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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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일 강론>(2024. 11. 10.)(마르 12,38-44)
<중요한 것은 ‘사랑’과 ‘정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38-44)”
1) 율법학자들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가난한 과부에 관한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은’ 그 율법학자들이 곧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만 바친’ 부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남의 것을 빼앗아서 그 가운데 일부를
하느님께 바친 자들이 되는 셈인데,
남의 것을 빼앗는 것도 죄이고,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
<‘선한 것’을 바쳐야만 봉헌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것’을 바치는 것은 봉헌이
아니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이 될 뿐입니다.>
2)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다는 말씀에서,
야고보서에 있는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야고 5,1-5).”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고,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채고,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었다면,
부유함 자체가 죄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부자로 사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서 부자가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3) 이야기에 나오는 과부는 특정 개인만은 아닐 것이고,
율법학자들이 등쳐먹은 ‘과부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가진 것을 다 바친
그 ‘비율’ 때문이 아니라, ‘온 마음’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비율’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누구든지 가진 것을
다 바치라는 단순한 가르침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만일에, 나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자들이, 회개하지는 않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도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바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할 수 있을까?
이야기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가난한 과부가 바친 동전 두 닢은,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마음과 사랑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4) 바오로 사도는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 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가진 것 가운데 일부만 바치든지 전부 다 바치든지 간에,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랑’과 ‘정성’입니다.
사실,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가지고 있는 생활비를
모두 바치는 것은 누구에게나 현실적으로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열의만 있으면 형편에 맞게 바치는 것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요구되지 않습니다(2코린 8,12).”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각자 형편대로 바치라는 뜻입니다.
또 가지고 있는 생활비를 모두 바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5) 사도행전 5장의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는
전 재산을 봉헌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하면서도
재산을 다 바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일부만 바쳤고,
그러면서 전부 다 바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사도 5,1-2).
그때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전부 다 바치지 않은 것을
꾸짖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이려고 한 것을 꾸짖었습니다(사도 5,3-4).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32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