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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상하지, 눈은.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꾸었던 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등성이까지 심겨 있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생각하는 사이 어느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그는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채로 꿈에서 깬다. 경하는 그것이 그 무렵에 꾸었던 다른 악몽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책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꿈이리라고 생각하고, 한때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과 함께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뒤로 몇 해 동안 힘든 시기를 겪고 겨우 삶을 회복하는 사이 계획은 진척되지 못했고, 경하는 자신이 그 꿈을 잘못 이해했다고 마음을 바꾼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경하는 병원에 있는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인선이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은 것. 곧장 병원을 찾은 경하에게 인선은 갑작스레 그날 안에 제주 집에 가 혼자 남은 새를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인선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길로 서둘러 제주로 향한다. 그러나 제주는 때마침 온통 폭설과 강풍에 휩싸여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고질적인 두통에 시달리며, 경하는 가까스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인선의 마을로 향한다. 그러나 정류장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눈길을 헤치고 산을 오르던 길에서 폭설과 어둠에 갇혀 길을 잃는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44~45쪽)
심장이 다시 뛸 거지.
그렇지, 이 물을 마실 거지.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온 가족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십오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아버지와,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채로 언니와 둘이 남겨진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와 함께, 학살 이후의 시간을 살아내며 오빠의 행적을 찾는 일에 수십 년을 바쳐 끝까지 포기하기를 택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고요한 싸움이, 폭설로 고립된 외딴집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촛불 아래 떠오른다. 빛과 어둠 사이를 가르며 영원처럼 느리게 하강하는 수천수만의 무심한 눈송이들 속에서,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을 간절히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정심에게서 인선에게로, 인선에게서 경하에게로 스며든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87쪽)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작가는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작가의 말’)고 했다. 그 사랑은 우선 마지막까지 사람과 삶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마음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환하고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사랑이 지극하고 간절한 만큼 그것은 무엇보다 무서운 고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쪽)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일평생 그랬던 것처럼, 인선은 어머니의 삶이 자신에게 스며오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하 또한 인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으로 겹쳐지는 것에 힘겨워하면서도 그 마음을 내치지 못한다. “이 눈보라를 뚫고 오늘밤 그녀의 집으로 갈 만큼 그 새를 사랑하지 않는다”(88쪽)고,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152쪽)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 사랑에 손을 내밀어 기어이 고통을 택하는 것이, 그것만이 오직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소설은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절멸로부터 삶을 지켜내는 길이리라고. 어쩌면 실은 그 부름은 이미 언제나 우리 앞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을 사랑으로 알아보고 그 손을 잡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듯이. 그 앞에 조심스레 손을 내밀 때, 그 마음이 닿은 자리가 눈송이처럼 차갑고 동시에 불꽃처럼 뜨거워 영영 잊히지 않는 것은 한강의 소설만이 전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닐까. 이렇게 한강의 소설이 우리 앞에 와 있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강은 하게 만든다.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있다.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딸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진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 곁의 소설가 ‘나’는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
언젠가부터 그의 새 소설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된다.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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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는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날아가서 폭설을 헤치고 인선의 외딴 집까지 가는 과정이고, 2부는 그렇게 다다른 인선의 집에서 과거로 인간성의 바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는 그런 과정을 거치고 3부에서는 이제 마침내 끝까지 내려가서 그곳에서 촛불을 밝히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경하'와 경하 친구 '인선', '인선'의 엄마 정심이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돼요
시대적 배경은 제주도 4.3사건으로 '인선'의 엄마
정심'이 칠십 년 전 직접 겪은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경하'와 '인선'을 통해 마주하게 해주는데요,
소설 속의 화자 경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소설을 쓰고 같은 악몽을 꾸게 됩니다.
눈 내리는 벌판,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로 걸어가는 '경하'의 모습
묘지라고 생각한 순간,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위 쪽에 묻힌 뼈들을 옮겨야 했다고... 악몽을 군 '경하'는 기존 글쓰기 작업한 학살과 연관된 악몽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자신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한 '소년이 온다'를 펴낸 후 비슷한 시기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였기에 어느 정도는 작가 한강 자신 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의 꿈 이야기를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연출가이며 예전 경하가 잡지사 근무 시절부터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고 있는 인선에게 말하자 인선은 그것을 프로젝트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을 약속한다.
경하는 경하 나름으로 인선은 고향인 제주도에서 치매로 고생하는 엄마의 간병을 위해 낙향한 대로 서로의 삶에 바빠 이제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로 지낸다
그리고 경하는 인선과 약속했던 프로젝트는 이제 접고 다음을 기약하자는 전화를 인선에게 하지만 인선은 현재 자신이 진행한 부분이 있기에 끝까지 함께 하자고 하나 경하의 반응은 미덥지 않다.
그러던 중 인선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방문을 해주겠냐는 부탁을 받고 경하는 병원으로 향한다. 별의별 생각을 하고 병원에 당도했는데 인선은 제주도에서 생계를 위해 하던 목공예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게 되고 손가락 접합을 위해 일주일간 매 3분 단위로 주삿바늘로 접합부위를 찌르는 치료를 받게 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던 앵무새 '아마'에게 물과 모이를 주기 위해 당장에 제주도의 인선의 집으로 갈 것을 부탁받는다.(앵무새 아마가 물을 안 먹은 지 3일째 당일 수분 섭취를 못하면 필시 죽을 것이기에 당장의 제주도행을 부탁받은 것이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인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던 '경하'는 폭설과 강풍의 거친 날씨를 뚫으며 인선의 제주도 집으로 향한다.그러나 정류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인선' 집으로 걸어가던 중 폭설과 어둠에 갇히며 길을 잃고 넝쿨에 얼굴 상처도 입는 '경하.
동상으로 얼어 죽을뻔한 경하는 가까스로 인선 집
에 도착했지만 이미 앵무새 '아마'는 죽어 있고.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인선 엄마 '정심'의 참담하고 끔찍했던 제주 4.3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15년을 감옥에서 보내 고문 후유증으로 손을 떨었던 인선의 아버지,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채로 이모와 둘이 남겨진 인선 엄마 '정심'의 이야기.
또한 학살 이후 오빠의 생사를 찾는 일에 수십 년을 보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선 엄마 '정심'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인선이 준비하였던 제주 4.3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접하면서 왠지 자신의 꿈과 제주4.3사건 그리고 준비 중이었던 나무 목공 작업까지 그 하나 하나의 숨결을 찾아가고 또 하나의 비극의 민낯과 대면하게 되는 경하.
인선의 아버지와 어미니의 가족들의 인내하기 힘들었던 고통 그리고 제주4.3사건에 대한 비극적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