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 지나, 난류와 한류가 섞이기 시작하고, 태백산맥을 넘어 온 뜨거운 높새바람이 바다의 찬 공기와 박치기 하면, 해무가 피어 오른다. 해무의 시작점은 마치 불을 막 피운듯 가늘게 올라가다가 이윽고 온 바다와 육지까지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묵호등대가 구슬픈 소리를 내는 것이다. 어선들에게 육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15초마다 울어재키는 것이다. 이 동네, 앞묵호는 온통 그소리에 몸서리 치게 된다. 그러나, 수십년 그 소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게의치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날도 묵호등대가 울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 빠져 죽은 날, 묵호등대도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북에다 자식을 남겨두고, 6.25 때 남으로 내려와 그녀의 어린 어머니가 열일곱에 만나, 3남 3녀를 낳고 돌아가신 것이다. 바다로 던져지는 로프에 발이 걸려, 늙은 어부는 한 많은 삶을 마감한 것이다.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녀의 온 가족은 묵호등대 아래서, 구슬픈 등대 소리만 들으면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배에게 반가운 소리이자 희망의 불씨가 되는 등대 소리가, 사람들에게 슬픈 소리로 들려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묵호항 사람들과 삶을 같이 해온 등대가, 그들의 힘든 삶에 한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묵호등대는 오늘도 여전히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