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금요일 강론>(2024. 11. 8. 금)(루카 16,1-8)
복음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집사(관리자)입니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1ㄴ-8).”
1) 어떤 부자가 집사에게 ‘해고’를 통보한 일은,
루카복음 12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집사 일을 청산하라는 주인의 통보는,
목숨을 되찾아 가겠다는 하느님의 통보와 같습니다.
그런데 ‘청산’하라는 말은, 장부를 정리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장부 정리를 할 시간을 주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잘못한 일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입니다.>
‘오늘 밤’에 목숨을 되찾아 가겠다는 통보도,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적어도 몇 시간은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지금’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처럼 미리 통보를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갑자기 떠나는 것처럼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니 인생의 장부 정리는, 즉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마지막 날과 시간’을 정하는 것은 주님의 권한입니다.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늦출 수가 없습니다(루카 12,25).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시면 곧바로 응답해야 합니다.
2) 비유의 표현만 보면, 집사는 단순히 ‘먹고 살 길’을
찾으려고 장부 조작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 사람이
장부 조작을 통해서 더 많은 낭비를 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보다는 뜻을 생각하면, 집사의 행동은
‘잘못한 일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일 수 있고,
단순히 먹고 살 길만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처벌을 피하려고 노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에 ‘이자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너희는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서는 안 된다.
돈에 대한 이자든 곡식에 대한 이자든, 그 밖에 이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도 되지만, 너희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 손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신명 23,20-21).”
비유에 나오는 집사를, 자기 마음대로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고리대금 사업을 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거슬러서 이방인들과 동족들 모두에게서
높은 이율의 이자를 받았을 것이고, 그렇게 부당하게 받은
돈은 자기가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빚을 줄여 준 일은,
동족들의 이자는 없애 주고, 이방인들의 이자는
깎아 준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인에게 무슨 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명예를
사람들로부터 얻게 될 것입니다.
빚진 사람들은 빚이 줄어들어서 좋아하게 될 것이고,
집사 자신은 주인의 처벌도 피하고, 사람들의 환심을 얻어서
먹고 살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었으니, 집사가 한 일은
‘잘못을 고쳐서 바로잡은 일’, 즉 ‘선한 일’이 되었습니다.
3) 그러나 집사가 한 일을 ‘회개’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집사의 모습 자체가 회개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리함’과 ‘신속함’입니다.
동시에 예수님 말씀은, “먹고 사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너희는
왜 이렇게 굼뜨냐?”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은,
세속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을 영리하고 신속하게 하는
것보다 더 지혜롭고 더 신속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집사(관리인)입니다.
재산뿐만 아니라, 인생 전부, 목숨까지도......
누구든지 때가 되면,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인생 전부를
주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내 인생은 분명히 ‘주님의 것’이지만, 주님께서 나를 믿고
나에게 맡겨 주셨으니 ‘나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 뜻에 합당하게 인생을 잘 사는 것은
나의 책임이고, 또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출처]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