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해지기까지
페트리샤와 상담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났을 때까지 여전히 그녀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 한 달간만 단순한 두려움이라도 결코 자신에게 허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한 곤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설명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페트리샤는 어떤 일에나 첫 번째 반응은 무조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반응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쉽게 말해 그녀가 느끼는 반응이 진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인지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전혀 없다고 화를 벌컥 냈다. 내가 상담을 해 주기는 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자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난 6개월 동안 당신을 만나면서 확실하게 느낀 거예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은 실은 실제 당신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두려움을 허락하지 않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가 하루에도 여러 번 실제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려고 했다.
“알아요. 그래서 제가 하나의 실험을 제안하는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것은 다만 그녀가 느끼는 반응일 뿐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말하자면 첫 번째 반응이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반응 일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첫 번째 반응에 이어지는 다음 반응을 살핀 후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 반응이 그녀의 진짜 반응이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덧붙였다.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만약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만약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면 이 일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하고 말예요.”
그녀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 보기로 동의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하루에도 여러 번 두려움을 맛보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두려움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반응은 마치 칼로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지만 조금 머물다보면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반응들이 있고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두려움에 속박시켜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방식으로 두려움에 도전해 볼 생각을 못했다.
몇 주가 지나자 그녀는 자기가 정말 어떤 일에 대해서 실제로 두려워했는지조차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두려움이란 것이 슬개근 반사와 같은 일종의 습관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 전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일에 대처하는 방법은 습관이 되어 그녀의 몸에 배었던 것이다. 그 후 몇 달 동안 그녀는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잠시 반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정말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진실한 것인지 습관적인 것인지를 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기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자기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두려움이라는 것 없이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을 시도할 필요는 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두려움 없이 다가가 도와주겠다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화가 난 사람에게도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도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모든 일에 두려움을 지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삶에서는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페트리샤는 이제 자기의 삶에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늘 어떤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전화로 말했다.
“레이첼 선생님,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두려움을 안고 살았어요. 어머니의 가치에 따라 살았어요. 그 동안 제가 어머니의 삶을 살아온 것이라면 이제는 저의 삶을 살아야할 거예요.”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싸여 있었다. 한때 심리치료사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살아 온 삶의 방식을 살펴보고 어떤 것이 습관적인 반응인지를 알아냈다. 그 심리치료사는 내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내게 은으로 정교하게 만든 팔찌를 선물했다. 그 팔찌에는 clear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그 팔찌가 내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일 년이 넘도록 나는 늘 팔찌를 끼고 다녔다. 팔찌를 받은 지 몇 달 후에 그녀가 왜 내 이름 대신 clear라는 낱말을 새겼는지 물었다.
“레이첼, 사전에서 clear가 무슨 뜻인지 찾아봐요.”
사전을 뒤지자 놀랍게도 clear라는 낱말에는 60가지도 넘는 뜻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의미는 자유와 연관된 것이었다. ‘장애로부터의 자유’,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 ‘비난으로부터의 자유’,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덫으로부터의 자유’, ‘제약으로부터의 자유’, ‘빚으로부터의 자유’, ‘흠집으로부터의 자유’, ‘의심으로부터의 자유’, ‘환상으로부터의 자유’, ‘불확실로부터의 자유’, ‘애매모호함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등등. 그 낱말의 궁극적인 의미는 ‘빛의 인도를 받아 온전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었다.
때로 어떤 것이 clear해지기까지 다시 말해 ‘빛의 인도를 받아 온전히 남을 섬길 수 있을 때까지는’ 일생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첫댓글 몇년 전 저로하여금 어떤 일을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고 그것이 '두려움'아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창찬받지 못할까봐' '사랑받지 못할까봐'.. 그런 '두려움'은 아직도 있는 것 같아요. 제게도 'clear'팔찌가 필요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스스로 팔찌를 만들어야겠어요.
저 스스로의 두려움을 돌아보게 하는군요....
'빛의 인도를 받아 온전히 남을 섬길 수 있을 때까지는....' 참으로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