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은 일본으로, 일본 첨단기업은 한국으로 / 8/29(목) / 조선일보 일본어판 (사진 : 조선일보 일본어판) ▲그래픽=백현성
5년 전 일본 정부가 주요 반도체 소재의 대한 수출을 제한한 이후 파국으로 치닫던 양국 산업교류는 지난해에야 경제 현안이 해결되면서 회복됐다. 지난해 4월 양국이 수출 절차를 간략화하는 '화이트 국가'로 서로를 재지정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한일 재무장관회담에서는 1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으면서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탄력을 받아 일본의 첨단기술 기업들은 한국에 연구개발센터나 공장을 건설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일 소비자가 서로 중고품을 거래하는 서비스도 시작되는 등 양국 교역의 벽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 밀착하는 한일 스타트업
한국의 벼룩시장 서비스인 번개장터(Bunjang)는 월간 활성 사용자가 2200만 명에 이르는 일본 최대 업체 메르카리와 손잡고 한일 사용자가 중고품을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를 6월부터 시작했다. 번개장터 앱에서 메르카리에 출품된 일본 중고품을, 메르카리 앱에서는 번개장터에 출품된 한국 중고품을 구입할 수 있고 배송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서비스 현지화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양사의 상호 협력으로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양국 소비자들의 반응도 커 패션 위주였던 거래 품목을 취미용품으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인재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채용 매칭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협력 계약을 지난해 말 일본의 동업 '라플라스', 이력서 작성 서비스 '양기쉬(yagish)'와 맺었다. 한국 측은 일본에 진출해 매출을 공유하거나 고객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티드랩 관계자는 "라플라스와 손잡고 반년 만에 200여 개의 고객을 새로 얻는 성과를 거뒀다. 서로 장점이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라플라스에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국내 숙박 스타트업 'H2O 호스피탈리티'는 일본 민박알선기업 '라쿠텐스테이'가 보유한 일본 전역의 숙박시설을 독점적으로 운영·관리하고 있다. 기업용 AI 업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한일 공동의 스타트업 「올가나이즈」는 개발 본부를 한국, 본사를 일본에 둔다. 이 회사는 한미일 300여개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내년 하반기 일본 증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 한국 진출 확대하는 일본의 첨단기업
디스플레이, 반도체 장비, 슈퍼섬유 등 일본의 첨단기술 기업들은 한국에 대한 투자를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업체인 이데미츠코산은 올해 7월 경기 오산시에 연구개발센터를 열었다. 이 회사가 해외 최초로 100% 출자한 연구개발회사를 한국에 설립한 것이다. 오산 연구개발은 OLED 소재에서 전지·반도체 소재까지 연구개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네덜란드 ASML과 함께 세계적인 반도체 설비업체로 꼽히는 도쿄일렉트론은 지난해 2000억원(약 218억엔)를 투자해 경기 화성시 연구개발센터를 증축하고 올해 4월 용인시에 반도체 생산·연구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탄소섬유 업체인 도레이그룹도 지난 5월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에 2025년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입해 생산설비를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레이 그룹은 한국을 주요 판매처, 수출 거점으로서 평가하고 있다.
기술산업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악화된 한일 간 갈등이 지난 1년 사이에 봉합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양국 정부가 바이오산업 협력에 합의한 지 1년 만에 제약 대기업인 다케다약품공업이 한국의 신약개발 기업 및 진단 스타트업과 상호 협력할 계획을 발표한 것처럼 양국 기업이 시너지 효과를 목표로 하는 연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준엽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은 디스플레이 패널 개발·제조 분야, 특히 OLED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고 일본은 소재·부품, 설비 분야에 강점이 있다.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한일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미 한일 주요 기업들이 반도체·전지·에너지 등 미래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공동으로 나서고 있다. 양국의 기업 간 협력 강화는 상품·서비스 등 거래 전반에 영향을 줘 사실상 시장 통합에 가까운 단계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