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이사야 30,19-21.23-26
마태오 9,35-10,1. 6-8
사랑은 ‘난 아무래도 괜찮아!’ 뒤에서 자란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시리즈에서 언니 엘사와 동생 안나를 이어주는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바로 눈사람 ‘올라프’입니다.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괴이한 능력을 타고난 언니 엘사는 동생 안나가 자신의 마법 때문에 다칠까봐 일부러 동생을 피합니다.
그래도 동생은 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심장이 얼어서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동생을 위해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하나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올라프입니다.
올라프는 눈이 오면 엘사와 안나가 만들던 눈사람이고 나중엔 성탄절만 되면 올라프 인형을 만들어 서로 선물하곤 하였습니다.
엘사가 집을 떠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자신의 마법으로 가장 처음 만든 것이 올라프입니다.
자신도 올라프가 살아 움직일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라프가 안나와 함께 머물며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캐릭터가 됩니다.
올라프는 안나를 끊임없이 엘사에게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올라프 덕분으로 안나는 항상 엘사와 재회하게 됩니다.
올라프는 얼음공주인 엘사의 따듯한 마음입니다.
올라프는 무한긍정 캐릭터입니다.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절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없습니다.
엘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생겨났으니 팔다리가 뽑히는 것도 불에 녹아버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난 아무래도 괜찮으니 당신만 좋으면 돼.”라는 사랑의 캐릭터입니다.
1편에서 심장이 얼음이 되어 죽어가는 안나 앞에 더욱 따듯하게 모닥불을 피워주고 자신은 녹아서 죽어갑니다. 그러며 걱정하는 안나에게 말합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네가 원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거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없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을 당신께 이끌어올 중개자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 중개자들은 진정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내어줄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예수님의 따듯한 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예수님께로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엘사에게 다가가지 못해도 엘사의 마음이 표현된 올라프를 통해 안나가 엘사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만약 올라프가 생명도 아끼지 않는 무한 긍정과 기쁨의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안나도 자신의 심장을 얼음으로 만든 언니를 끝까지 사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 관계 안에는 항상 올라프 같은 중개자가 필요합니다.
신앙을 위해서도 그런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항상 이웃이 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놓으라는 뜻입니다.
멜비 콕스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간 감리교 선교사입니다.
1833년 그는 당시 ‘백인의 무덤’으로 알려졌던 서아프리카에 갔습니다.
그가 그곳에 복음을 들고 가겠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라이베리아에 가는 것은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며 백인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콕스는 소명을 확신하고 목표를 굳게 잡았습니다.
웨슬리안 대학에서 한 학생은 “당신의 관을 준비해 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콕스는 그 학생에게 “내가 아프리카에서 죽는다면, 나의 묘비에 글을 써주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써 드릴까요?”라고 조롱하듯 말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천 번 죽어도 좋으리. 아프리카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멜빈 콕스는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지 다섯 달도 못 되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교정신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이슬람 사람들을 선교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 노력했습니다.
잡히기만 하면 그리스도교인들을 죽이던 그들도
그분의 목숨을 건 선교에 감복하여 그분에게만 선교의 자유를 허락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스라엘의 성지들에 가톨릭성당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다 그렇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려했던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제자들 덕분입니다.
생명은 거저 받은 것이고 그분이 또 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당신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천 번 죽어도 좋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주님의 추수꾼이 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2월3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이사야 30,19-21.23-26
마태오 9,35-10,1. 6-8
오늘 우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어디선가 푸드덕푸드덕 소리가 들려 가만히 들여다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져있었습니다.
첫비행에 실패한 어린새가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날갯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비상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가만히 두면 들고양이 밥이 될 것 같아, 도와주려고 다가갔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린새의 모습은 가련함 그 자체였습니다.
오래전 어쩌다 부모와 사별하고 어린 나이에 저희 시설에 입소했던 꼬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희가 백방으로 노력해도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란 역부족이었습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이 각별한 부모사랑을 듬뿍듬뿍 받는 모습을 볼 때 더 안쓰러웠습니다.
거친 세상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언제나 측은했습니다.
그저 틈만 나면 꼭 안아주고 달래주는 일 외 그 어떤 일도 할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복음선포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눈에 비친 군중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께서 군중을 보시자 마자 즉시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목자없는 양들처럼 이리저리 시달리며 기가 많이 꺾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가장 근저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연민과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수많은 군중을 가르치시시고 배불리 먹이시고 치유해주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는 군중을 가엾이 바라보시는 연민의 정에서 출발합니다.
복음서 안에서 ‘가엾은 마음이 들다’라는 표현은 우리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본심, 곧 측은지심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엾게 여기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방치하고 이용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신랄한 지적을 통해 당시 사이비 목자들의 악행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에제키엘서 34장 2~4절)
당신 보시기에 차라리 없는게 더 나은 거짓 목자,
사이비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군중은 영적 양식을 조금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삶의 중심을 잃고 방향성을 상실한 영적 빈곤의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언자의 경고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큰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이런 부적격 목자들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 교회와 사회 안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질 부족한 목자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양들의 현실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꽤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친히 나서겠다. 내가 직접 목자가 되어 내 양 떼를 찾아 보살펴주겠다.
나와 함께 일할 협력자들, 참된 목자들을 직접 선택하겠다.”
오늘 우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품위있고 예의바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백성들이 자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떼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혹시라도 장거리 출장이라도 가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는 그런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착한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의 성장과 안녕과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쾌적한 성장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돈이나 명예, 인기나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떼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갈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양떼를 위해 틈만 나면 위로와 격려,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의 일꾼>
2022. 12. 03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마태오 9,35─10,1.5ㄱ.6-8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열 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일꾼>
주님께서 뽑으시니
주님의 일꾼
주님께서 맡기시니
주님의 일꾼
주님의 일을 하니
주님의 일꾼
주님처럼 일하니
주님의 일꾼
주님의 뜻 이루니
주님의 일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