유명 셰프들이 나와 하나하나 기본부터 가르쳐 주는 것을 무엇에 홀린 듯 봤다.
“How to Boil Water(물을 어떻게 끓여야 할까)”라고 낫 놓고 기역 자부터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요즘이야 인터넷에 들어가 ‘초콜릿칩 쿠키’ 한 번 치면 레시피 수 만 가지가 주르륵 뜨지만 그땐 레시피 하나를 구하려면 쿡북 한 권을 통째로 사야 했다. 돈을 아끼려 책방에서 쿡북 속에 필요한 레시피를 찾아 살짝 적어오거나 짧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암기과목 외우듯 외워서 마구 집으로 달려와 적곤 했다.
이에 반해 푸드네트워크에서는 쇼 에피소드 번호를 적어 반송 봉투와 함께 보내면 꼭 필요한 레시피만 프린트해서 보내 줬다. 우편 보내고 레시피 받으려면 약 한 달 정도 걸렸다. 레시피가 오면 그걸로 텔레비전에서 강사가 했던 것들에 주의 하며 음식을 만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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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조차 이상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는데 이 때 음식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여 지금껏 나 나름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취미를 갖고 있다. 이제 칼질도 훨씬 잘 하고, 재료도 척 보고 신선한 것을 고르는 재주도 생겼지만, 내가 사용하는 테크닉의 거의 다는 그 시절 푸드 네트워크를 보며 배운 것이다.
현대인들의 음식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겸손하게 시작했던 푸드 네트워크 채널이 돈을 벌고 몸집이 커졌다. 이제 음식의 기본을 가르치기보다는 아예 음식은 만들지도 않고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으러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만 하는 프로그램을 잔뜩 만들었다. 그것도 눈요기 거리가 되고, 응용할 새로운 테크닉을 배우니 그리 나쁘지 않다 치자.
음식을 만든다고 하는 프로그램들은 전부 본 재료는 실종되고 이상한 소스를 떡칠한 정체불명의 음식을 만들어 서로 짓밟고 올라가 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게임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푸드 네트워크에 흥미를 잃었다.
미국의 어느 유명 셰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로 시작하는 서바이벌 쿠킹 쇼 선전을 하기에 “모든 음식 만들기를 경쟁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까?”라고 써 줬더니 ‘좋아요’가 순식간에 백 개가 넘었다. 나처럼 푸드 네트워크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내가 어려서부터 즐겨 듣던 가요에 시큰둥해 진 것도 늘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무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다. 신곡이 나와도 사이클이 짧아져 한 달, 길어야 두 달이면 잊히고 연말에 그해 나온 노래 중 기억나는 노래 다섯 곡 꼽기도 힘들다.
요즘은 신곡의 시대라기보다는 고전이 된 가요의 재해석 시대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건 좋다. 귀에 익은 아름다운 노래 새로 해석해 부르면 또 새로운 맛이 난다. 문제는 텔레비전 쇼가 모두 콩쿠르가 되어 버리고 석 달 넉 달 걸려 우승자 뽑으면 한 달도 못되어 그 우승자는 사라지고 시청자들은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달려 응원 하는 것 때문에 흥미를 잃었다. 그러던 내가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도사가 될 줄은 몰랐다.
트롯 오디션 열풍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던 2020년 연초. 모두 집에 들어앉아 텔레비전만 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열풍은 대단했다. 나도 그 열성분자 중 하나였다. 그 전 해 원년 《내일은 미스트롯》도 제목이 특이해 조금 봤다. ‘이제 하다하다 트롯 오디션까지 생기는구나’하며 약간 비아냥거리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정미애의 목소리에 반해 계속 보게 되었다.
《내일은 미스트롯》이 끝나고 《미스터트롯》이 시작할 때만 해도 또 몇 달 매달려 볼 마음이 없었다. 어머니가 예선전을 보시기에 그냥 옆에서 말동무 하며 맞장구나 쳐 드리는 심정으로 같이 보다 빠져들었다. 예심까지만 보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미국에서도 할 일 없이 집안에 갇혀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므로 인터넷으로 열심히 시청 했다.
나태주.
나는 처음에 나태주를 응원했다. 이소룡 세대인 나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내일은 미스터트롯》으로 빠져들게 만든 것은 ‘누가 더 좋다’ ‘누가 우승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었다. ‘아니 우리나라에 노래 이렇게 잘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어?’였다.
예선전 진과 선을 나눠 가진 김호중과 임영웅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그밖에도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실력자들이 오랜 시간 무명의 설움을 견디고, 몇 번이고 포기하려다 다잡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었다.
장민호도 그 중 하나였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의 레이더에 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 예선전에서 장민호를 볼 때는 어머니가 큰소리로 계속 “어머머, 어머머, 저 사람은 어쩌면 얼굴이 조각 같이 생겼냐”고 하시는 통에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미국에 가서 본선 1차전 팀미션을 보니 장민호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서는 오히려 신성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의 느끼한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울렸다.
트롯계의 '메릴 스트립' 장민호
《내일은 미스터 트롯》 레젠드 미션에서 '상사화'를 부르는 장민호. ©TV조선 캡처
레젠드 미션에서 <상사화>를 부를 때는 마스터들이 “장민호 작심하고 나온 것 같다”는 등의 칭찬을 했다. 나는 노래를 못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장민호의 목소리는 임영웅처럼 윤기가 자글자글 도는 미성은 아니지만, 목소리 안에 이미 한도 많고 스토리도 많다.
이런 목소리에 너무 많은 것을 인위적으로 집어넣어 노래를 했다. 굽이굽이마다 힘을 줘서 노래가 흘러가지 못하고 자꾸 막혀 답답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그가 결승에 올라가기를 바랬다.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참가자 중 최 연장자가 여태 열심히 쌓아올린 이름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장 나이 어린 정동원과 1:1 대결에서 좋은 멜로디 다 양보하고 부르는 모습이 좋기도 했다. 결국 장민호는 결승에서 6등을 했다. 경연이 모두 끝나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가 시작하면서 매주 장민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은 그저 잘생기고 마음씨 좋고 숨은 선행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 말고 별로 없었다.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상을 탄 배우들이 수상 소감 중에 가장 자주 감사하는 인물이 메릴 스트립이라고 한다. 촬영현장이나 일상에서 늘 동료 배우들을 음으로 양으로 배려하고 돕기 때문이다. 경연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장민호를 경연 중 정신적 버팀목이었다고 꼽을 때는 “대한민국의 메릴 스트립인가”했다.
정동원이 “민호 삼촌은 카메라가 돌아갈 때와 안 돌아갈 때 사람이 똑같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나름 감동하기도 했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거울이라는데 그 거울에 비친 장민호의 모습이 그런 사람인가 싶었다.
돌고 돌아 트롯으로...가수 데뷔 10년 차
©TV조선
내가 가수로서의 장민호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쑥대머리>를 들었을 때이다.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하루 종일 내 머리 속에서 ‘쑥~대머리’하고 빙빙 돈다는 것은 가수가 그 노래를 잘 불렀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 무렵 《불후의 명곡》에 출연 해 <남자의 인생>을 부르는 것을 보고 ‘내가 장민호를 너무 과소평가 했나보다’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 기대치도 그만큼 더 높았지만 울컥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올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 경연 때는 음폭이 넓지 못하다고 생각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노래 후반부 고음으로 5번 치고 올라가는데 입이 쩍 벌어졌다. 웬만큼 탄탄한 발성이 아니면 구사하기 쉽지 않은 테크닉이다. ‘왜 저 노래 경연 때 안 불렀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들으니 실은 인생곡 미션에서 <남자의 인생>을 부를까 <남자라는 이유로>를 부를까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고 한다.
내 욕심으로는 <남자의 인생>을 불렀다면 더 좋았을 것을 했다. 하지만 그때도 《불후의 명곡》에 출연 했을 때처럼 힘 쭉 빼고 정말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때는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집에 가 ‘캔맥주 한 잔’ 하며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행복을 느끼려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다 길에 쓰러져 죽을 듯 여기저기 힘을 잔뜩 넣어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경연 때 그렇게 힘주어 부르던 <상사화>는 요즘 부르는 것을 들으면 어찌나 여유 있고 깊이 있게 부르는지 스르르 눈을 감고 감상하게 된다.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TV조선
얼마 전 장민호가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에서 <인생>이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첫 대목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라고 부르는데 내가 일면식도 없는 장민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착각을 했다.
아이돌 그룹, 발라드 그룹 하는 것 마다 실패하고 생계를 위해 수영 강사도 하고 항공사 승무원 준비까지 했다던데 그래도 돌고 돌아 트롯 가수 데뷔 10년 만에 이 자리에 섰다는 것. 그걸 운명이 여기까지 장민호를 데려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장민호가 자신의 운명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해야 하나?
‘다시 가라하면 나는 못 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 가네’라고 할 때는 미국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장민호의 노래를 듣던 나조차 고개를 끄덕거렸다.
‘못 가지, 못 가. 그 세월을 다시 살라고 하면 못 살지’ 노래를 포기 못해 또 똑같은 선택을 하며 힘들게 살았을테니까. ‘지는 해에 실려버린 내 사랑아. 바람처럼 사라져간 내 인생아. 아, 사랑이여. 묻어버린 내 청춘이여.’ 언젠가 장민호가 성공을 위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있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사람에게 인생이란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한창 열심히 일 할 40대 초반이던 때 성공의 길과 인간적인 길이 갈라지며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 적이 있었다. 매일의 삶이 힘든 선택이었다. 선택을 한 뒤에는 선택의 결과로 뒤쳐진 것들을 따라잡는데 치열하게 열중하다 내 40대가 다 가는 줄도 몰랐다. 장민호의 젊은 날도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때는 까짓 젊음 희생할 수 있다 생각 했을 수도 있다.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을 보상받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되니 그 무엇도 청춘을 돌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 아쉬울 것이다.
요즘 그가 진정 노래를 즐기며 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백 번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도 다른 길을 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젊은 날로 다시 못 가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운명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어떻게든 지금의 이 자리로 왔기에 그래도 후회보다는 뿌듯함이 더 클 것이다.
사랑? 꼭 젊어서 해야 하나? 오늘은 내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사랑은 몇 살에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든 살에 만나 하루를 살아도 인생을 가득 메울 사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랑은 다시 오라 나를 부르고 인생은 눈물 되어 나를 떠미네.’ 이제 세상이 그를 격려한다.
그가 <인생>을 다 불렀을 때 내 마음 속에 그의 인생을 무대로 소설이 한 편 탄생했다. 영어에 ‘Here to stay’란 말이 있다. 잠깐 왔다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구히 남아 우리 삶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 장민호는 더 이상 이 오디션 저 오디션 철새처럼 떴다 사라지는 오디션 스타가 아니다. 지난 20년을 견디며 서 있었고, 트롯 가수로서 10년 경력을 쌓았다. 단지 늦게 빛을 보는 것뿐이다.
이제 사랑받는 가수로서 ‘Here to stay’이다.
장민호가 부른 <인생>. ©TV조선 유튜브
글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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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사슴 ( 2021-09-18 )
하편 먼저 보고 찾아왔습니다. 읽으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사람이 노래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는 동일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기하게도 장민호가 부르는(선곡한) 노래들은 내가 그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마치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힘이 어디서 오나 싶었더니 그냥 장민호의 스토리 자체, 절절한 감성,탁하면서 애절한 음색 그리고 감정을 잘 전달하는 표정 등이 있더군요. 그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장민호가 참 좋습니다. 작가님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가수,장민호가 작가님 말씀처럼 대운이 흘러가는 70대에도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 시기를 회상하며 계속해서 좋은 노래들을 불러주길 간절히 바란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