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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후 다시 찾은 능선과 계곡
부석사-△819.5-봉황산(822.0)-x787.6-갈곳산(954.5)-x826.2-늦은목이-선달산(1239)-x1228.8-x1097.5-x978.3-△906.5-지계곡-칠룡동계곡-내리계곡-늡다리-내리 종점(88번 도로)
도상거리 : 17km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화군 물야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도엽명 : 예미 영주
백두대간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 갈곳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봉황산을 지나며 남진하는 능선은 931번 도로가 지나가는 망간고개를 지나면서 고도를 낮추며 남동진 하는 능선은 봉화군 물야면의 만석산(△493.6)을 지나며 가평리 내성천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고 망간고개를 지나고도 남진하는 능선은 행계천으로 인해서 그 맥을 다하는 능선이 있다
또 선달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회암령 어래산(△1065.3) 곱돌재 △929.2를 지나며 와석천이 또한 마포천이 옥동천으로 합수하는 곳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어래단맥 으로 부르면 되겠다
또한 선달산 정상에서 박달령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x1228.8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906.5 x755.6m를 지나며 내리계곡으로 인해 그 맥을 다하는 능선도 있다
부석사에서 봉황산 오름은 출입금지로 되어있으나 등산로는 뚜렷하다
봉황산 정상에서 백두대간을 만나는 능선도 등산로가 뚜렷하며 큰 골곡이 없고 갈곳산 정상에 올라서면 백두대간을 만남으로 길은 더욱 뚜렷해지고 이정표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늦은목이에서 선달산 정상까지 상당한 표고차를 줄이며 올라야 하지만 등산로가 좋아서 꾸준하게 오르면 되겠다
x1228.8m를 지난 후 백두대간을 버리고 이어지는 능선 잘 찾아야하고 능선의 상태는 좋지 않지만 족적은 있다
△906.5m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는 지계곡 상태가 아주 좋지많지만 칠룡동계곡 내리천은 길이 뚜렷하다
영주-부석사간 06시10분 첫 버스는 풍기 단산 경유로 10분후 06시20분 출발하는 진우 경유 버스가 더 빨리 도착한다
내리 종점에서 영월로 가는 버스는 15시40분 18시30분 버스가 있고 이 버스를 타지 못할 경우 녹전택시로 녹전으로 이동 후 태백-영월을 오가는 직행버스나 석항 경유 영월도 이어지는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되겠다.
1/5만 지도 크게 보기
◁산행 후기▷
2019년 9월 1일 (일) 대체로 맑음
홀로산행
부석사는 2십 몇 년 전 갔던 기억이고 선달산이야 일반산행 백두대간 어래산과 단맥산행 등 수차례 올랐던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오른 것이 2000년대 초반이니 역시 오래되었고 칠룡동계곡 내리계곡도 아주 오래 전 홀로산행을 했었지만 산행 전 먹을 것을 빠트리고 가는 실수로 하루 종일 배고팠고 칠룡동계곡으로 하산하며 계곡 물만 마시던 기억만 나는 곳이라 부석사-봉황산-갈곳산을 엮는 코스로 오랜만의 이 쪽 산행을 계획한다
무더위 때문에 그동안 무박산행보다는 가까운 곳으로 짧은 산행으로 일관했기에 오랜만에 나서는 무박산행이 불편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21시03분 청량리역 출발 무궁화호에 승차 후 잠시 잠에 빠지지만 원주역에 승차한 몇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불편하게 영주역 도착 후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찜질방으로 이동하고 05시40분 쯤 영주여객 종점에 도착한다
06시10분 부석사행 버스는 풍기 단산 경유라 시간이 많이 소요하니 06시20분 진우 경유 버스를 타는데 몇 년 전 자개지맥을 종주하며 이용했던 버스다
06시53분 부석사 식당들과 가계들이 있는 부석사 종점에서 부석사로 향하며 발걸음이 시작되는데 2십 몇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때보다 일대가 화려하다는 느낌이다
입장료 2천원을 내고 울창한 가로수들 사이로 한결 선선함을 느끼며 경내로 향하려니 일주문 처마 저 뒤로 봉황산 자락이 보이고 사과의 고장답게 탐스러운 열매가 달린 사과과수원들도 보이고 당간지주를 지나고 천왕문의 계단을 따라올라 경내로 들어서서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사진에도 담는다
▽ 부석사 종점
▽ 부석사로 향하는 길
▽ 당간지주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작품이며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 천왕문
浮石寺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676년(신라 문무왕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18)·조사당(국보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 부석사 범종루는 누각식 문으로 아래층은 통로이고 위 측은 종이 현재 없지만 북과 목어를 걸어 놓은 건물이다 종루, 고루, 경루 등은 고대 사원에서는 중문 안쪽 좌우에 나누어져 누각식으로 지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부석사에서는 진입로 위로 세워 출입문을 겸하게 한 것이 특징적이며 일주문, 천왕문 다음으로 3번째 맞이하게 되는 문이다
▽ 경내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자개봉 멀리 국망봉 일대 소백산이다
▽ 삼층석탑은 부석사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옛 절터에 남아 있던 두 탑으로 1966년 이곳 부석사로 옮겨 세웠고 탑을 옮길 때 세워 놓은 비석에 의하면 서쪽의 탑은 익산왕궁리오층석탑(국보 제289호)에서 나누어 온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 부석사 경내
▽ 소백산을 배경으로
▽ 석등 및 경내
부석사 하면 무량수전이 유명한데 無量壽殿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다
부석사(浮石寺)의 본전(本殿)으로서 676년(신라 문무왕16)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였다
그후 몇 번의 중창(重創)이 있었고 조선 광해군(光海君1608∼1623) 때 단청(丹靑)을 하였다
이곳에는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데 무량수전의 건물이 남향(南向)인데 비해 이 불상만 동향(東向)인 점이 특이하다
추녀의 네 귀를 8각 활주로 받쳐주고 있다
전면(前面) 기둥 사이에는 중앙어간(中央御間)과 양협간(兩夾間)에 분합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고 단간(端間)에는 창문을 달았다
기둥에는 알맞은 배흘림이 안정감을 주며 간결한 두공(枓栱)과 우주(隅柱)에 보이는 귀솟음 수법은 건물 전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자잘한 정자살 분합문 위에 시원스런 포벽(包壁) 그 위에 가늘고 긴 기왓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불전(佛殿)은 1916년의 해체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1376년(고려 우왕2) 중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구조수법이나 세부양식이 묵서명 연대의 건물로는 볼 수 없고 적어도 13세기 초까지 올려볼 수 있다
그 이유의 하나는 같은 경내에 있는 조사당(祖師堂)이 1377년(고려우왕 3)에 건립되었다는 묵서명이 나왔고 이 건물과 비교할 때 100년 내지 150년 정도 앞섰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무량수전
▽ 부석
▽ 부석사 제일 높은 곳에서 바라본 자개봉 소백산 일대
▽ 조사전을 지나고 우측의 숲으로 들어선다
부석사 경내를 두루 살피며 서쪽 저 편 백두대간 고치령 동쪽의 x956.2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자개지맥의 자개봉(856.2)과 국망봉일대의 소백산을 보고 삼층석탑을 지나 조사전으로 오르고
07시24분 해발 약550m 일대 조사전 우측으로 들어서니 뚜렷한 길이 이어지는데 곧 큰 나무가 쓰러져 있어 피해가려다가 그냥 오르다보면 만나겠지! 싶어 그냥 어린 산죽들 사이로 북쪽의 가파름을 극복하며 오르지만 그 길은 어디로 사라진건지! 우측 아래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만 보이고 그냥 치고 오른다
그렇게 가파르게 표고차 70m 정도를 9분여 치고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족적을 만나니 송림들이 나타나고 5~6분을 더 오르니 해발 약670m 남서쪽 능선을 만나며 우측으로 틀어가려니 확실하게 넓은 등산로가 나타나니 아까 좌측 어디서 올라섰어야 일반 등산로를 만나는 것인가!
아무튼 능선 가닥만 보고 찾아가는 산행에 익숙해진 몸이라 딱히 등산로를 의식하지 않고 치고 오르다보면 이런 좋은 길을 만나고 그렇게 되면 몸이 더욱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넓은 등산로 주변은 노송들이 보기 좋고 좌측능선 분기점에서 15분여 표고차 130m 정도 줄이며 오르니 좌측(서) 卍칠보암 쪽 능선이 분기하면서 우측(동)으로 틀어 이후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면서 4~5분 진행하니
08시01분 좁은 공터를 이룬 곳 위에「예미24 2004재설」삼각점이 설치된 △819.5m며 실질적인 봉황산 정상을 대신하고 있지만 정상은 조금 위 x822.0다
남쪽 능선으로 뚜렷한 길이 보이는데 아까 오르면서 우측사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는데 그 길인지는 모르겠다
▽ 나무가 쓰러져있어 돌아가기 귀찮아서 바로 오르려니 급경사다
▽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나서 노송들 아래 좀 편안한 오름이다
▽ 삼각점이 반겨주는 △819.5m가 실제 봉황산 정상을 대신한다
▽ 도상 봉황산 정상인 x822.0m
봉황산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물야면 오전리와 영주시 부석면 복지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며 산 아래 부석사가 입지하는 모습이「대동여지도」에 잘 그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천)에 군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옛날에는 순흥에 속하였다가 이제 이 군에 귀속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순흥)에 관아의 북쪽 30리에 있다 태백산에서 뻗어 나와 부석사(浮石寺)의 주산을 이룬다 산꼭대기에 옛 성터가 남아 있어 다른 이름으로 왕산(王山)이라고도 부른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이 남쪽으로 피난 왔을 때 이 산에 올랐기 때문에 '왕산'이라 부른다고 한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러나 이 기록에서는 지명의 유래를 엿볼 수 없다
그런데 물야면의 오전리(梧田里)는 봉황산 아래 있는 마을인데 봉황은 '오동나무를 좋아하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오록리(梧麓里)는 봉황산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봉황새는 '오동나무를 좋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이 내용은 지명이 만들어지는 경위에 대해서는 시사하지 못하고 있지만 봉황산이 봉황과 어떤 관련성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산 이름을 볼 수 있다
땀을 식히며 막걸리 한잔하며 14분을 지체하고 08시15분 삼각점을 뒤로하며 북쪽으로 몇 걸음 내려서고 오르니 금방 x822.0 도상 봉황산 정상이나 삼각점 봉우리에 비해서 더 볼 품 없다
북쪽 나뭇가지 사이로 백두대간의 능선을 바라보며 울창한 수림아래 뚜렷한 길로 잠시 내려선 후 평탄하다가 1분 정도 올라서니 약805m의 좌측(서) 북지리 큰골 쪽 능선 분기봉은 하늘이 터지며 어린 소나무들이 자라난 헬기장이다
오르며 나뭇가지 사이 남동쪽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봉우리는 문수지맥의 이름을 낳게 하고 봉화 물야면 봉성면 춘양면의 경계를 이룬 곳에 솟아난 문수산(△1207.4)이다
2시 방향으로 틀어지면서 부드럽게 내려서는 능선에는 소나무 아래 철쭉들이 어우러지고 5~6분 내려서면 거의 평탄한 능선이다가 헬기장에서 5분후 우측 용목마을 쪽 능선이 분기하면서 몇 걸음 더 내려선 후 오름이 시작되면서 북쪽이다
북쪽으로 잠시 오르던 능선은 약770m의 분기봉을 오르지 않고 우측사면으로 틀어가는 길이 뚜렷하니 따르고 잠시 후 x787.6m 정상 역시 오르지 않고 이번에는 좌측사면으로 돌아가서 x787.6m에서 북쪽으로 내려선 능선의 날 등이고 곧 오름이 시작된다
갈곳산 정상까지 표고차 170m를 줄이는 오름이고 4분여 올라서면 우측능선 분기점이고 완전 북쪽으로 틀어 오름에는 곧 큰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오래된 폐 무덤이고 부드러운 오름은 이어지는데 소나무보다 참나무들이 더 많다
▽ 남동쪽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문수지맥의 문수산을 본다
▽ 봉황산 정상에서 금방 내려서고 올라선 약805m의 좌측(서) 북지리 큰골 쪽 능선 분기봉
▽ 우측 용목마을 쪽 능선 분기점
▽ x787.6m
▽ 우측 범바윗골 능선 분기점을 지나니 오름에는 폐 무덤이다
폐 무덤에서 5분후 오름상에서 좌측능선이 분기하면서 오름은 이어지고 다시 해발 약875m 지점에도 돌보지 않는 듯 납작한 폐 무덤이다
이후 능선의 좌우사면은 가파르고 듬성듬성 바위들도 보이더니 마지막 오름이니
09시05분 봉황산 정상에서 50분이 소요된 후 올라선 백두대간을 만나는 갈곳산 정상에는 밧줄들이 매어져 샛길금지 표시에 마구령4.9km↔늦은목이1km에 소백10-28 구조표시인데 22년 전 내 백두대간 종주 때는 이런 것 생각조차 못할 때다
갈곳산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의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불러온 이름이다
12분간 휴식 후 출발인데 아무튼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많이 지나가서 그런지 길은 더욱 좋아지며 금방 우측능선 분기점에서 살짝 좌측(북)으로 틀어 가는데 우측아래 범바윗골이 깊다
급하게 내려서는 좌측사면으로 낙엽송들이 보이고 날 등에는 울창한 철쭉들이고 출발 9분후 마구령5.4km↔늦은목이0.5km 소백10-29 구조표시다
구조표시에서 3분여 더 내려선 안부에서 x826.2m를 향한 오름은 역시 대간의 등산로는 정상을 오르지 않고 좌측사면으로 돌아서 날 등으로 접근하고 푹신한 포아풀들 사이로 내려선다
09시36분 내려선 늦은목이에는 소백10-30 구조표시에 좌측 남대리로 내려서는 지점에는 17-07구조표시와 마구령5.9km 갈곳산1km↔선달산1.9km 남쪽 오전리 생달마을을 알려주는 이정목에 어지러운 안내판들이다
▽ 해발 약875m 지점에도 돌보지 않는 듯 납작한 폐 무덤이다
▽ 갈곳산 정상
▽ 내려선 곳에서 금방 오르면 x826.2m 사면을 지나간다
▽ 늦은목이
늦은목이 란 경사가 느릿한 잿목을 뜻하는데 북쪽 남대리 상신기에서 잿마루까지 느릿한 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룬다는 안내문인데 남쪽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내성천이 흐르고 북쪽은 마포천이 옥동천을 만나며 남한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6분 지체 후 올라서는 곳 계단 흔적들이고 이곳에서 선달산 정상까지는 약470m의 표고차를 줄이는 것이라 꾸준하게 올라야겠고 그랬던 기억들이다
초반 완만하게 오르는 능선이고 10분여 오른 해발 약850m 지점에는 4-12구조표시가 보이며 꾸준한 오름이다
해발 약950m 지점에서 우측으로 휘어 오르는 등산로인데 등고선에 비해 만들어진 등산로는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다고 생각되는 건 천천히 여유있는 산행이기 때문인가!
늦은목이 출발 29분후 해발 약990m 지점 늦은목이0.9km↔선달산 정상0.9km 이정목이 보이더니 곧 4-12 구조표시더니 이전보다 조금 가파르다는 느낌이다
늦은목이 출발 43분후 해발 약1090m지점 남쪽으로 짧은 능선이 분기하는 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4분여 지체 후 북동쪽에서 북쪽의 마지막 오름이다
6분후 4-10 구조표시를 지나 잠시 바위도 밟히고 이후 잠시 펑퍼짐한 지형을 지나며 마지막 오름이더니 정상 직전 좌측 회암령-어래산으로 가는 쪽 김삿갓 문학관12.8km의 외씨버선 길 표시다
18년 전 히든피크 높은산 단풍 연어님들과 어래산 곱돌재 △929.2 △603.8를 지나고 김삿갓휴게소 인근 골어구로 내려선던 능선이다
▽ 늦은목이에서 선달산 정상을 향한 오름
▽ 해발 약990m 지점 늦은목이0.9km↔선달산 정상0.9km 이정목
▽ 정상 직전 좌측 회암령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외씨버선 길 이정표
선달산은 조선시대의 어떤 문헌이나 고지도에도 산 이름이 보이지 않고 「조선지형도」에만 유일하게 기재되어 있어 지명의 유래를 알기가 어렵다 다만 향토지에 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선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산 남쪽의 곡저에는 산 이름에서 유래한 생달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는데 선달(先達)의 음이 변한 지명이라고 한다
10시49분 하늘이 터지는 공터에 큰 정상석이 반기는 선달산 정상에 오르니 한 쪽에 뽑혀서 방치된 망가진 옛 삼각점이고 엄청난 파리떼들의 공습이나 캔맥주 하나를 마시며 17분 지체 후 4-9구조표시와 늦은목이1.8km↔박달령5.0km의 이정목을 보며 여전히 북동쪽 백두대간의 뚜렷한 길을 따르는데 초반 미역줄들이 많은 능선이다
2분후 살짝 올라서면 좁은 공터를 이룬 우측(남) 사기점 쪽으로 긴 능선이 분기하는 분기점이고 나뭇가지 사이 저 앞 x1228.8m를 보며 부드러운 내림이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박달령 이후 솟은 옥돌봉(1244)이 아까 역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던 문수산(△1207.4)처럼 보인다
출발 7분후 내려선 곳에서 잠시 평탄하다가 부드러운 오름이 4분여 이어지면 능선은 남동쪽에서 동쪽이고 곧 4-8구조표시를 지나간다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에는 큰 바위들이 숲 아래 큰 바위들이 나타나더니 곧 바위들은 사라지고 온통 미역줄들 사이의 등산로다
▽ 선달산 정상 조망은 없고 뽑혀진 옛 삼각점
▽ 정상이후 미역줄들이 많고 금방 올라선 우측 사기점 능선 분기봉
▽ 백두대간의 능선이 박달령 이후 올라가는 옥돌봉이 슬쩍 보이고
▽ 올라갈 x1228.8m을 보며 내려선 후
▽ 잠시 바위들이다
선달산 정상 출발 26분후 살짝 올라선 곳에는 4-7구조표시고 도상 x1228.8m 옆이다
잠시 계단 형태의 박달령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르다가 백두대간이 동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를 때 좌측의 넓대직하고 미역줄들의 능선으로 접어들며 좋은 등산로와 작별하는데 생각보다 능선의 상태는 좋지 않다
1시방향의 가야할 능선은 잡목들 사이로 나같이 찾아가는 사람들의 족적이 보이지만 멧돼지들의 흔적들로 그 족적들도 사라지면서 이리저리 좋은 쪽으로 진행한다
분기점에서 7분여 후 몇 걸음 오르는 곳 나무와 작은 바위가 어우러진 지점은 좌측(11시 방향) 지계곡 쪽으로 능선이 분기하는 곳이고 능선은 살짝 우측으로 휘어지며 고만하지만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분기점에서 4분후 내려서는 능선의 좌측사면으로 눈길을 끄는 노송인데 해발 약1120m 정도다
이후 작은 산죽들과 넝쿨들이 나타나고 백두대간을 뒤로한지 16분후 다 내려선 상태에서 부드러운 오름이지만 쓰러진 나무와 잡목들이다
3분여 쓰러진 나무들을 넘으며 오르니 약1090m의 우측「응아골」방면 능선 분기점이며 좌측으로 살짝 휘어가며 3분도 되지 않아 미역줄들의 x1097.5m인데 좌측 칠룡동계곡 쪽으로 능선이 분기하는데 이곳에서 살짝 우측으로 틀며 내려서려면 참나무들 아래 고비들과 쓰러진 나무들이다
그렇게 x1097.5m에서 10분여 내려선 응아골 안부에서 2분여 올라서니 평범한 x978.3m는 역시 우측 응아골 쪽으로 능선을 분기시킨다
▽ 이 나무가 보이면 구조표시 옆이 x1228.8m다
▽ 이후 백두대간을 버리고 북쪽의 능선은 상태가 그리 좋지않 다
▽ 약1120m 이점 좌측사면으로 저 노송이 보이는데 중요 포인트다
▽ x1097.5m
▽ x978.3m
x978.3m에서 1분 조금 넘게 평탄하게 내려서던 능선은 쓰러진 나무들의 우측(북동) 내리계곡 쪽으로 능선을 분기시키면서 좌측으로 살짝 틀어 내려서는데 잡목들이고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더 내려선 후 잡목들을 헤치며 잠시 올라서면 빼곡한 잡목넝쿨들 사이에「예미464 2004재설」삼각점만이 반기는 △906.5m다
대단한 파리 떼들의 공습은 대단한 파리 떼들의 공습은 다(12시33분)
잠시만 걸음을 멈춰도 대단한 파리 떼들의 공습은 이어지니 잠시 지체 후 이곳에서 능선을 버리고 서쪽아래 지계곡으로 내려서기로 한다
사실 지도를 보며 이어지는 능선의 x852.4m를 지나 칠룡폭포 쪽으로 내려서보려고도 했지만 칠룡동계곡으로 내려서는 지점들이 등고선으로 볼 때 거의 바위절벽이 아닐까! 할 정도로 보였고 실제 이후 지나가다보니 대단한 바위벼랑들이 이어졌으니 계획을 잘 잡은 것 같다
하지만 서쪽 칠룡동 주계곡으로 내려서는 이 지계곡 온통 쓰러진 나무들과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 얼키고 설킨 넝쿨들로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서쪽 저 편 회암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나뭇가지 사이로 보며 △906.5m에서 12분후 표고차 100m정도를 줄이며 내려서면 좌측 지계곡을 만나면서 잠시 후 석축의 옛 화전터의 흔적도 보이는데 내리 입구에서도 엄청남 거리와 험난함이 도사린 대단한 골자기에도 고단함이 묻어난 옛 화전민들의 생활이 짐작된다
좌우로 수시로 넘나들며 그저 빠져나갈 곳을 찾아서 내려서는데도 체력이 소진되고 땀이 줄줄 흐른다
▽ △906.5m
▽ 서쪽 지계곡으로 내려서는데 권장 사항 아니다
▽ 좌측 지계곡 합수점을 지나면 처음으로 석축들의 화전터 흔적을 보고
허기는 지고 힘도 들어 쉬고 싶지만 일단은 칠룡동 주계곡으로 내려서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내려선다
△906.5m에서 36분후 표고차 160m 정도를 줄인 해발 약740m지점 계곡 옆 사면에는 약초꾼들이 이용한 듯 비닐들의 움막터 흔적이 보인다
우측(북) x852.4m 아래서 흐른 지계곡 합수점을 만나면서 수량은 조금씩 늘고 여기저기 화전터 흔적이 자주 보이나 곳곳에 쓰러진 나무들과 넝쿨들로 발걸음은 더디다
따라서 간간히 약초꾼들의 족적이 보이다가 사라지다가를 반복하나 워낙 넝쿨들이나 쓰러진 나무들이 많다
13시31분 △906.5m에서 거의 1시간이 소요되며 내려선 칠룡동 주계곡과 만나는 합수점으로 내려서니 수량이 많고 계곡의 하상이 넓어 앉아서 캔맥주 하나와 간식을 먹으며 9분 만에 다시 일어나 출발하는 것은 지도 상 거리는 머나 내리종점에서 15시40분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바쁜 마음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건너 계곡을 우측으로 두고 남쪽으로 향하려면 울창한 수림아래 초원지대가 펼쳐지는 평탄한 지형은 예전 화전민들이 어우러 살던 옛 칠룡동마을의 흔적인데 칠룡동은 마을 앞 용소에서 일곱 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는 벌때(蜂垈) 남쪽에 있었던 마을이라는 기록인데 벌때는 내리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합수점에서 휴식 후 출발 5분후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은 좌측 x864.1m 능선의 끝자락이며 곧 좌측 계곡 합수점 직전인데 바위아래 단종대왕 제단이 있는데 영월로 유배 와서 죽은 조선 6대 단종을 기린 것이다
▽ 약초꾼들의 흔적이 보이더니
▽ 이제 자주 석축들이 나타난다
▽ 칠룡동 주계곡을 만나니 수량이 많아지고 뚜렷한 족적이다
▽ 옛 칠룡동마을 흔적
▽ 거대한 바위를 돌아가면 단종대왕 제단이다
계곡의 좌우는 거대한 바위절벽들로 이루며 단종대왕 제단에서 금방 우측으로 계곡을 건넜다가 다시 좌측으로 건너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족적을 따르면 잠시 후 다시 우측으로 건너는 지점 도상 칠룡폭포가 표기된 지점인데 큰 폭포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으면 수도 없이 존재하는 그런 모양으로 보이지만 이 계곡에서는 그만한 폭포가 없어서일까! 아무튼 바쁜 마음에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발걸음 옮기기에만 바쁘다
해발 약575m 정도다
이후 북쪽으로 흐르는 계곡 우측으로 지나노라니 머리 위로 거대한 오버행 바위도 보이고 이 일대가 예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보이는데 이런 험난한 지형 씨앗 하나 뿌릴만한 공간도 없는 곳에서 고단한 삶을 영위했을 이들의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수시로 이쪽저쪽으로 건너며 북쪽으로 이어지던 계곡은 단종추모단에서 17~8분후 계곡은 좌측(서)으로 휘어져 4분여 진행하노라면 계곡을 저 아래두고 좌측사면의 가파름이 이어지다가 다시 북쪽으로 휘어지더니 곧 좌측 위 x860.9m와 x856.7m 사이에서 흐르는 지계곡 합수점이다
좌측사면의 아주 가파른 사면을 위태롭게 이어가다가 이후 내려서서 우측으로 건너는 곳에는 밧줄이 매어져있고 그렇게 건너갔다가 이후도 우측 한참 아래 계곡이 흐르는 좌측사면의 가파른 사면을 지나간다
단종제단에서 54분후 좌측 지계곡을 지나 계곡의 우측으로 지나가노라면 내리계곡 합수점 직전 석축의 뚜렷한 길을 은근히 잠시 부드럽게 오르고 내려서면
14시43분 수량이 많은 내리천 합수점으로 나서니 하늘이 시원하게 터진다
단종대왕 제단에서 57분이 소요되었다
▽ 계곡의 좌우는 거대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지능선들로 내려섰다면 곤혹을 치루겠다
▽ 도상 칠룡폭포 일대인데 시간 상 제대로 확인을 못한다
▽ 오래 전 화전민들의 흔적이 보인다
▽ 이어지는 칠룡동계곡
▽ 가파른 사면도 지나간다
▽ 내리계곡을 만나고
백두대간 옥돌봉-구룡산(1345.7) 사이 도래기재 아래 우구치 일대에서 흐르는 계곡과 구룡산에서 목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삼동산(1179.8) 자락 와흥천이 만나서 넓은 계곡으로 북서쪽으로 흐르는 내리천은 옥동천을 만나는 일대는 영월군민들의 행락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직은 한참을 더 빠져나가야 한다
아무튼 수량이 많은 계곡을 북쪽으로 건너면 계곡을 좌측으로 두고 우측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계곡 길이 이어진다
갈대들이 자라난 넓은 하상의 내리천을 따라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며 이 좋은 내리천을 즐기지 못한다
합수점에서 10분후 도상「늡다리」표기된 일대지만 흔적은 보이지 않고 계곡은 서서히 북서쪽으로 휘어가고 길도 그렇게 따라 잠시 가다보니
15시 북쪽으로 휘어지면서 우측 위 민가 한 채가 보이며 꿈꾸는 유배지 늡다리 그리고 좌측 계곡 쪽으로 출렁다리 시설이다
늡다리는 지동과 칠룡동 사이 돌고개 위쪽의 널빤지로 놓은 다리가 있는 마을이다 ... 라는 지명유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도 예전에는 민가들이 제법 있었겠다
계곡 우측 옆의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를 때는 걷기가 편하지만 계곡으로 내려서서 걸을 때는 울툭불툭 바위들을 밟으며 진행하니 속도가 더디고 이미 15시가 넘었으니 내리종점에서의 버스를 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제야 주저앉아 캔맥주 하나와 간식을 먹으며 땀을 식히지만 버스는 놓치더라도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에 15시08분 일어난다
▽ 내리천은 하상이 넓 어지고 계곡의 우측으로 난 길이나 하상을 따른다
▽ 뒤돌아보니 비죽 봉우리 그 사이가 칠룡동계곡이다
▽ 도상 늡다리를 조금 지난 곳 늡다리의 흔적이다
▽ 내리천
▽ 가끔은 계곡의 옆 바위사면을 타고 가기도 하고
잠시 후 우측(북) △778.8m 아래서 발원한 지계곡 합수점을 지나며 내리천은 북쪽에서 서쪽으로 휘어 흐르고 휴식 후 9분후 다시 우측 지계곡 합수점을 지나니 이후 계곡 옆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15시23분 서쪽으로 흐르던 내린천은 다시 북쪽으로 흐르고 10분후 다시 서쪽으로 흐를 때 계곡 좌측 건너로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15시41분 우측의 편안한 숲길로 지나가지만 도상 좌측 내리천 건너는 어래산에서 분기한 능선의 △898.2m 아래서 발원한 지계곡 합수점이고 내리천은 다시 북쪽이다
이후 한차례 갈대가 무성하고 바위들의 내리천 하상으로 걷다가
16시01분 우측(동) 도로 저 위 원골재 아래에서 발원해서 대야치마을을 지나 흘러내린 지계곡 합수점을 지나는데 그 쪽 밧줄이 매어져 있고「길 없음」표시다
합수점에서 8분후 숲 아래 간이화장실 시설이더니 우측사면에 돌보는 묘역이 보이고 3분후 다시 간이화장실 시설이더니 길은 철문과 철망으로 막혀있어 철망의 좌측으로 돌아 나온다
▽ 다시 서쪽으로 계곡이 흐를 때 계고 건너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가 눈길을 끌고
▽ 끝이 보이면서 하상에는 갈대들이
▽ 마지막 우측의 지계곡 합수점도 지나고
▽ 뒤돌아보니 멀리 칠룡동 합수점 일대도 보이고
▽ 마지막 도로로 나서기 직전
▽ 도로로 나서면 좌측 아래 솔밭캠핑장과 돌아본 내리계곡
▽ 내리종점에서 발길을 멈춘다
철문을 돌아 빠져나오면 길 없음 입산금지 현수막이 붙어 있고 일대를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온다
16시17분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나서니 도로 좌측 저 아래 내리천 옆으로 용바위와 솔밭캠핑장이다
16시24분 내리종점에 도착해서 버스시간을 보니 역시 15시40분 버스 이후 18시30분 버스다
몇 차례 지나가는 차량에게 손을 내밀어 보지만 허탕치고 승합차 한 대가 지나가 길래 손을 흔들다가 옆에 동승자가 있어 포기하고 이왕 늦었으니 막걸리나 한잔하며 어떤 방법을 생각해보자 하고 앉는데 조금 전 그 승합차가 올라온다
운전자와 부인이 전국여행 중이고 아픈 친구가 있는 영월도 가는 중인데 버스도 없는 곳에서 손을 흔들다가 마는 내가 생각나서 다시 차량을 돌려 올라왔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땀 냄새가 심하게 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하니 괜찮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영월역까지 태워다주니 내가 할 것이라고는「복 받으십쇼」이 소리만 한 몇 차례 한 것 같다
열차 출발시간 20분을 남기고 얼른 화장실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그 짧은 시간에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와 소주 한 병으로 우선 허기만 면하고 청량리역 하차 집에 들어서니 21시30분 밖에 되지 않았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