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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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곱나타(Gobnata)
축일 2월 11일
아일랜드의 클레어(Clare)에서 태어난 성녀 곱나타는
씨족 간의 불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란(Aran) 섬으로 피신했다. 그곳에 성당을 세우고
지내던 그녀는 천사의 인도로 다시 남부 아일랜드로
갔고, 그곳에서 성 압반(Abban)이 밸리부니에 세운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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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레고리오 2세, 교황(731년 순교)
축일 : 2월 11일
로마 출신인 그는 젊어서부터 교회 일에 종사하여
경리를 담당하였고, 교황 네 분의 사서로
봉직하였으므로 그의 학덕과 지혜가 널리 알려졌다.
그 후 그는 교황 콘스탄티노블로 가서
황제 유스띠니안에게 행한 그의 대답으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때 그는 황제로 하여금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715년 5월 19일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성직자들의 규율
정비와 이단 배척이었다. 그는 사라센의 침략을
대비하여 로마 주변에 성곽 복원사업을 시작하였고,
교회와 병원, 그리고 몬떼 까시노 수도원을 포함하는
수많은 수도원 재건사업을 펼쳤다.
또한 게르마니아인들에게 선교사를 파견하고,
황제가 교회에 간섭치 말도록 조처하는 등
교황권 확립에도 큰 공을 남겼다.
727년에는 로마에 시노드를 소집하였고,
황제의 지원을 받던 성상 파괴주의를 배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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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자로, 주교(450년경 순교)
축일 : 2월 11일
그는 449년경에 밀라노의 주교가 되었다.
이 시기는 고트인들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던
시기였으므로, 그는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지혜롭게 신자들을 사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2명의 밀라노 최고의 성인 반열에 든다.
특히 그는 예수 승천과 관련되는
기도문을 처음으로 도입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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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치오, 주교(350년 순교)
축일 : 2월 11일
에우트로피우스(Eutropius)의 사후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는 그를 계승하여
마케도니아(Macedonia) 지방 아드리아노플의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반대한 이유로 그의 주교좌에서 쫓겨나 갈리아
지방으로 유배를 갔다. 그 후 로마(Rome)로 간 그는
그곳에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주교인
성 바오로(Paulus, 6월 7일)를 만났다.
그는 347년에 열린 사르디카(Sardica) 공의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후 교황 성 율리우스 1세
(Julius I, 4월 12일)의 지지를 받으며 아드리아노플로
되돌아갔으나 아리우스파에 의해 재차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이때 여러 가톨릭 신자들이 그와 함께 체포되어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에 의해 참수되었다.
성 루키우스 주교의 친구인 성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5월 2일)는 그의 용기와 항구심을
높이 치하하면서 그의 덕을 기리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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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또(benedict)
축일 : 2월 11일
마구엘론의 에이굴프의 아들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피핀과 샤를대제(Charlemagne)의 술을 따르는
사람이었다가 롬바르디아(Lombardia)의 군대에
입대하였다. 군을 떠난 후인 773년에 그는 프랑스
디종(Dijon) 근교 생 세느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후일 그가 그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자
이 직책을 거절하고 은수자로서 생활하였다.
그런데 그의 주위에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므로, 그는 수도원과 교회를 짓고
수덕생활에 전념하였다. 루이 황제의 도움으로
그는 아헨(Aachen) 근방 인드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제국 내의 모든 수도원의 지도자가 되었다.
817년 아헨 공의회(Council of Aachen)는
베네딕투스 규칙을 체계화시킨 그의 작업
(Capitulare monasticum)을 제국 내 모든
수도자의 규칙으로 승인하였다. 그는 또 모든
수도자들의 규정을 집대성한 책(Codex Regularum)을
편찬하였다. 그는 서방 수도생활의 재건자로
추앙받기 때문에 흔히 그를 제2의 베네딕투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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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성 다티부스(Dativus),
성 사투르니누스 2세와
성 펠릭스(Felix)
마리아(Maria)
힐라리우스(Hilarius)
성 암펠리우스(Ampelius)
성 펠릭스(Felix)
축일 : 2월 11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아프리카의
아비티나(Abitina)에서 어느 사제가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또는 사투르니노)
사제와 성 다티부스(Dativus),
성 암펠리우스(Ampelius)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Felix)가 다른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사투르니누스와 성 다티부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순교를 다짐하였다. 그들이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자 그 관리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집정관은 먼저 성 다티부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숨었고 또 어떤 집회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나는 너희들의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 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한다. 이런 옥사는 그 당시
관례에서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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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베리노(severrinus)
축일 : 2월 11일
부르군디 사람인 성 세베리노는
아리아 이단이 그 지방에서 판을 칠 때에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아가우눔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이때의 수도원은
모두 독방으로 구성된 움막의 집합체였다.
그후 그는 원장으로서 활약했는데, 프랑스의
첫번째 크리스챤 왕인 클로비스는 오랜동안
병을 앓다가 그의 기도로써 치유된 후 개종한 것이다.
세베리노는 자기 수도자들에게 다시는 자기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뒤 수도원을 떠났다.
그는 정처없는 여행을 즐기던 중, 네베르스의 주교인
에울랄리오가 한동안 귀머거리와 벙어리인줄 알고서
그를 치유했고, 파리 성문 앞에서는 나환자를 고쳤다.
그후 그는 아가우눔으로 돌아와서 샤토-랑동 수도원에
머물렀으나 아무도 그를 몰라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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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돌포(Adolf)
축일 2월 11일
독일의 베스트팔렌(Westfalen)에서
테클렌부르크(Tecklenburg) 백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성 아돌푸스(Adolphus, 또는 아돌포)는
쾰른(Koln) 대성당의 참사위원이 되었으나
이를 사임하고 라인(Rhein) 강변의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승이 되었다.
1216년 그는 독일 북부 니더작센(Niedersachsen)
지방에 있는 오스나브뤼크의 주교가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애덕을 베푼 주교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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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나(Jonas)
축일 2월 11일
성 요나는 성 파코미우스(Pachomius, 5월 9일)의
지도 아래 데메스케냐노스에서 수도자가 된
이집트인이다. 그는 85세까지 공동체를 위해
정원사로서 낮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새끼를 꼬거나 시편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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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채드몬(Ceadmon)
축일 : 2월 11일
영국의 휘트비 수도원에서 일꾼으로, 목동으로 일하던
그는 아름다운 시를 지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 수도원의 평수사가 되었고,
성서를 공부하여, 그것을 시로 옮겼다. 그는
앵글로-색손족의 첫번째 종교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영국 종교 시의 아버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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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스트렌시스(Castrensis)
축일 2월 11일
성 카스트렌시스는 9월 1일 축일을 지내는
아프리카 출신 주교 성 프리스쿠스(Priscus)와
그의 사제들 - 성 탐마루스(Tammarus),
성 로시우스(Rosius), 성 헤라클리우스(Heraclius),
성 세쿤디누스(Secundinus), 성 아주토르(Adjutor),
성 마르코(Marcus), 성 아우구스투스(August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카니온(Canion),
성 빈도니우스(Vindonius) - 과 함께 두 번째
축일을 기념한다. 성 프리스쿠스와 사제들은
아리우스파 반달족에 의해 키가 없는 배에 던져져
바다를 표류하다가 다행히 남부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결국 성 프리스쿠스는
카푸아의 주교가 되었고 몇몇 다른 사제들은
다른 주교좌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들은 다소 신뢰성이 떨어진다.
즉 성 프리스쿠스의 그의 동료들은 로마 순교록이
전하는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프리스쿠스
카스트렌시스(Priscus Castrensis)의 의미를
“프리스쿠스는 예전에 북부 아프리카에 있는
카스트라(Castra)의 주교였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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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칼로체로(Calocerus)
축일 2월 11일
성 칼로케루스(또는 칼로체로)는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7월 23일)의 제자로
스승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라벤나의 주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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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스칼 1세 (Paschal I, 824년 임종)
축일: 2월 11일
로마 사람 보누수스의 아들인 그는 라떼란에서
수학한 후, 성 스테파노 수도원장이 되었으며,
교황 스테파노 4세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817년 1월 25일).
황제 루이스는 교황의 관할권을 존중하였지만,
그의 아들 로테르 1세가 즉위하면서부터 교황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윽고 로테르는 교황 관할권과
이탈리아 내에서의 정치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였고,
레오 5세 황제의 성상파괴 정책의 결말을 끝내
성공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는 로마의 여러 성당을
재건하거나 신축하였고, 많은 유해들을 까다꼼바에서
성전으로 옮겼다. 비록 그가 로마 순교록에는
등재되어 있으나 공식적으로 시성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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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헬비사(Helwisa)
축일 2월 11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Normandie)에서 은수자로서
생활한 헬비사는 인근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하지는 않았지만 그 규칙에 따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