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 중 하나인 박제순
조선 후기 개화파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 진압,
1905년 외부대신으로 을사오적이 되었고
1910년 경술국치 때 내부대신으로
한일합병합조약에 동의하며 경술국적이 됐다.
그의 아들 박부양
을사오적과 경술국적 2관왕을 달성한 박제순의 부에 힘입어 누릴거 다 누리면서 살았다.
1937년 친일 단체이자 조선 귀족들의 모임인 동요회의 이사였으나 1949년 반민특위에 의해 조사받았다가 반민 특위가 와해된 후 풀려났다.
박부양의 아들이자 박제순의 손자인 박승유
1944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 제국 육군에 자원 입대해 중국 요코이 부대에 배속됐다.
그 해 10월 요코이 부대를 탈영해 한국광복군에 입대.
광복군의 초모공작 활동을 전개하고, 조선인 동포로 징집된 많은 일본군 병사들을 광복군으로 들어오게 설득했다.
당시 광복군의 선전활동, 심리전을 맡아 많은 조선인들을 광복군에 입대시켰고 "할아버지는 대체 왜 자결하지 않으셨는가. 왜 후손들을 이다지도 욕되게 하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광복 후 성악가로 활동했고, 6.25 당시에는 국방부 합창단원으로 위문공연을 다녔다.
정전협정 이후 원광대, 휘경여중, 휘경여고, UCLA 유학, 강원대 음악교수 등에 부임했으며, 1989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1990년 자택에서 위암으로 별세. 향년 66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첫댓글 암살속 하와이 피스톨이 진짜 있는 이야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