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출석 송영길, 檢 조사 거부로 돌아가… 與 “수사방해 쇼”
宋, 민원실서 10분 기다리다 나와
“주위 사람 말고 나를 구속하라”… 도주 뜻 없음 강조, 구속 회피 전략
野내부서도 “논란 키워 부담” 비판
檢, 강래구 이번주 영장 재청구 방침
“檢, 정치적 수사”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돈봉투 조성 및 살포 의혹을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가운데)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자진 출석했지만 출입을 거부당했다. 송 전 대표가 청사를 나와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대표가 2일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했지만 검찰이 조사를 거절해 10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송 전 대표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나를 구속하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당에선 “검찰 출두 쇼”란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이날도 송 전 대표 측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 宋, 돈봉투 살포 의혹에 “모르는 상황 있을 수 있다”
송 전 대표는 이날 오전 9시 59분경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청사 1층 민원실에서 이 사건을 맡고 있는 김영철 반부패수사2부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출입등록이 돼 있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고 김 부장과 전화도 연결이 안 되자 10분 만에 청사 밖으로 나왔다. 현장은 지지자들과 보수 유튜버들이 뒤엉키며 고성과 욕설 등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송 전 대표는 청사 앞에서 미리 준비한 A4용지 6장 분량의 입장문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면서도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제 집을 압수수색하고 참고인을 임의동행해 갖은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재명 대표 수사에 올인했다가 효과가 없자 송영길을 표적 삼아 정치적 기획수사에 올인하고 있다”고 검찰을 비판하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외곽조직인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연구소’(먹사연)를 압수수색한 데 대해선 “이중 별건 수사”라며 “한 푼도 먹사연의 돈을 쓴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돈봉투 살포 자체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후보로서 30분 단위로 전국을 뛰어다니는 상황이었다. 제가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어 기소되면 법정에서 다투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검찰이 임의로 출석할 경우 조사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혔는데도 이날 송 전 대표가 출석을 강행한 것을 두고 검찰 내부에선 향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대비해 도주 우려가 없음을 강조하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송 전 대표의 검찰 비판에 대해 “수사 대상자가 적법하게 진행되는 수사에 대해 정당한 근거 없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검찰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먹사연’ 사무실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돈봉투 자금 8000만 원을 마련해 전달한 혐의를 받는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에 대해선 이르면 이번 주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 민주당에서도 “논란 키워 부담” 비판
송 전 대표의 이날 행보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송 전 대표 본인은 억울해서 그렇다지만 당으로선 부담스럽다”며 “송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자처하니 다소 잠잠해졌던 의혹이 다시 불거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면 같은 당의 송갑석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검찰을 향해) 정면으로 나한테 물어볼 것이 있으면 정확하게 조사를 하라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엄호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송 전 대표의 출석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출두 쇼’”라고 공격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어떤 범죄 피의자도 마음대로 수사 일정을 못 정하는데 이는 특권 의식의 발로”라며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은지 기자, 박종민 기자, 김은지 기자
오지 말라는 檢, 그래도 간 송영길… 정치인들의 자진 출석
검찰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으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수사 상황과 여론을 살피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시간을 끌기 일쑤다. 현역 의원의 경우 “국회 일정이 있다”는 게 불출석 사유의 단골 메뉴이고, “수술이 예정돼 있다”거나 “변호인이 다른 스케줄이 있다”며 출석을 미룬 정치인도 있었다. 반면 정치인이 자발적으로 검찰청에 출석하기도 한다. 그 속에는 검찰과의 치열한 수 싸움이 깔려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수사에 필요한 때”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출석 조사 절차의 주도권은 검찰에 있다는 얘기다. 피의자가 출석을 미룰 수는 있지만 계속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반복적인 출석 거부는 체포의 사유가 되고,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를 높여 구속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한계 속에서 피의자들은 최선의 출석 시점을 고민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손익도 계산해야 한다. 자진 출석은 ‘내 발로 떳떳하게 나갔다’고 말할 명분이 생긴다는 점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2003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차떼기 사건’과 관련해 “내가 감옥에 가겠다”며 자진 출석하고, 2019년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내 목을 쳐라”라며 검찰청에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검찰로서는 정치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팀에서 준비가 덜 됐어도 그냥 돌려보내면 ‘조사받겠다고 온 사람을 왜 조사 안 하냐’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진 출석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조사는 받았다. 2018년 ‘미투’ 의혹이 제기된 뒤 잠적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갑자기 검찰청에 나타났을 때 수사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일단 조사를 진행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검찰에 자진 출석한 것도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한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송 전 대표를 아예 조사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어지간하면 차라도 한잔 내줬을 텐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창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는 검찰로서는 전 야당 대표를 문전박대했다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패’를 보여줄 수 없는 시점이라는 취지다.
▷유·무죄는 증거에 따라 갈리는 것이지 기습 출석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안 전 지사는 유죄가 확정돼 3년 6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했고, 황 전 대표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송 전 대표 역시 증거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법적인 문제는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른 길은 없다.
장택동 논설위원