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 봉상왕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시기심이 많았고 자기에게 걸림돌이 되는 신하는 무조건 가차없이 처형
백성들에게 많은 추앙을 받는 숙부를 처형으로 시작
이복형제가 아닌 같은배에서 나온 친동생 2명을 죽이고 자기아들마저 살해하려다 아들은 몰래 멀리 떠나감
사치왕 방탕을 일삼고 화려한 성과 궁궐을 짓기 위해 토목공사 시작
비,바람,눈,태풍이 와도 그치지 않고 강제노역실시
백성들이 고역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많이 죽음
결국 미천왕을 추대하는 무리에게 페위당함
고구려가 봉상왕때문에 나라꼴이 엉망이되었으나 미천왕과 소수림왕이 잘정비를함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왕은 광개토대왕보다 미천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음)
2. 백제 의자왕
백제시대 통틀어 왕권이 제일 강력했던 시기가 의자왕때임
전제군주로써 자기아들 41명에게 모두 벼슬을 내리고 강력한 왕권행사함
해동증자라고 불리울만큼 총명하고 효성지극한 인물이었음
즉위초부터 그의 능력을 발휘함 백제가 재도약을 슬슬하면서 신라를 공격해서 대야성을 비롯한 40성 함락을 비롯 신라를 멸망위기까지 내몰았었음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즉위초에 모습은 오고간데 없고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며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충,흥수 충신들을 귀양보내고 죽임
그리고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이며 나당연합군을 결성 후 백제공격
결국 700년 가까운 역사의 백제는 멸망함
그러나 3천궁녀설을 비롯한 사치와 방탕을 일삼은게 역사의 승자 신라에 의해 많이 왜곡된면도 없지 않음
3. 태봉 궁예
신라왕자에서 버림받아 승려가 되어 왕이되기 까지의 스토리는 정말 영웅스토리 그 자체임
신라말년 백성들이 힘들어졌을때 진정 구세주가 되었음
백성들의 추앙을 받으며 세력을 많이 키웠음
왕이 되어서도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음
궁예가 세운나라는 견훤과의 싸움에서도 번번히 이기며 정말로 강력한 국가였음
중국에 사신까지 보내어 곧 삼국통일하고 쳐들어간다고 그랬는데 견휜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이기며 한반도세력 절반이상을 가져가고 있는 궁예가 허세,자만이 아니었다고 함
그러나 워낙 승승장구해서 자만했던걸까 ?
아니 승승장구하고 백성들의 추앙을 받으니 자만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정말 미륵부처인걸로 착각하게 만든걸까 ?
철원으로 수도 천도 선언, 화려한 궁궐짓기 시작 -> 백성들 부역으로 시달림 , 그럼에도 불고 강제노역시작
미륵부처임을 자처 옷을 미륵부처처럼 엄청 화려하게 입고다님
관심법으로 사람들 마음볼줄 안다며 너 마음속을 봤다고 그러면서 죄도 없는 백성들,사람들을 물증도 없이 본인의 심증만으로 죽임
심지어 어전에서 자기가 이야기할때 기침을 하거나 소리내면 바로 사형
나중엔 부인과 남은자식2명 모조리 죽임
결국 왕건에게 쫒겨나고 백성들에게 맞아 죽어 영웅의 스토리는 초라하게 끝남
그러나 궁예의 경우에도 왜곡된것이 많다는평임 , 실제 궁예는 후삼국에 절반이상의 세력을 가져갔었고 그 후 아주 강력한 전제왕권을 구사하는 나름능력있는 왕이었음
오히려 그것때문에 호족들에게 쫒겨났다는평 , 카리스마있는 궁예보다 같은 호족출신 왕건이 호족들 개개인에게는 이득이어서 왕건을 추대하면서 역사의 승자 왕건에 의해서 왜곡많이 되었을 가능성도 큼
4. 고려 광종
사실 업적이 많은 왕이죠 ..
과거제도 실시해서 인재를 등용하게 했었고 불교를 독신하게 해서 고려가 한반도 어느나라때보다 불교사상이 지대했죠
국방을 위해 북쪽지역에 많은성을 축성, 노비안건법 , 제위보 설치(행려자를 돕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곳), 송과의 외교시작 ,
여러가지 업적이 있으나 가장 많이힘을 쏟아부은것은 바로 왕권강화죠
왕권강화를 위해서 정말 무슨짓이든 다하였죠
왕권강화를 위해 고려를 건국 공신들을 무자비하게 숙청시킵니다.왕권강화를 위해서 했던짓이 개국공신들을 다 죽여버리죠
심지어 자기 아버지 태조 왕건이랑 의형제를 맺은 공신들과 그의 자식들까지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근친왕족까지 숙청시킵니다.
근친왕족,개국공신,지역호족.왕족을 숙청,억압하며 왕권을 강화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그가 죽인사람들은 왕권강화와 관련된것에 그치지 않고 만년에는 참소를 혹식하여 죄없는 사람들까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죽여버리죠 ..
고려를 재정비하며 제2의 고려를 탄생시킨왕이라고 볼수도 있고 업적도 많은건 사실이나 사람 정말 많이 죽였죠 ..
생각을 해보세요 .. 제가 만약 왕건을 도와서 고려를 탄생시켰는데 그의아들이 왕이되어서 나와자식들,가족들을 죽여버린다면 ?
5. 고려 충혜왕
남자라면 부러운 마음을 한번쯤 가질만한 ㄱㄱ킹 충혜왕
눈에 보이는 여자는 무조건 데려와서 ㄱㄱ and 모녀와 2:1 or 모녀한번에 대기시켜놓고 두탕 기본 of 기본
아버지 충숙왕 후궁들 ㄱㄱ
장모랑 ㄱㄱ
대신들 부인이랑 ㄱㄱ
심지어 재상의 부인까지 ㄱㄱ , 지위가 좀 있어서 재상을 해외로 파견보낸후 재상부인이랑 ㄱㄱ
심지어 내시부인까지 ㄱㄱ
원나라는 죄가 너무 커서 용서 못하고 귀양보내버림
그러나 귀양가서도 그짓을 했다는설
정사를 잘돌본 임금이 아닌 정사를 잘한 임금
6. 조선 연산군
자기 어머니 복수를 위해서 자기어머니 죽인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리죠
무오사화,갑자사화
성종의 장남이자 세자로 책봉될만큼 나름 인정은 받았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임후 어머니 이야기를 알기전까지는 나름 정치도 얌전히 잘했었죠
조선역사상 왕권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가 연산군때였습니다.
결국 연산군 폭정에 두려움을 느낀 대신들은 중종을 추대하며 중종반정을 일으키며 쫒겨나버리죠
7. 조선 선조
폭군이 아닌 가장 비운의 왕일수도 ..
어리석기 그지없어 신하들에게 당파를 만들게 했고 당파 싸움을 부추김 , 조선사회 처음으로 붕당정치가 시작됨
율곡의 10만 양병설 거절
임진왜란을 당파전쟁으로 넘겨버려 나라를 잃을뻔하다가 이순신이 구해냄
임진왜란 일어났을때 먼저 도망가기 바빴음
그리고 이순신을 옥에 가두고 멀리함
반대로 왜에게 전멸당한 원균은 중용시킴
임진왜란,10만 양병설 거절 등 이런것들 때문에 조선을 크게 망친왕이라고 말하나 그렇게 막장테크까지는 아닐수도 ..
반대로 조광조를 증직시킨건 잘한것일수도 있고 이순신,이황,이이,허준,이항복,이덕형,곽재우,류성룡 등등 조선을 대표하는 위인들이 모두 선조때 나옴
다만 임진왜란 하나로 폭군이라고 불릴만 하다면 불릴만함
8. 조선 인조
몇년만 더 정치했으면 세종,정조와 함께 조선의 성군중하나가 되었을 광해군을 페위시킴
대비책도 없이 자존심만 내세우며 후금의 친선제의를 거절 --> 정묘호란,병자호란 발생 --> 수십만명의 백성이 노예로 잡혀감 (60~70만명 추정)
사직을 포기하거나 나라가 그나라한테 멸망하지 않는 이상 전 세계역사를 통틀어도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한나라 임금이 청나라 태종한테 삼전도에서 무릎꿇고 얼음바닥에 머리피철철 나도록 세번 찣는 삼고두례를 하고는 신하의 예를 올림
정치잘하는 광해군을 페위시킨것도 모자라 자기아들 소현세자를 죽임 (둘다 상당히 개방적이고 현실성있는 개혁론자였다는거)
광해군과 소현세자가 잇달아 그에 손에 제거되고 그 후로 조선은 꽉 막힌 사회가 되어버림
첫댓글 최악의 왕이라고 한다면 선조, 인조를 꼽을 거 같은데... 폭군이라면 충혜왕이요 ㅋㅋㅋ
선조는 막장 오브 막장이죠. 나라를 위해 싸우고 공을 세운 사람들은 잡아 가두고 죽이고 원균처럼 무능하고 못난 사람은 높게 평가하고 상주고... 당시 사람들이 그 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 인물이 많이 나온거야 선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죠.
지도자를 평가할 때 실제 치적을 보지 성격을 감안해서 가감해주진 않죠. 제가 볼땐 막장 중에 막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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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이 강한 것과 철권 통치는 구분해야죠. 환국을 여러 번 단행했다는 건 그만큼 왕권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경신환국만 예로 보더라도, 서인 세력 중 일부가 소현세자의 손자인 임창군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이에 두려움을 느낀 숙종이 서인에게 정권을 주는 게 왕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거지 강한 왕권을 이용해 마음에 안 드는 남인을 끌어내렸다는 것은 일차원적인 판단입니다.
3천궁녀는 소설이죠... 3천궁녀가 살만한 궁궐의 크기가 아니라고 나왔습니다...
의자왕은 거의 누명 수준의 모함을 당한거죠. 의자왕이라는 호칭 자체가 의롭고 자애롭다는 평가로 후세에 붙여진 호칭입니다. 낙화암은 3천명이 갈 수도 없는 지형이고, 당시 궐의 궁녀는 684명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구요. 역사는 역시 승자의 기록입니다.
의자왕의 의자는 의롭고 자애로워서 붙여진 호칭이 아니라, 그냥 이름입니다. 원래 이름이 '부여의자' 라고 합니다.
폭군이라면 충혜왕에 한표. 머저리를 꼽는다면 역시 선조&인조에 한표.
2222222
MB
전대갈뽑으려고 들어왔는데 ㅠㅠ
충혜는 강아지같은 놈이라 입에 담기도 역겨운 버러지고 폭군이라면 두말 할것 없이 인조죠.
이십구만 원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보기에 없네요.
의자왕은 의자왕 자신의 과오가 아닌 지방세력의 분열로 인해 전투중 지원을 못받았다는 설이 많은 걸로 압니다...
폭군과 암군을 구별해야 할듯 싶은데 폭군은 대토목 공사나 가렴주구, 개인 권력 강화나 기타 이유에 의한 폭정 등으로 백성들이나 신하들을 혹사시키거나 학살하는 군주고(중국의 상 왕조 최후의 왕 주왕으로 비유하면 될까요) 암군은 그저 무능해서 정사를 제대로 돌볼 줄도 모르고 물론 관심도 별로 없어서 나랏일을 그르치는 군주라는 뜻이므로(이건 뭐 촉한 후주 유선이 제격이고) 선조나 인조 등은 폭군이라기 보다는 암군으로 분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선조는 다소 폭군과 암군의 경계선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거 같지만)
선조 인조는 폭군이라기보다는 머저리 등신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폭군이라면 역시 고구려 봉상왕이나 연산군에 한표요~
멍청한건 인조가...
광주호족이셧고 개국이등공신으로 사성까지 받으셧던분이 광종과 왕식렴때문에 멸문을 당햇죠 왕규의 난이라고... 덕분에 역적집안이 됏습니다;;
왕규와 충돌한 인물은 광종이 아니라 정종입니다.정종이 3대왕이고 광종은 그다음 4대임금이죠.
폭군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납고 악한 임금 2. 다른 사람을 힘이나 권력으로 억누르며 사납고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정의를 기준으로 보면 역시 봉상왕이 폭군에 가깝지 않나 봅니다.
선조는 진짜 저 인물들 데리고 정치못하는게 신기한건데...참...인복은 최고인듯...자기가 잘 활용을 못해서 문제지만..
2222
충혜왕이 킹 오브 킹입니다..
제일 막장같은 왕은 인조입니다. 넘을 수 없는 벽이죠
이승만
조선 시대 최악의 사건들 중 하나로 인조반정을 꼽습니다. 단순히 왕이 바뀌고 전쟁 유발한 것뿐만이 아니라 사상의 흐름까지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인조 반정으로 실천 중심의 성리학파인 남명 조식 학파가 몰락해 버리고(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많은 이들이 조식의 제자였습니다. 인조반정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오천원 지폐엔 이이가 아닌 조식이 있었을 겁니다.), 정인홍을 비롯한 북인은 간신이 돼버렸죠. 그리고 주둥이만 산 주자학이 대세가 되고 나아가 왕권도 엄청 약해졌습니다. 이후, 북벌에 올인하던 효종도 사대부들의 지독한 비협조로 북벌 실패, 현종은 예송논쟁으로 서인들에게 농락당하지를 않나... 인조반정 이후론
왕이 예전의 왕이 아니었죠. 사대부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하지만 사대부들은 백성과 국가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부와 권세에만 눈이 멀었으니 조선의 불행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