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 연말연시다. 국민들은 2014년을 떠나보내고 2015년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15년,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월호 특별법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야합으로 그 취지를 잃어 버린 지금, 박근혜 정권의 권력독점을 국회가 저지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대로 가면 2015년은 박근혜 정권의 독주가 더욱 강화된 한해로 역사에 쓸쓸히 기록될 것이다.
진보당 해산시켜 투쟁력 거세 새해 벽두부터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청구가 한국정치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 당시 검찰은 'RO'를 지하단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재판과정에서는 'RO' 혐의를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재판부도 내란음모가 아닌, 내란선동이란 혐의를 끌어올 만큼 검찰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무리수였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청구를 강행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 추구하는 것은 용공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기 위한 암적 존재"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장관이 법조인의 기본을 상실한 채 선동가로 전락한 셈이다.
진보당의 거취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권에 도움이 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다. 솔직히 이제 누가 대한민국 시국사건에서 민주적 판결을 기대하는가.
시국사건에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이석기 의원은 2013년 5월, 마리스타 수도회 강연에서 정치적으로 과도한 발언을 언급하였다고 해서 징역 9년에 처해졌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 군부의 수장자리인 합참의장에 있으면서 군부 쿠데타를 의미하는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던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9월 24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잘못한 기업인도 여건이 조성되고 국민 여론이 형성된다면 기회를 줄 수 있다"며 비리 재벌총수 사면을 시사했다. 하지만 11월 17일, 대법원은 무려 25명이 생을 마감하게 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다.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에서 막다른 벼랑에 내몰리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그간 정권의 전횡과 부정에 대해 눈치를 보지 않고 투쟁해 왔다. 진보당이 해산되면 야권에는 이제 투쟁보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만 남게 될 것이다.
본격적 재갈물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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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 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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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의 진보당 탄압은 자연스럽게 야권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될 것이다. 11월 6일, <조선일보>는 검찰이 안보 위해(危害), 테러 등의 범죄에 대해 압수수색, 계좌 추적 요건을 완화하고 해외 및 사이버상에서 수집한 증거 능력을 좀 더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증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미 서울중앙지검은 김수남 지검장의 지시에 따라 공안부장들과 공안부 및 공판부 검사가 모두 참여하는 연구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증거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은 9·11 테러의 틈바구니에서 법원 허가 없이 수사 당국 결정에 따라 1년간 테러·간첩 혐의자의 이메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애국법(Patriot Act)을 통과 시켰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일명 '한국판 애국법'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수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나아가 "국가 안보 위해 사범에 대해서는 증거법을 완화하거나 '안보 형법'을 별도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법원의 기능을 사실상 거세한 것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들은 상시적 수사대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가는 1970년대처럼 어느 날 선글라스 낀 요원들이 찾아와 "같이 좀 갑시다"라며 지프차로 끌어가게 생겼다. "영장없는 체포"와 "재판없는 구금"이 1970년대 유신독재의 표상이었다면 2015년에는 "법원 없이 만든 증거"가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터넷 상에 박 대통령을 비판했던 인사들 가운데, 누가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장기집권전략 의혹 박근혜 정권이 이처럼 집요하게 투쟁세력을 해산시키고 비판세력들의 입에 재갈을 채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야권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집권당의 독재회귀가 거세지면 이는 필연코 권력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은 신통히도 1972년 유신헌법을 열었던 박정희 정권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민청학련) 사건을 일으켜 김근태, 김지하, 류근일, 서중석, 유인태, 이철 등이 인민혁명당과 조총련, 일본공산당 혁신계 좌파의 배후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이들을 구속·기소하였다. 1975년, 인혁당 관련자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여정남,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소가 기각된 다음날 곧바로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이러한 재야 탄압 끝에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계엄을 발동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비상조치로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한 10월 유신을 열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1972년 4월 민청학련 사건-7월 7.4 남북공동성명-10월 유신의 흐름은 박근혜 정권이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은 박정희 정권의 민청학련 탄압과 형태가 같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 발언,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 논란은 박정희 정권 시절 일시적인 대북 유화국면과 유사하다. 하물며 정치권에서는 현재 개헌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물론 지금 야권과 여권 일각에서 논의 중인 개헌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분권형 개헌이 주된 맥락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거나 대통령과 총리가 외교국방 부문과 경제민생 부문을 서로 나누어 맡는다는 분권형 개헌이 그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개헌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10월 6일, 청와대는 "개헌 논의는 경제블랙홀"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개헌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독주가 제 아무리 막무가내라 해도, 87년 6월항쟁의 역사가 있는 이 땅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과연 가능할까?
정치권에서 개헌을 강력히 반대할 세력은 차례로 거세되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보수세력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였다. 박근혜 정권 내부의 "합리적 보수"세력도 차례로 쫓겨났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였던 김종인이 물러났다. 복지예산 논란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였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던 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도 낙마하였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대통령을 여왕처럼 모시는 시중들이 정권의 핵심요직에 들어앉았다. 유신헌법에 관여하였던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꿰찼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모셨다는"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보좌관과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부상하였다. 권력이 대통령 1인에 집중되면 반드시 그 수하들에게 암투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 정윤회 논란이 뜨거운 것도 지난 박정희 정권 시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의 암투를 연상케 한다.
국민들은 개헌을 결사 저지할 수 있는가? 이미 2012년 대선에서 보수세력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비롯한 국가기구를 동원해 국민여론을 왜곡 시키고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어떠한 부정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극우이념은 어버이연합, 일베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으며 급기야 '종북척결'을 기치로 든 서북청년단이 재건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2015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리의 곳곳에 나타나 국민들에게 백색테러를 자행하고 인터넷 신상털기를 통해 민주의 싹을 거세하려 할 것이다.
상황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어버이연합과 일베충, 서북청년단이 개헌논의 마당에서 종북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을 지켜달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재집권을 호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종편과 일베가 이토록 난리치는 상황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번 한 번만 더 집권해달라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란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