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야 할 일, 청호 스님 기념사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 입력 2024년 10월 18
지난 10월 9일 서울 봉은사에서는 1925년 7월 중순 전국을 참혹한 폐허로 만든 을축년 대홍수가 났을 때 700명이 넘는 사람 목숨을 구한 봉은사 주지 청호학밀晴湖學密(1875-1934) 스님의 자비 보살행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나청호 선사의 활동과 일제강점기 봉은사 역사’라는 주제로 발표 ‧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 당시 주지 청호 스님이 앞장서고 봉은사와 말사에서 힘을 모아 목숨을 살려낸 708명을 현재의 인구 규모와 비교하면 2,000명에 가깝다. 오늘날 재해가 일어났을 때 봉은사가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가 나서서 이 정도 인원을 살려낸다면 정부와 국내언론, 국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고 한국 불교의 이미지와 위상이 빠르게 올라갈 것이다.
을축년 대홍수를 전후한 시기는 불교와 출가 수행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예우가 매우 낮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위창葦滄 오세창 ‧ 위당爲堂 정인보 ‧ 월남月南 이상재 등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성인들이 봉은사와 청호 스님의 보살행을 찬탄하는 글과 그림 등을 보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기록’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불괴비첩不壞碑帖>을 엮은 일은 청호 스님 개인과 봉은사뿐 아니라 당시 전체 불교계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 청호스님과 봉은사의 보살행은 봉은사만의 과거 역사가 아니라 한국 불교 전체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귀중한 자산資産이고, 한국 불교계는 100주년이 되는 2025년을 ‘청호 스님의 해’로 정하여 전 불교계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의미를 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귀한 자산을 불교 집안 안에만 가두지 말고, 당시 보살행을 주제로 ‘영화 ‧ TV드라마’ 등의 제작을 유도하고 전 국민 또는 어린이 ‧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글짓기와 컴퓨터 게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하여,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고 전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군대를 보내 조선정부를 무너뜨려 달라’고 쓴 편지가 발각되어 처형된 황사영을 기리는 순례길 7킬로미터 조성에 충청북도와 제천시가 53억 원을 투입하고, 임진왜란 때 천주교도인 왜군 장수와 수하 장병들을 위해 미사 등을 집행한 군종신부인 세스페데스 기념공원 조성에 경남 창원시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다. 그런데 관료들은 물론이고 명령 복종을 생명으로 여기던 일본군인들도 겁이 나서 접근할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 봉은사 스님들이 1,000명에 가까운 목숨을 구해낸 일에는 무관심하다. 봉은사와 종단이 힘을 합쳐,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 청호 스님과 봉은사 대중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현재 서울 강남구 ‧ 송파구 ‧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 등 지자체가 합동으로 기념 공원을 조성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적 ‧ 사회적으로 아무런 책임과 의무가 없었던 청호 스님이 ‘사람들을 구해내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등등을 계산하지 않았을 것이고, ‘불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구해오면 돈을 주겠다”며 뱃사공들을 설득했다고 전해지지만, 뱃사공들이 오직 돈을 벌겠다고 구조 활동에 참여했을까.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함께 구조에 나서는 스님의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자비행에 공감 ‧ 감동했기에 그 위험한 상황에서 구조 활동에 나섰을 것이다. ‘외국군대를 보내 나라를 무너뜨려 달라’고 했던 인물과 침략군을 위해 복무한 군종신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와 신분 등등을 떠나 오로지 ‘사람을 살리겠다’는 중생구제의 대비원력大悲願力을 현실에 구현한 청호 스님과 그 현장에 정부와 지자체가 순례 길과 기념공원을 조성하여 국민들, 특히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훈을 주어야 마땅하고, 불교계는 지극히 당연한 이 일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청호학밀 #을축년대홍수 #불괴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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