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역의 고유한 지형물과 동식물, 언어와 풍물, 생생한 삶의 현장을
육감적으로 육화하여 세상을 향해 꺼내놓은 이애리의 시편들
자연스런 색채 변화에서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는 우주적 상호작용의 의미를 발견하여
인간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만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자아실현의 길도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자연과 존재의 정체성을 견결한 시적 의지로 새롭게 해석하여 드러낸 이애리의 시편들
시하늘 회원님
1월 26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우리는 시하늘 이름 아래 함께 모여 시하늘 가족끼리 정을 나누고
이애리 시인과 더불어 시 낭송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시하늘 18년째 접어듭니다. 오랜 시간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절망 저 끝에 희밍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탄탄한 시하늘의 모습을 회원님과 나누고자 합니다.
좋은 분들과 같이 오십시오.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일시 : 2013년 1월 26일 오후 4시
-장소 :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케냐 레스토랑(대형 주차장 완비)
-회비 : 20,000원
-제공 : 시인의 시집 또는 낭송용 시집, 시하늘 겨울호/간단한 선물, 동해의 별미
-연락처 : 편집운영국장 보리향/이온규 010-2422-6796, 사무국장 김양미 010-2824-8346, 가우/박창기 010-3818-9604
*이애리 시인
-강원 동해 출생
-2000년 『문학세계』로 작품 활동
-시집『하슬라역』 (詩와에세이, 2011)
하슬라역
-이애리
구름에 가려 찬란한 일출을 보질 못하고
동해안 철길 해송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도
겨울비가 기차 레일 위에서 훌쩍여도 좋다
화비령에 진눈깨비 날리다 금세 폭설로 변해
오가는 사람들 발목을 덜컥 붙잡아도 좋다
역내에는 해연풍 같은 음악이 흐르고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궁굴리며
주머니에 라이터가 없어도 허전하지 않겠다
철도신문을 뒤적이다 해국(海菊)같은 하슬라역을
배경으로 한 잎의 시를 써 내려가도 좋다
따스한 커피를 건네는 역무원의 배려에
귤 두 개로 화답하며 시간 멈춰도 좋고
마구 퍼붓는 괘방산 함박눈에 혼을 빼앗겨
밤새껏 소금별 숫눈길을 헤매 다녀도 좋다
눈 속에 파묻힌 기차 레일을 찾아내서
그대와 거리를 조율하듯 가깝게 좁혀놓고
해맞이 온 사람들 행선지가 바다로 향해도
밤 파도의 포말을 밀어내듯 발뺌하면서
심곡항 등대처럼 밤새 글썽거려도 좋다
* 하슬라역: 강원도 영동선 동해역과 강릉역 중간 즈음에 있음직한 역이며, 하슬라는 해와 밝음이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강릉의 옛 지명.
곰팡이
-이애리
꽃 아니라고 기죽지 마라
눅눅한 습지를 지탱해온 그늘과
불임의 시간들 뭉쳐 촘촘히도 피었구나
너를 다녀간 세상의 모든 음지가
다 독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만지기만 해도 세균 번지고 마는 것은
저 불온한 사람의 손길이지
이어지는 혐의들
그리운 체온 감지하며 늑골 아래서
저토록 푸르게 꽃이 될 수 있으니
내 스러져 썩은 후에도 다시
이녁의 한 줌 허리에 깐깐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오대산 손단풍에게 초록이 전부였던 그 화끈거림이란
-이애리
새들은 붉은 단풍을 원했고
생에 있어 호된 뜨거움이란
단풍잎 같은 손거울에 나를 비춰 보는 일
지나온 모든 안부가 궁금했을 터
사랑이 한때 위험했다면
오대산 수목림 지나
청람빛 손단풍보다 푸르렀을까
바스락바스락 지나가던 날다람쥐 한 마리가
지난가을
길 잃은 도토리 한 개를 굴리다 말고
사람들이 던져준 소시지를 넙죽 물고
떠나간 자리에도,
그 창창한 유록(柳綠)이 전부였던
푸른 봄날이 있었다
뭐든 푸르다는 것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
위험할 필요도 없던
초록이 전부였던 오대산 손단풍
그 푸른 단풍나무 그늘 이면에는
암암리에 산안개 뭉게구름 천둥번개
별빛 이슬이 내려와 웅숭깊은 젖을 물리며
새순 키운다는 것을
몇 번의 가을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끄덕일 수밖에
오대산 수목림 지나 초록이 전부였던
손단풍 곁에 봄 내내 진을 치게 만든
그 화끈거림이란
한솥밥 둥글게 먹으면―사랑
-이애리
사랑은 밥이다
청국장 보글보글 끓는 아침밥상이며
그대의 뜨끈뜨끈한 아랫도리가 생각나는
저녁노을이다
이 세상 모든 숨결
두 주먹 불끈 쥐게 하는 밥심
고봉밥에 담긴 아내 이름을
곱씹어 보는데
수채통에 불은 밥알은 아내의 잔소리다
반달접시 깨지는 소리 못들은 척하며
사랑이 밥 먹여 준다고
사내답게 큰소리를 친다
혹애하는 이와 마주앉아
한솥밥 둥글게 먹으면
입안 가득히 사랑이 도톰해지며
아가들이 자란다
쑥국향 뭉근한 저녁상 앞에서
내친김에 꽃밥 도장 꽃, 꽃, 심으니
늦둥이라도 화들짝 피어나라
소나기밥 머리맡에 꽃잠 들어
마치 중국식공갈빵처럼 둥그렇게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다
둥근 직립
-이애리
뒷간 거름더미 곁 대추나무 한 그루
여름내 호박넝쿨과 가깝게 지내는가 싶더니
가을이 되자, 대추는 몇 알 밖에 없고
누런 호박이 보름달처럼 대추나무에 열렸다
국수안반 같은 엉덩짝을 치켜세우고
가을볕 아래서
둥근 행보를 시작한 호박덩이
돌담 밑에 맨드라미가 울화가 치밀었는지
팔뚝 같은 욕 한 다발을 퍼부으려는데
대추나무 모가지에 한번 매달려 본 적 있냐며
부아가 난 누런 호박이
대추빗자루병을 시작한 대추가지를 꺾어
맨드라미 얼굴에 팽개친다
담벼락에 치근대며, 누렇게 익어야 할 호박
허공을 짚고 둥근 직립을 시작한다는 것
젊은 날, 애호박이 담벼락에 머리 처박으며
절명(絶命)의 낙법사랑을 체득한 후라는 걸
연륜의 대추나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동해역에서 소주를 마시다
-이애리
오징어들이 벗어놓은 몸 꺼풀을
사람들은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거나하게 취한 술이
온몸을 헤집으며 철썩일 즈음
열차는 동해역을 지나가고
기적소리만 플랫폼에 울고 섰다
기다림에 지쳐서가 아니라
빈 술병이 허전해서 보듬고 있다
갈증이 해무처럼 아늑해질 수 있다면
오징어똥물 뒤집어쓴대도 무슨 상관인가
역 광장에 오도카니 소나무 한 그루
부랑아의 자유라도 누가 되지 않으니
바다로 나갈 거면 갈아타도 좋다
두타산입술대고둥아재비달팽이
-이애리
내 별호가 혹은 호명되는 이름이
이렇게 길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앞으로 내 이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근황과 이름을 작명해서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는
두타산 정상에 사는 얼레지에게만
슬쩍 귀띔했을 뿐
삼화동주민센터에 출생신고는
별달리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타산 무릉계곡 근처
선녀탕을 지나 용추폭포라는 작명가 집에서
한나절 고민해 지어 온 내 이름,
두타산청옥산이기령무릉계곡소비천골
신흥리입술대고둥아재비달팽이, 라고
불임의 묵호항
-이애리
소금기 절은 육신으로 해안도로 달리면
번져오는 바다 해무 껴안을 수 있을까
묵호항 방파제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썩어문드러지는 게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해돋이마을 사람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시커먼 울음 컹컹 뱉으며 파도는 처박히고
물고기들, 더 이상 산란하지 못한다
개발논리 정당성을 앞세워 물꼬를 가로막고
아침에 ‘가장 먼저 해 뜨는 집’ 팻말 건 모텔
치즈냄새가 나는 ‘시드니, 라메르’ 카페들
방파제를 끌어당겨 장삿속을 채우고 있다
지금 묵호항은 수태하지 못한다
등대 불빛만 절절할 뿐, 무배란기다
나한정역
-이애리
다시 태어나 그대를 사랑하게 된다면
섬바위골 코끼리바위, 토끼봉 노을로 남아
나한정역 스위치백구간 기적소릴 품고 싶어
그 역 앞 마당가에 엽서 같은
단풍나무 한 그루
고, 참한 숨결을 차마 떨칠 수가 없어
가을 단풍들 때 다시 오겠노라고
통표(通票)같은 한마디 남기고 돌아서는데
자꾸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난 그만 흥전역으로 가는 길조차
깜박하고 말았네
* 나한정역: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에 있는 역으로 스위치백 구간이 있음.
밥의 근황
-이애리
백복령에 함박눈 내린다
사돈집에서 데려온 누렁이 개밥그릇에도
이밥처럼 하얀 눈이 쌓여가고
뒤란 장독대 위에도 눈꽃밥상 차려진다
떡값이다 차 뙈기다 돈벼락 오가고
국회의 근황은 밥그릇 싸움으로
주먹질이 솟구친다
국가 녹을 먹는 이들의 밥그릇 위에도
함박눈 내리겠지
만약, 내 밥그릇 복지깨를 열어본다면
함박눈같이 하얀 이밥은 고사하고
문예지 한 귀퉁이에 실릴지 모른다는
기대만 부푼 시(詩)들이 낱알처럼 쌓여 있을까
밥의 근황이 궁금하기 시작했다
첫댓글 오후 4시ㅡ시낭송회
오후 6시ㅡ2013 시하늘 정모
낭송회와 겸하는 시하늘 정모이니 많이많이 오십시오!
기다려지는 시간 입니다^^
이애리시인의 시집을 받은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네요.
이번 정모에서
이애리 시인의 "곰팡이" 낭송해 보겠습니다. ^^
나한정역 - 최정옥님이 찜하신다고....
찜하신 분들 연습 열심히 하시도록 독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솥밥 둥글게 먹으면 - 정연숙님 찜
이애리 시인의 "오대산 손단풍에게 초록이 전부였던 그 화끈거림이란"
낭송 해 보겠습니다.
저는 ' 하슬라역'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하슬라역 / 배경자 님
2. 곰팡이 / 유순예 님
3. 오대산 손단풍에게 초록이 전부였던 그 화끈거림이란 / 김금주 님
4. 한솥밥 둥글게 먹으면ㅡ사랑 / 정연숙 님
5. 둥근 직립 / 이승엽 님
6. 동해역에서 소주를 마시다 / 박종천 님
7. 두타산입술대고둥아재비달팽이 / 김옥경 님
8. 불임의 묵호항 / 장상관 님
9. 나한정역 / 최정옥 님
10. 밥의 근황 / 박숙경 님
보리향님 대신 수고하시는군요
낭송시가 남는다면 "밥의 근황"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동해역에서 소주를 마시면/을 찜해볼까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변변치 않은 시들인데,
대구에서 시하늘 선생님들께서 낭송해 주신다고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게으른 탓도 있고,
입에 밥풀칠하기에 급급하다 보니
자주 카페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두루두루 챙겨주시는 김경호 선생님과 박창기 선생님
시하늘 회원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다음 주에 동해바다 해연풍 가득 품고
달려가겠습니다. 행복하세요!
그간 잘 계셨지요?* 오늘 뵐게요**
여러 회원님 만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네요.
마음은 벌써 그날로 달려갔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울산에서 오시는 장상관 시인은 "불임의 묵호항" 찜 합니다
정모를 한주 늦추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비싼 돈 들여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어제 저녁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집으로 떼지어 가는 코끼리 무리를 보며 돌아갈 집이, 반길 사람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웠습니다.
완전 반기지요* 왠지 엄마 없는 시하늘 느낌~! 오늘 뵐게요*
2013년 첫 모임인데 참석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보고싶은 사람도 많고, 하고싶은 얘기도 많은데...... 아름다운 시의 향연속에서
모두들 행복한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처럼 깜짝 나타나시면 안 되남유?*
전국구님들도 많이 오셔서 이애리시인낭송회와 정모를 보다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한자리 할렵니다.축하드립니다.
모이면 무엇인가 나눌 것이 생기게 됩니다. 그게 시하늘의 모습입니다.
둥근 직립 찜하면서
정모날 손꼽아 기다립니다
멀리서 오시는 시하늘님들
조심히 안전운행 하시면서 내려 오십시오
토요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